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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ul 11. 2017

기쿠지로의 여름

우리들은 자란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마사오는 여름방학이 되어도 전혀 즐겁지가 않다. 할머니가 일을 하러 나가시면, 마사오는 언제나처럼 혼자이다. 여름방학이라 학교 축구교실도 쉬고 친구들은 가족들과 여행을 가버려 동네에는 우울한 꼬마 마사오 혼자뿐이다. 

 그러던 중 돈을 벌러 갔다던 엄마의 주소를 알아낸 마사오는 엄마를 찾아 홀로 떠난다. 길을 떠나려는 마사오의 이야기를 들은 이웃 아주머니는 빈둥거리는 건달 같은 남편을 보호자로 함께 딸려 보낸다. 이렇게 순진한 소년 마사오와 어딘가 덜떨어진 전직 야쿠자 ‘기쿠지로’의 여름이 시작된다.      



- 우리들은 자란다

 막무가내에다 안하무인인 기쿠지로와의 여행이 녹록할 리가 없다. 경륜장에서 돈을 다 써버리고 마사오를 한 차례 잃어버리고 나서야, 마사오에 대한 미안함에 엄마를 찾는 여행을 시작한다. 영화는 막무가내 아저씨인 기쿠지로와 순진한 소년 마사오의 여행을 특유의 코믹한 분위기와 사건들로 이어나간다. 뒤돌아서면 엉뚱한 사건이 벌어져 있는 영화는 빈틈과 단편적 사건들을 연결해 웃음을 만들어낸다. 그 의도된 서툰 모습이 어린 아이가 적어 내려가는 일기처럼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순수하다. 

 영화는 첫 장면에 천사 그림, 천사 가방을 맨 마사오가 종소리와 함께 달려 나가는 모습 등 천사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이는 둘의 여행이 진행되면서 그 의미를 차츰 드러낸다. 출입 금지 지역에서 기쿠지로와 마사오와 함께 행복한 한 때를 보냈던 한 커플이 마사오에게 천사 날개를 단 가방을 선물한다. 그리고 후에 상심한 마사오에게 동네 청년들에게서 빼앗듯이 가져다 준 ‘천사의 종’은 그 청량한 소리와 함께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 기쿠지로는 마사오에게 엄마가 아닌 다른 희망을 선물해 주었고, 마사오는 기쿠지로 옆에서 그 자체로 그의 인생을 반추하게 만든 천사로 존재한다. 

 마사오의 엄마를 찾는 여정 후 돌아가는 길에서 기쿠지로는 요양원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 먼 걸음에서 안부를 확인하고 돌아선다. 마사오의 무모한 여행을 도우며 그 또한 어머니의 의미, 그리고 어린 존재를 보호하는 수호자 혹은 아버지로서의 역할에 자그맣게 눈을 뜬다. 

 반대로 가고, 잃고, 놓치는 듯한 더딘 여행이었지만 마사오와 함께 온몸으로 놀아주며 뒹굴었던 그 여름은 마사오에게도 그리고 기쿠지로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들이 가득한 여름일 것이다. 또한 마사오가 한 뼘의 희망을 가진 어린아이로 자랐듯이, 이제는 더 이상 자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기쿠지로의 여름도 한 뼘 자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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