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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May 09. 2019

아무도 없는 곳

원을 그리며 다시 제자리로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의 첫 인상은 한 권의 단편 소설집을 보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생활하다 혼자 돌아와 서울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창석’(연우진)이 만나는 미영, 유진, 성하, 주은의 이름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 그랬고, 그 속에서 앞선 이야기를 물며 이야기가 확장해 나가는 모습이 그랬다. 어떤 때는 시간을 속이기 위해서 빠르게 이야기를 주입하고 달아나버리는 영화의 모습과는 먼 천천히 현재의 이야기를 차곡차곡 대화를 통해서 축적해 나가는 영화의 속도는 책장을 넘기는 속도처럼 느껴진다.

  <아무도 없는 곳>의 이야기는 원을 그리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면 어느 순간에 뒤틀림을 맞게 된다. 하지만 그 균열로 이야기가 먼 곳으로 떨어져 나가거나 하지는 않는다. 다만 대화가 시작되었던 그 모습 그대로 돌아갈 뿐. 어떤 이야기를 시작했던 첫 장면으로, 어떤 이야기는 이야기 자체가 다시 시작점으로 되돌아간다. 하지만 이야기를 뚫고서 돌아간 그 지점이 정확히 원을 그리는 지는 않는다. 이야기는 반복되는 듯 보이지만 나선을 타고 더 깊게 들어간다.

  영화 속의 각자의 이야기는 여러 지점에서 서로 반복되고 맞물린다. 영화는 그렇게 이야기의 사슬을 엮는다. 엮인 이야기들의 중심에 ‘창석’이 있다. 그는 계속해서 ‘떠나가는 것’을 목격하거나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 주변의 인물들은 모두 그의 곁에 머물지 않는다. 지금 떠나온 사람, 곧 떠날 사람, 언젠가 떠날 사람 등 그는 그것을 통해 마주하는 외로움과 비애를 이야기를 통해 막아보려고 하지만 쉽지 않다. 영화는 이야기의 매력과 힘을 보여주고 있지만, 창석의 이야기는 그 속에서 별로 힘을 쓰지 못한다. 차가운 도시에 여전히 그는 혼자다. 그런 창석을 연기하는 연우진 배우와 배우 위로 쏟아지는 빛은 연약한 마음이 마주한 깊은 심연을 다양한 결로 보여준다.

  감독의 전작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야기의 끝은 어딘가 마냥 슬프기만 한 새드엔딩의 조짐은 없다. 계속해서 말을 지어내며 남산을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이야기는 해피엔딩일 거라는 이야기꾼의 말로 끝난 <최악의 하루>, 하나의 테이블에서 여러 인물들이 순환하며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 냈던 <더 테이블>도 결국 마감하는 카페의 일상으로 끝을 냈다. 이번 이야기의 톤은 전작들에 비해 깊고 어두운 편이지만, “바람을 따라가야지, 손을 잡아야 길을 안 잃어”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이번에도 관객들을 향한 위로의 손길을 잊지 않고 내밀고 있다.      



- 제 20회 전주 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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