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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May 23. 2019

김 군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화 <김 군>은 한 장의 사진에서 출발한다. 1980년 5월의 광주, 군용 트럭 위에서 찍힌 한 남자. 군모를 쓰고 날카로운 눈빛으로 카메라를 쳐다보는 그 사람을 군사평론가 지만원은 광주에 투입된 북한군 ‘제 1 광수’라고 하고 누구는 광주에서 한 동네 살던 ‘김 군’이라고 말한다. 영화 <김 군>은 사진 속 남자의 정체를 쫓으며 현재까지도 살아 숨쉬는 1980년 5월, 광주의 기억들을 기록한다. 

  군사평론가 지만원은 5.18 현장을 담은 사진들에 찍힌 시민들 얼굴에 빨간 점을 찍어 총 600명의 북한군을 만들어 낸다. 그는 광주 민주화운동은 600명의 북한군이 내려와 저지른 폭동이며 그렇기에 민주화운동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켰던 그들은 북한으로 다시 올라가 2010년도에 북한의 공식행사에서 한 자리 꿰찬 모습으로 등장한다고 말한다. 그림판과 마우스로 조잡하게 만들어 낸 그의 주장은 영화의 초반 북한군으로 지목받았던 시민군 본인이 등장하면서 쉽게 무너진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진 속 ‘김 군’을 찾아가면서 만나는 사진 속 인물들, 아직도 1980년 5월의 기억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를 담아내면서. 

  사진 속 인물들을 다시 영화를 통해 기록하는 일은, 평면으로 박제된 사건에 시간을 부여하는 일이다. 영화는 ‘김 군’을 찾으며 만나는 사진 속 인물들을 통해 북한군 ‘광수’라는 이름이 아닌 각자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겪어 낸 개인들을 마주하게 한다. 영화로 다시 만난 사진 속 그들의 얼굴에는 “그때는 예뻤던” 10대, 20대의 청춘은 남아 있지 않고, 39년의 세월과 그 시간동안 안고 살아간 상처들이 드리워져 있다. 한 시민군의 몸속에는 당시에 맞았던 총알이 아직도 남아있다. 지금도 가끔 통증을 느낀다는 그는 “원래 아픈가보다”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듯 현재진행형인 그들의 상처를 통해 영화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사건이 일어난 한 지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때부터 촉발된 사건이라는 것을 조명한다. 

  지금도 살아서 그 날의 5월을 기억해내는 증인들은 한편으로는 지금은 없는 사람들을 증명한다. 함께 차를 타고 광주를 누볐던, 주먹밥을 건네주었던 한 골목에 살던 ‘그 날 이후로 사라진 이름 없는 사람들’을 증인들은 기억해내고 영화는 기록한다. 이렇게 영화 <김 군>은 끝내 이름을 가지지 못하고 증발되어 버린 사람들을 추모하고 카메라에 새긴다. 

  영화는 ‘영화관 안에서’ 한 번, 그리고 ‘영화관 밖에서’ 한 번, 두 번 끝난다. 살아남은 증인들이 영화관에서 만나 ‘김 군’의 사진을 본다. 그들의 말과 기억과 존재로 증명해낸 ‘김 군’. 영화는 이름 없이 사라진 한 인물을 함께 한 시절을 싸워내고 앓았던 사람들을 통해 입체적으로 되살려낸다. 그렇게 살아난 사진 속 ‘김 군’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과 39년 만에 스크린을 통해서 재회한다. 

  그렇게 사진으로 시작된 그들의 영화가 끝나면, 1980년 5월 당시, 시민군들에게 주먹밥을 싸주며 ‘김 군’을 마주쳤던 20대의 젊은 엄마였던 ‘주옥’이 이제는 50대의 모습으로 2018년 광주의 시위현장에서 주먹밥을 나누어준다. 그녀를 통해 영화는 영화관 밖에서 39년의 세월을 엮어낸다. 그리고 지금껏 그 때 그 모습으로 자리를 지켜온 광주도청의 문이 열린다. 이렇게 영화는 우리가 1980년부터 39년 동안 이어진 사건 이후의 상처에 발을 들여 귀 기울일 수 있게 문을 열고 자리를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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