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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May 08. 2019

카산드로, 더 엑소티코!

상처의 기록

  대기실에서 짙은 화장을 하고, 속눈썹을 붙인 그는 반짝이는 옷을 입고 링 위로 오른다. ‘카산드로’는 성적지향이 게이인 프로레슬러다. 영화 <카산드로 엑소티코!>는 루차 리브레 (‘프리스타일 레슬링’을 일컫는 스페인어)에서 영광의 시기를 보냈던 게이 프로레슬러 ‘카산드로’의 삶의 일면을 담아낸다. 

  마리 로지에 감독이 16mm 필름으로 담아낸 그의 모습은 영광의 순간을 정리하고 차츰 내려오기 시작하는 시점의 모습이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꽤 많은 부분을 할애해 그가 받았던 많은 트로피들과 함께 그의 몸에 새겨진 훈장들을 기록한다. 웃는 모습으로 그가 직접 몸에 난 상처들과 앞으로의 수술일정을 이야기하는 모습이나, 그동안 찍었던 수많은 엑스레이 사진들은 상처가 곧 그의 정체성임을 보여준다. 그의 몸에 난 상처에는 성소수자를 향한 지난 시대의 혐오가 있고, 그가 사랑해 마지않는 프로레슬링의 환희가 있고, 그 상처들을 보듬어 주었던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이 있다. 상처는 카산드로가 더 이상 프로레슬링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인 동시에 그가 프로레슬링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육체적, 정신적 상처들을 이겨내며 달려온 20여 년간의 시간동안 프로레슬링에는 다양성이 스며들었다. 여성과 트렌스젠더, 키가 작은 사람, 양성애까지 프로레슬링의 링 위는 말 그대로 다양성이 날뛰고 그들을 향해 환호를 보내는 장으로 바뀌었다. 카산드로는 이런 무대를 뒤로하고 내려오기가 항상 아쉽다. 몸의 상처들은 그를 링에서 끌어내리지만 그는 계속해서 링 위로 서고 싶다. 

  그의 일상의 중간 중간에 삽입된 의도된 씬들이 있다. 길고 화려한 빨간 가운을 입은 카산드로가 척박한 풍경 속에서 멀어져 점이 되어 사라진다든가 혹은 그가 육체미를 자랑하는 프로레슬러들을 곁에 두고 자신의 장례를 치르는 모습으로 누워있는 것이 그렇다. 이런 장면들은 그가 링 위에서 보낼 물리적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의 시간은 직업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폭발적이었던 링 위에서의 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말미, 지독한 상처를 이겨낸 그가 재기를 위해 프로필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익살스러운 표정. 처음 영화에서 마주했던 재기발랄하고 날랜 그의 모습과는 멀지 않은 표정이지만, 그의 상처들을 목격하고 난 다음에 만난 그 모습에 유난히 쨍한 핑크색 배경은 어쩐지 서글프다. 


-제 20회 전주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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