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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un 08. 2017

이터널 선샤인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

 조엘은 발렌타인 데이에 얼마 전 헤어졌던 클레멘타인에게 화해와 사랑을 구하러 그녀의 취향에 맞는 작은 선물과 함께 그녀의 일터인 서점을 찾습니다. 하지만 클레멘타인은 얼마 전까지 사랑했던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 채, 새로운 사람과 사랑을 시작한 상태인데요.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조엘은 친구를 찾아가 하소연 하던 중, 클레멘타인이 이별 후에 그에 대한 기억을 모두 지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조엘은 그 길로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인 ‘라쿠나’를 찾고, 그 또한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게 됩니다. 

 하지만 조엘은 기억이 지워지는 과정에서 클레멘타인과 함께한 추억들을 더듬으며, 그녀를 잊기 않기 위해서 애쓰게 되는데요. 반대로 뒷걸음치며 그날의 너에게로 돌아가는 조엘의 모습에서 한동근의 노래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가 떠오릅니다. 


     

“운명 같은 만남 너무 아픈 결말, 난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     


 기억을 도려내도 사랑은 영원한 것일까요, 조엘이 기억을 더듬어가며 발견한 녹슬지 않은 영원한 햇살은 무엇이었을까요. 영화 <이터널 선샤인>은 이런 질문들을 남기며 권태에 묻혀 버린 사랑의 가치에 대해서 기억을 헤매는 두 남녀, 조엘과 클레멘타인을 통해서 보여줍니다.     




- 내 한 권의 사랑 마지막 장면엔

 기억을 지우기로 한 조엘, 그의 기억은 기억을 지우기로 한 최근의 기억에서부터 시작해 클레멘타인을 처음 만날 날까지 차례로 지워져 갑니다. 조엘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기억, 그리고 그 때의 감정과 생각들을 고스란히 다시 겪게 되는데요. 그는 가장 최근에 클레멘타인과 겪었던 격렬한 싸움, 권태의 기억은 무심하게 흘려보내지만 둘이 사랑했던 기억에 닿자, 클레멘타인을 잊기로 한 것을 후회하며 기억 속 그녀를 지키기 위해 기억 속을 헤맵니다. 

 기억을 지우기 시작한 초반부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클레멘타인과의 사랑을 시간 순으로 되돌려 봤을 때, 가장 처음으로 등장하는 권태의 순간이었습니다. 클레멘타인과 조엘은 레스토랑에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 조엘이 일기장에만 적어놓았던 그만의 목소리가 겹쳐집니다. ‘둘’의 관계에서 독립된 그의 권태의 목소리는 클레멘타인에게는 전달되지 않으며, 그녀에게 이런 그의 비밀은 대화의 단절이자 둘 사랑의 불투명한 티끌로 자리하게 됩니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은 클레멘타인과 소통에 대화는 필수가 아니라며 자신의 영역을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지키는 조엘, 두 사람의 불협화음이 권태 앞에서 이별이라는 결말을 가져왔음을 보여줍니다. 

 하나하나 기억을 지워가던 조엘은 그녀와의 사랑의 기억에 이르러서야 그녀를 잊지 않기 위해 애쓰는데요. 여기서부터 영화는 기억이 가지는 다층적인 성격들을 안 밖으로 보여줍니다. 그의 마음을 바꾼 기억은 클레멘타인이 자신의 어릴 적, 자신이 느꼈던 고독에 대한 이야기를 마주했을 때입니다. 그녀의 가장 아픈 부분을 마주한 조엘은 그녀를 사랑으로 위로하며 교감하는데요. 여기서 화면은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 조엘이 기억하는 그녀의 어릴 적 모습, 인형 등을 따라서 흐르게 됩니다. 조엘이 놓치고 싶지 않은 이 기억은 이전까지의 단편적 기록으로서의 기억이 아닙니다. 사랑의 기억은 단순한 혼자만의 일방적인 감각, 감정, 시간이 아닌 상대방의 감각, 감정, 과거를 포함한 시간까지 짙게 엉켜있다는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묻어두고 있는 남자 조엘이, 클레멘타인의 연약함을 마주했을 때가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랑의 기억이라는 점도 얼마나 다른 둘이 만나 특별한 사랑을 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서로의 시간, 공간, 감정을 함축하는 사랑의 기억에 대한 메시지는 조엘의 기억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 현실에서도 반복되는데요. 기억을 지운 클레멘타인과 그녀의 현재 남자친구인 패트릭 그리고 라쿠나 회사 프론트 직원 메리와 기억 삭제를 담당하는 박사 하워드의 이야기를 통해서입니다. 

 패트릭은 기억을 지우고 불안정한 클레멘타인에게 잘 보이려 조엘이 버리고 간 둘의 사랑의 흔적을 바탕으로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사랑을 반복합니다. 하지만 클레멘타인은 그 과정에서 더 불안정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조엘의 기억을 따라하며 완벽했던 사랑을 가장해 보지만 계속 어긋나는 패트릭의 서툰 시도들은 기억, 특히 사랑에 대한 기억은 결코 기록을 통해 모방할 수 없는 유일한 것임을 드러냅니다. 

 메리와 하워드의 이야기 또한 삭제된 기억을 뛰어넘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불륜관계였던 둘은 메리의 기억을 지움으로써 한 번의 사랑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하지만 메리가 다시 그에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비극이 벌어지게 되는데요. 아픈 사랑의 기억을 지웠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예상 가능한 실수일 수 있는 이 상황은 사랑의 필연성을 다른 인물들로 변주해 보여줍니다. 이 필연에 가장 중요한 조건인 ‘그 사람’은 ‘나’를 주체로 ‘그’와 함께한 복합된 기억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한 이별의 통각이 삭제된 사람들이 다시 불완전한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을 보면서, 이별의 과정도 사랑의 일부라는 점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조엘의 기억은 시공간이 겹쳐지며 빠르게 소각되어가고 조엘은 클레멘타인과 함께 일그러진  기억을 달려 자신의 가장 나약한 부분까지 도망치게 되지만, 결국 그는 클라멘타인을 잊게 됩니다. 영화는 다시 시작으로 돌아가 기억을 지운 후 두 사람이 몬토크에서 만나 다시 사랑에 빠진 시점으로 이동합니다. 이때 하워드와 있었던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메리가 기억을 지운 사람들에게 파일을 되돌려 주면서 다시 사랑을 시작한 조엘과 클레멘타인에게 큰 혼란을 가져다줍니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사랑이 끝난 후 서로를 신랄하게 해부하고 헐뜯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으며 다가올 미래에 불안해하고 혼란스러워 합니다. 떠나는 클레멘타인을 붙잡는 조엘에게 그녀는 완벽하지 않은 자신과 앞으로 닥쳐올 권태와 이별의 결말을 이야기 합니다. 조엘은 그런 그녀에게 그래도 ‘괜찮아요’ 라는 말을 되풀이 합니다. 메아리처럼 그 말을 주고받으며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모습과 함께 영화는 마무리 됩니다.      




 "너에게 묻고 싶어 너만 괜찮다면, 난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

   내 한 권의 사랑 마지막 장면엔 니가 있어야 해 그래야 말이 되니까 "    


 ‘이 소설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의 마지막 부분의 폭발하는 애절함은 없지만, 영화에서 사랑의 말로를 알고 다시 시작하는 둘의 사랑에도 대체할 수 없는 애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비록 단 한 사람으로 버무려진 잊을 수 없을 것 같던 기억은 잃었지만, 이별의 추악한 말로를 맞닥뜨렸을 때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앞에 그 기억을 다시 쓸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있는 한, 시간이 관계를 녹슬게 해도 둘이 써내려 간 사랑의 기억, 그 영원한 햇살은 변하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았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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