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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ul 21. 2017

옥자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생명들을 위하여

 


영화 <옥자>는 세계적인 기업 ‘미란도’에게서 슈퍼돼지이자 가족인 옥자를 지키기 위한 미자의 험난한 여정을 그린다. 그 여정 속에서 옥자를 구하겠다는 그녀의 순수한 마음은 도시 숲의 가시밭 길 속에서 상처받으며 처참하게 찢기지만, 옥자를 부르는 그 목소리는 도시의 수많은 목소리들 보다 강하게 마음을 울린다.      



- 인간의 생태계, 자본주의의 동화 

 세계에 뿌려진 수많은 슈퍼 돼지 중에서 가장 건강하고 거대하게 자란 옥자를 향한 기업 ‘미란도’의 약속된 거래는 ‘옥자’라는 이름으로 미자와 함께 자란 10년의 세월을 부정하고 ‘옥자’를 잘 자란 슈퍼돼지로 뉴욕으로 끌고 간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을 찾고자 하는 순수한 미자의 입장에 서서 산골에서 자본주의의 전승탑들이 있는 뉴욕으로 달려 나간다. 

 자본주의의 정글에는 ‘옥자’와 ‘미자’를 원하는 여러 무리들이 있다. 정글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여왕개미 같은 ‘미란도’ 그룹과 그들 밑에서 일하는 수많은 일개미들. 그리고 미란도에 기생해 살아가고 있는 동물학자 ‘죠니’와 미란도 그룹의 실체를 밝히고 동물들을 해방시키는 동물 애호단체 ALF. 하지만 동물의 ‘자유’를 주장하던 ALF는 어느 샌가 초점을 ‘미란도 그룹’에 맞춰 그들의 횡포를 드러내는 것에 집착하며, 옥자와 미자는 이 ALF로 인해 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미란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자본주의의 화려한 무대에서 자본의 추악함을 ALF가 옥자와 미자를 통해 드러내자 자본은 빠르게 그 모습을 바꾼다. 미란도에게서 낸시에게로 옮겨 붙은 자본주의의 불은 보다 솔직하게 ‘돈’을 향해 달린다. 

 “싸면 다들 먹어” 라는 낸시의 차가운 진실의 한 마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생태계에 대해 일축하며 우리를 옥자와 미자의 애절한 동화에서 떼어내고 우리가 바로 ‘옥자’를 먹는 ‘소비자’라는 점을 밝힌다. 따라서 우리는 도살장에 모인 수많은 슈퍼 돼지들 중에서 ‘옥자’만을 부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목도했을 때 입으로 들어왔던 수많은 이름 없는 생명들에 대한 생각에 처참함을 느낀다.  



    

- 이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생명들을 위하여

 영화는 내내 옥자 곁에 돼지들을 두며 우리들에게 이름 없이 ‘돼지’로 죽어간 생명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옥자’라는 이름은 돼지 저금통, 돼지 캐릭터, 금돼지, 돼지고기 등 죽은 채로 우리 곁에 이름 없이 사라져간 그들 하나하나를 밝혀낸다. 

 겨우 옥자를 찾아낸 미자는 한 번의 호소와 한 번의 거래를 한다. 옥자를 죽일 총을 든 자에게는 그들의 세월이 담긴 ‘가족’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사진을 꺼내 보여준다. 그가 사진을 보고 멈칫하자 낸시는 그에게 다시 공정을 이어가라는 지시하는데, 이번에 미자는 그녀를 상대로 거래를 한다. 누구보다 깔끔 명확한 돈의 원리는 옥자와 미자의 세월을 ‘죽은 금돼지’ 하나로 정리한다. 이렇게 산골소녀 미자와 자본주의 생태계에 살고 있으면서 일말의 동화를 꿈꿨던 우리는 돈이 재단한 사회를 격렬하게 뒹굴며 자본주의를 학습한 후 터덜터덜 자본주의 정글에서 걸어 나온다. 

 하지만 영화는 봉준호 감독 영화가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다음 세대에 대한 희망을 남겨둔다. <괴물>에서 현서가 구해낸 아이, <설국열차>에서는 요나가 구해낸 아이를 통해 자꾸만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사회 속 마지막 희망을 이야기 했다면, <옥자>에서는 옥자의 입으로 구해낸 작은 새끼 돼지 한 마리가 자본주의의 공정 속에 있는 우리 모두를 대변하는 희망으로 살아남으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 속의 이름은 수많은 것을 대신한다. 미란도는 친환경, 기업, 어쩌면 세계까지 대변하며, 죠니는 자신과 자신의 이름을 판매한다. ALF는 영화 쿠키 부분에서는 담뱃불을 지져 끄며 왜곡된 번역의 끝을 알렸지만, 그들도 이름에 많은 것을 담으려다 곡절을 겪었다. 영화 속에서 오직 옥자와 미자의 이름만이 순수하게 그들을 지칭하고 있다. 미자가 옥자에게 건낸 귓속말에 어떤 이야기가 전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귓속말의 은밀하면서도 내밀한,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깊숙이 다가서는 친근감을 알고 있다. 내내 옥자에게 귓속말을 해주던 미자가, 영화 마지막에 옥자로부터 들었던 귓속말은 무엇이었을까. 미자로부터 배운 둘 만의 이야기의 첫 시작은 어쩌면 미자의 이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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