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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ul 16. 2017

맨체스터 바이 더 씨

더딘 한 걸음

   

 보스턴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혼자서 메마른 삶을 살고 있는 ‘리’는 어느날 형인 ‘조’가 심부전으로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서 고향인 맨체스터로 향합니다. 결국 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리’는 당분간 맨체스터에 머무르며 형의 장례를 준비하며 형의 하나뿐인 가족이자 그의 조카 ‘패트릭’을 돌보게 됩니다. 

 유언장을 낭독하던 날, 리는 조가 자신을 패트릭의 후견인으로 지목했다는 사실에 혼란에 빠지는데요. 맨체스터에 뼈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리는 패트릭에게 보스턴에서 살 것을 제안하지만 패트릭은 자신의 일상의 전부인 맨체스터를 떠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대합니다. 

 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조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상실을 공유하는 유일한 두 사람이 상실의 상처를 받아들이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 세상에 녹다운 당한 사람의 더딘 한 걸음

 조의 죽음은 두 사람에게 같지만 다른 방식으로 전해집니다. 과거에 있었던 맨체스터에서의 상처를 짊어지고 타인과의 관계없이 살아왔던 리에게는 형의 죽음은 그를 통해 맨체스터라는 공간에 있음으로써 모든 관계, 그리고 그의 트라우마를 하나하나 일깨우게 되는 한 사건입니다. 따라서 그는 내내 형의 죽음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며 사무적으로 대합니다. 

 모든 가족들이 떠나고 아버지라는 하나뿐인 가족을 잃은 패트릭은 겉으로는 그 누구보다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며 예정된 일을 맞이한 것처럼 덤덤하게 생활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비어있는 자리는 메워지지 않는데요. 상실을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은 초반에 조의 마지막 모습을 만나러가는 데에서부터 드러납니다. ‘가자’는 중성적인 말에 취한 서로 다른 행동, 그리고 영화 속에서 부분 부분 이어지는 둘이 엇갈리는 장면들은 서로가 공유하는 상실의 존재는 같지만 상처의 크기와 모양은 다르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리에게 조는 리가 저지른 돌이킬 수 없는 큰 상실을 남긴 과오와 그로 파생된 죄책감이 그의 인생을 점령하고 있는 불행한 삶을 지탱해준 유일한 사람입니다. 맨체스터에서 보스턴으로 이사를 간 리에게 조는 ‘가구’를 놓을 것을 제안합니다. 가구는 ‘놓는다’고도 하지만 ‘들인다’라고도 하는데요. 삶의 공간에 존재가 들어온다는 식의 표현으로 가구를 대하듯이, 가구는  움직이지 않고 공간에 묵직하게 자리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뿌리 같은 역할도 합니다. 이렇듯 조는 리의 공간에 가구를 들이면서, 리의 삶을 붙들고 그가 눈앞의 슬픔과 죄책감이 아닌 더 먼 미래를 계획하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그와 같은 맥락으로 그를 후견인으로 지목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묻어두었던 맨체스터의 아픔을 맨체스터라는 공간 안에서 직시해나가는 리는 파도를 맞는 모래성처럼 자꾸만 스러져 갑니다. 


 패트릭은 아버지의 죽음에도 일상을 놓치지 않고 오히려 더 맨체스터 속 관계들에 집착합니다. 또한 그는 아버지가 남긴 배 한 척과, 냉동고 속에 있는 아버지의 시신에 계속해서 마음을 쏟는데요. 리는 계속 현실적으로 이 두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패트릭은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완강하게 맞서며 차이를 드러냅니다. 조의 장례를 두고서 깊어진 둘의 좁혀지지 않는 냉담한 관계는 추위 속에서 주차한 차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으로도 보여지는데요. 맨체스터의 추위는 일상을 빠르게 굴려가고 있는 패트릭도 피할 수 없게 그의 삶에 스며들며 일상의 구심점이었던 아버지의 부재를 상기시킵니다. 결국 패트릭은 냉동고에서 쏟아진 고기들을 정리하며 회피했던 슬픔을 쏟아내게 됩니다. 패트릭은 할 도리들을 다하며 덤덤하게 패트릭 옆에 존재하고 있는 리만이 그가 느끼고 있는 상실의 슬픔을 유일하게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훗날 집에 있는 총을 정리해 배를 수리해나가며 둘의 공유한 ‘조’의 상실은 함께 치유해 나갑니다. 

 반면, 리의 상처는 패트릭보다 깊고, 계속해서 상처가 난 그 자리에 머물러있습니다. 과거의 사건은 현재 맨체스터에서 자리를 잡아보려는 그에게 꼬리표처럼 계속 따라붙는데요. 이렇듯 리는 과거의 과오에 파묻힌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로 외로운 자책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의 상실은 오직 한 사람, 함께 그 상흔을 겪었던 랜디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서 치유라는 영역으로 더딘 한 걸음을 옮기게 됩니다. 하지만 맨체스터라는 공간 자체가 상실의 공간인 그에게는, 덮어놓은 상처를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온 힘을 소진하게 되는데요. 결국 그는 맨체스터에 다시 뿌리를 두지 못한 채, 그를 찾을 누군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해둔 그의 은신처로 되돌아갑니다. 

 인생에 있어서의 가장 큰 상실을 마주한 두 사람, 리와 패트릭. 조를 묻고 돌아가는 둘이 실없이 공을 던지며 주고받는 모습에서 두 사람이 ‘상실’이라는 하나의 상처를 공유하며 다독이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비록 서로 상처를 회복할 공간은 다르지만, 하나의 상실을 직시하고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서 상실의 공간에 둘의 관계가 새롭게 차오르는 것을 보여주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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