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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un 01. 2017

죽여주는 여자

낙엽 무덤 속 들꽃 한 송이

소영은 종로에서 ‘박카스 할머니’로 할아버지들을 상대하며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죽여주는 여자로 소문이 나 가장 인기가 많은 박카스 할머니 중 하나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고객 중 하나였던 송 노인이 풍을 맞아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문안 차 그를 찾아간다. 송 노인은 소영에게 자신을 죽여줄 것을 부탁하는데, 그녀는 고민 끝에 그를 죽여주게 된다. 그 이후로 죽음을 사주하는 노인들이 그녀를 찾자, ‘죽여주는 여자’ 소영의 일상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우리 사회의 그늘을 조명하며, 그 속에서 삶과 죽음의 단면들을 보여준다.     




- 낙엽 무덤 속 들꽃 한 송이

 소영은 트렌스 젠더 티나, 장애를 가진 성인 피규어 작가 도훈과 함께 이태원에 터를 두고서 살고 있다. 그녀는 성병 치료차 들렀던 병원에서 코피노 아이와 함께 아빠를 찾아온 필리핀 여성의 소동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 소동에서 도망친 코피노 아이를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데리고 오게 된다. 이렇듯 소영 곁에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함께 있으며 그녀는 그들을 미약하지만 따뜻하게 이어주며 곁을 지킨다. 영화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노인, 장애인, 코피노, 트렌스젠더를 구성원으로 한 가족의 예를 보여주면서 소외된 사람들이지만 서로 아픔을 다독이며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죽여주는 여자’ 소영은 노인, 그 중에서도 그들에게 성을 서비스하는 가장 낮은 위치의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헌신한다. 심지어 죽여 달라는 요구들까지 들어주게 되는 그녀는 약하고 여린 존재인 동시에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는 노인들의 상황을 가장 깊이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 부분에서 소영은 사회에서 밀려난 노인들에게는 죽음을 통한 삶의 존엄을 지켜주는 마지막 사람이기도 하다.

 한편, 소영의 주워오듯 데려온 코피노 아이와 한 지붕 사람들을 향한 헌신은 뿌리 없는 사람들을 연대하는 모성의 이미지로도 등장한다. 그녀는 젊을 적 동두천 미군부대 근방에서 일을 하며 가졌던 아이를 입양 보냈던 이력이 있다. 그런 그녀에게 코피노 아이 민호의 사정은 특별하게 다가왔고, 못 다한 모성을 늦게나마 민호에게 쏟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소영은 마지막 죽음을 도운 후 받은 돈의 대부분을 절에 시주하고, 일부를 함께 사는 가족들과 근교 소풍을 가는 데 쓴다. 소풍 중에 자신이 수배 중인 사실을 알게 된 소영은 그녀를 돈 때문에 살인한 사람으로 보도하는 뉴스에  “그 사람이 무슨 사연이 있겠지, 아무도 진짜 속사정은 모르는 거거든, 다들 거죽만 보고 대충 지껄이는 거지” 라며 대답한다. 이는 그녀 곁에 있는 모든 소외된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대한 그녀의 작은 항변이다.  결국 소영은 이 소풍을 마지막으로 연행되어 감옥에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소영은 무연고자 양미숙이 아닌 죽음과 삶 모두에 헌신한 사람으로 뿌리 없는 그들과 영화를 본 우리의 기억에 남는다. 



 영화는 여름 나무들 사이에 한 송이 핀 들꽃으로 시작하는데, 이 꽃은 나중에 소영이 첫 죽음을 도운 이후에 박카스 할머니로서 가진 관계에서 다시 등장한다. 그 때의 들꽃은 가을 낙엽 사이에 홀로 피어있는 모습이다. 우거진 나무 그늘 아래서 빛을 찾아 가느다랗게 핀 들꽃의 모습은 사회의 그늘 속에서 삶과 죽음에 헌신하는 소영의 모습과도 같다. 영화 속 계절은 여름에서 겨울을 향해 간다. 가느다랗게 겨우 피어난 들꽃은 눈을 맞으며 사회에서 사라져 간 소영처럼 속절없이 흐른 계절에 사라져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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