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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Aug 19. 2019

밥 짓는 아이

<우리집>, 윤가은, 2019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윤가은 감독의 신작 <우리집>은 전작 <우리들>이 시작이 그랬듯이 아이의 눈빛으로 시작한다. <우리들>에서는 친구들에게 선택되고 싶어 하는 ‘선’이의 간절함과 그 기대가 사라져가는 눈빛을 담아냈다면, <우리집>에서는 부모님의 싸움을 목격하는 ‘하나’(김나연)의 눈빛을 담았다. 부모의 갈등을 포착하는 하나의 눈빛은 불안으로 가득하다. 아이 입장에서 어느 한 편을 들어주기도 애매하고, 훈계를 두는 일도 어렵다. 그저 부모의 높아지는 언성에 따라 가정이 흔들거리는 일을 불안하게 목격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가정의 끝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숨 죽여 지켜보는 일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그래도 하나는 흔들리는 가족을 붙들기 위해 어렵게 한 마디를 꺼낸다. “아침 밥 먹자.” 한 끼를 먹는 한 순간, 식구로서의 가족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말은 ‘너가 밥걱정을 왜 하냐’는 엄마의 말에 다시 치워진다. 

  그래도 하나는 밥을 짓는다. 그 일이 하나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면, 여름 방학숙제 과제로 ‘요리책’을 만들기 까지 할 정도다. ‘유미’(김시아)와 ‘유진’(주예림) 자매를 만났을 때도 하나는 요리를 하기 위해 마트를 찾은 참이었다. 유미와 유진 자매도 마트에 장을 보러왔다. 하나가 가족 어느 누구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 ‘식구’의 역할을 지키기 위해 마트를 찾았다면, 유미와 유진도 방학 동안 일을 하기 위해 떠난 부모의 자리를 대신해 자신들의 식사를 챙기기 위해 마트를 찾았다. 가정을 유지하는 유대 중에서 ‘식사’를 담당한 가장이 된 아이들이 운명처럼 만난 것이다. <우리집>에서 선이의 동생 윤이가 사라지는 일은, 선이와 지아의 관계를 흔들리게 만든다. 하지만 하나가 길을 잃은 유진을 유미에게 데려다 주는 사건은 세 아이를 하나의 가족으로 연결하는 데 중요한 매개가 된다. 세 아이는 하나가 지어준 밥을 먹으면서 빠르게 가까워진다. 

  영화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가족에게서 무력감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아이들만으로 구성된’ 완전한 가족을 선물한다. 그리고 대신 그들에게서 ‘집’을 빼앗으려 한다. 하나의 가정에서 는 ‘이혼’이라는 그림자가 점점 더 커지고, 유미와 유진 자매는 부모님이 집을 내놓아 이사를 가야하는 상황에 놓인다. 하나의 집은 안에서부터 무너져가고, 유미와 유진 자매의 집은 물리적인 위험에 처했다. 그렇게 한 가족이 된 세 아이는 ‘각자의 집’을 지키기 위해 ‘함께’ 행동한다. 어른들은 ‘집의 일’은 ‘아이들의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있어서 집은 어른들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다. 자신이 관계의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갈 터전이 바로 집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더 이상 손을 놓고 볼 수만은 없다. 하나, 유미, 유진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집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는 동시에 세 사람은 집을 짓는다. 유미가 모은 상자를 쌓아서 자신들의 손으로 멋진 종이 집을 만들어낸다. 유미와 유진 자매는 ‘수집하는 사람’이다. 10년 되지 않는 인생에서 다섯 여섯 번 이사를 다니고는 했던 그들에게는 지속되는 유대가 없다. 그 대신 두 아이는 그 곳에 흔적들을 모으면서 추억한다. 유미는 상자를, 유진은 놀이터에서 조개와 소라 껍데기를 모은다. 반면, 하나는 짓는 사람이다. 보통 밥 짓는 일을 많이 하지만, 하나는 흩어진 것을 모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유미가 모았던 상자들은 하나를 통해서 집이 되었다. 그리고 유진에게는 유대를 쌓고,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는 어쩌면 최초였을지 모르는 경험이 되었다. 

  <우리들>에서 선이의 여름방학 소원이 ‘바다’를 가는 것이었다. 이번 <우리집>에서도 ‘바다’는 아이들의 희망이 담긴 공간으로 등장한다. 하나가 쪼개져가는 가정을 붙이기 위해 꺼내든 카드가 바다로의 가족여행이었고, 유미와 유진의 부모님이 일하고 있는 공간 또한 해변의 호텔이다. 유미와 유진 자매에게 바다는 ‘엄마와 아빠’가 있는 곳이다. 유진은 항상 바다를 생각한다. 유진이는 놀이터에서 놀 때마다 조개나 소라들을 모으면서 그 공간을 추억한다. 가족을 그리며 조개와 소라를 모으는 유진은 하나의 손에 자신이 찾은 소라를 쥐어준다. 그렇게 하나는 유진에게 가족으로 기억된다. 

  하나와 유미, 유진 세 사람이 가족에 가까워질수록 바다는 더 멀어진다. 하나의 가정은 이혼을 맞게 되고, 예정되었던 바다로의 가족 여행도 무산되었다. 그리고 같은 날 유미와 유진의 집이 마음에 든 세입자가 마지막 결정을 하러 자매의 집을 찾았다. 하나는 자신의 가정은 무너졌지만, 자매의 가정은 지키고 싶다. 그래서 유미와 유진을 데리고 아이들의 부모가 있는 바다로 향한다. 그곳에 가서 부모님을 설득할 생각으로. 하지만 <우리집>에서 바다를 가고 싶다는 소망이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을 떠올려보면, 세 아이의 여정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선이가 바랐던 바다로의 가족 여행은 선이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유해를 뿌리기 위해 온 가족이 상복을 입고 바다에 선 것으로 대체 된다. 아이들이 바랐던 곳에 아이들이 그렸던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이 건들일 수 없는 더 큰 상실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와 유미, 유진의 여정 또한 그렇다. 아이들은 부모님이 일하는 보리해변을 찾기 위해 헤매고, 그 과정에서 언성을 높이며 갈등한다. 그리고 끝내 그들이 쌓았던 종이 집을 자신들의 발로 밟아 부순다. “이런 걸 왜 만들어가지고.”라며 한탄하며 눈물짓는 아이들. 아이들은 그렇게 스스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정’을 부순다. 그리고 빈 텐트에서 다시금 세 아이만의 가정을 꾸린다. 하지만 텐트가 가지는 임시적인 성격을 생각해볼 때, 세 아이가 함께 보낸 바닷가에서의 행복한 마지막 밤은 마음 한 켠을 아리게 한다. 

  그렇게 다시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집을 지키지 못했다는 현실을 마주하고,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유미와 유진이 집을 잃는 것은 하나를 잃는 것과 같다. 유미는 하나에게 우리가 멀어져도 계속해서 자신들의 언니가 되어줄 것을 확인한다. 아마 하나는 최선을 다해 두 사람을 위해 가족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최선을 다했음에도 붙여지지 않은 자신의 가족을 마주할 차례다. 하나는 집으로 돌아와 밥을 짓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 밥 먹자, 얼른. 든든하게 먹고 진짜 여행 준비하자.” 하나는 더 이상 붕괴되는 가정을 붙들고 서 있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이미 쪼개진 가족이 다시 붙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통감했다. 이제 하나가 할 수 있는 것은 마침표를 찍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함께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밥 한 번 먹는 일. 그 일로 마침표를 찍고, 각자가 바랐던 새로운 방향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을 준비하자고 말한다. 이렇게 아이는 또 하나의 ‘불가능’을 배웠고, 희망에 닿지 못했던 그만큼 세상을 알아갔다. 

  하지만 이 마지막 마침표 이후에 펼쳐질 미래는 단정 짓기 어렵다. 윤가은 감독이 <우리들>의 세계를 <우리집>에 섞어 펼쳐낸 것처럼 하나와 유미, 유진의 미래도 또 다른 ‘우리’의 이야기에 펼쳐질 것이다. 윤가은 감독의 영화는 하나의 사건으로 단정 지어지는 ‘점’이 아니다. 그렇기에 하나와 유미, 유진도 선이와 지아와 윤이가 그랬던 것처럼, 성장이라는 선 안에서 계속해서 그려질 것이다. <우리집>에서 만난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날지 기대된다. 그리고 어떤 모습이든, 그것은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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