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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May 25. 2017

500일의 썸머

한 끗 차이, 너라는 우연과 운명

 여름이 가까워지는 요즘, 팟캐스트 녹음을 위해서 로맨틱 코메디 명작 중 하나인 <500일의 썸머>를 오랜만에 다시 보았다. 다른 사랑관을 가진 썸머와 톰을 연기한 조이디 샤넬과 조셉 고든 레빗, 사랑스러운 두 배우의 호연과 함께 영화는 사랑이라는 달콤한 환상과 씁쓸한 이면 그리고 인생 속 운명이라는 이름의 사건을 조명한다.  




- 사랑이라는 달콤한 환상

 영화는 처음에 썸머와 톰 둘의 어린 시절을 음악과 함께 더듬어간다. 톰은 특별한 누군가를 만나기까지는 행복할 수 없다며,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는 청년으로 자라난다. 썸머는 부모의 파경으로 인해 2가지만 사랑하는데, 하나는 자신의 머리카락이며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손쉽게 그것을 잘라낼 때, 어떠한 아픔도 느끼지 않는 다는 점이다. 이렇듯 달랐던 둘의 유년시절은 훗날 둘의 인생관, 사랑관에 영향을 미친다. 

 썸머는 사랑 후의 상실의 상처를 겪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스스로 사랑하는 것들을 잘라낸다. 사랑은 의미 없는 환상일 뿐이며 사랑을 통해 ‘누군가의 무엇‘ 으로 규정되는 것을 경계한다. 그녀는 그저 그녀 자신으로 독립적이고 싶으며 즐길 수 있을 때, 즐기고 심각한 것은 나중에 생각하려 한다. 

 톰은 썸머를 처음 본 순간부터 사랑에 대한 환상에 젖어있다. 그는 썸머와의 만남을 ‘운명’이라고 규정한다. 이 운명이라는 단어를 통해 썸머는 그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달콤하다고 말하는 환상적인 맛을 가진 캔디’ 같은 존재가 된다. 운명이 톰을 작게 만들고 썸머를 크게 보이는 필터를 씌우자 둘 사이의 위계가 생기게 되고, 톰은 자신이 만든 썸머라는 환상을 쟁취하는 그만의 멀고 험한 모험의 길을 걷게 된다. 톰에게 사랑은 듣고 그려온 구체적 모습이 있는 가시적인 존재이며, 그는 그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둘의 사랑 속에서 홀로 분투한다. 

 반면 썸머에게 사랑은 무형적이다. 사랑의 상처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구속 없는 사랑을 원한다. 썸머의 상처 없이 온전하게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사랑은 톰이 꿈꿨던 둘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운명적 사랑만큼이나 환상의 영역 안에 있다. 둘의 영역 안에서 온전한 하나로 존재하기란 쉽지 않다. 그녀는 ‘둘’이라는 이름을 부정하는 것으로 스스로 거리를 두려 하지만, 둘은 단순한 하나와 하나의 합이 아니다. 하나가 하나로서 독립적일 수 있는 사랑을 꿈꾸는 썸머에게 둘이라는 고유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사랑은 내가 타인에게 흡수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둘의 사랑관은 그들의 삶의 방식에서도 엷게 묻어난다. 톰은 살아가다 보니 카드 문구를 만들고 있는 건축학도로, 건축은 꿈의 영역으로 미뤄두고 살고 있는 사람이고, 썸머는 새로움, 즐거움을 찾아 LA를 찾은 사람이다. 자신을 던져 넣을 구체적인 운명을 그리면서 기다리는 사람, 그리고 현재의 나를 지키며 지금이 가장 빛나는 사람. 둘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그렇기에 서로에게 가장 끌렸던 것 같다.    



  

- 썸머 : 푸르른 나를 지키는 일

 영화는 톰의 시선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그렇기에 썸머에 대해서는 톰이 더듬는 추억 속에서 은유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그 중에서 썸머를 대변하는 것 중 하나가 그녀의 색깔 ‘하늘색’이라고 생각한다. 

 톰과 썸머가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썸머는 하늘색 리본을 하고 등장한다. 이 하늘색은 헤어밴드, 블라우스 등으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썸머에게 있어서 사랑은 귀속적인 것이다. 그녀는 그 일을 최대한 피해 보려했지만, 톰이 뿌리 없는 관계를 불안해하자 그의 사랑관을 따르며 ‘그의 여자친구’가 된다. 톰은 갈색, 베이지, 검은 색과 같은 색깔들은 주로 입는데, 썸머는 톰과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그녀의 색깔은 짙은 푸른색, 파란색 위에 입은 짙은 색의 자켓, 검은색 등으로 물들어간다. 톰이 그런 그녀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완벽한 운명적 사랑’에 도취되어 있을 때, 그렇게 그녀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색깔을 잃어갔다. 

 톰과 헤어진 그녀는 다시금 그녀의 색깔을 되찾는다. 훗날 톰을 다시 만났을 때 썸머는 푸른 계열 스웨터와 그와 같은 채도의 회색 자켓을 입고 등장한다. 그리고 그녀는 톰에게 운명 같은 사람이 생겨서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어느 순간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는 그녀는 색깔은 다르더라도 같은 채도로 그녀를 안아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났던 것 같다. 그렇게 남이 나에게 스몄던 순간을 그녀는 처음 느꼈고, 그 지점에서 그녀는 톰에게 그가 꾸겨서 던져버렸던 운명이라는 메시지를 다시 그에게 남긴다.      




- 톰 : 우연을 운명으로 만드는 일

 톰에게 운명은 완벽하고 시의적절하며 계시와 같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썸머에게 빠질 수 있었고 연인이 될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그녀와의 사랑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썸머에게 첫 눈에 반한 운명적인 그 순간 이후, 그는 그녀에게 완전히 몰입했다. 썸머는 그가 닿지 못한 곳에 있는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작아지고 나에게선 먼 사람 같다는 느낌도 받지만 그녀와의 작은 공통점만으로도 그는 희망에 부푼다. 그의 간절함에 반응한 듯이 운명은 다시 그에게 썸머와의 사랑을 선물한다. 그는 썸머가 보여준 그녀의 부분들을 그가 그렸던 완벽한 사랑의 일부로 채워 넣는다. 톰은 그렇게 ‘썸머’와의 사랑이 아닌 ‘운명의 그녀’와의 ‘운명적 사랑’을 만들어나간다. 

 그는 ‘운명적 사랑’이라는 꿈을 이뤘다는 것에 도취되어, 썸머를 사랑이란 이름으로 규정짓게 된다. 그 시간 속에서 썸머는 자신의 색을 잃어가고, 운명적 사랑에 도취된 톰은 그녀와 보낸 수많은 우연의 시간들을 캐치해내지 못해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훗날 톰은 시간 안에는 수많은 우연들이 흐르고 있고, 그것을 운명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의지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지점에 이르렀을 때, 썸머와의 사랑 또한 공감하지 못한 미지의 상처로 기억되는 것이 아닌 사랑 그리고 그것이 녹아있는 삶을 살아가는 성장의 과정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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