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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ul 31. 2017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공허가 공허를 위로할 때


 유명한 영화배우인 ‘밥 해리스’는 위스키 광고 촬영 차 도쿄를 방문한다. 그는 낯선 언어로 가득 찬 공간 속에서 중년의 영화배우로서, 가장으로서의 삶에 대한 공허에 빠져든다. ‘샬럿’은 남편 존의 출장을 따라 도쿄에 왔다. 존은 일본 전역을 바쁘게 돌아다니며 일을 하고, 샬럿은 그렇게 혼자가 익숙해져 버렸다. 그녀는 낯선 나라에서의 불안과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불안 속에서 인생의 공허를 느끼고 있다. 두 사람은 어느 날 유일하게 그들의 모국어가 흐르는 호텔의 바에서 만난다. 그렇게 공허한 둘은 서로를 만나 짧은 시간 동안 복잡한 도쿄 속에서 이방인으로서의 공허함이라는 교집합으로 소통하기 시작한다.      




- 공허가 공허를 위로할 때 

 호텔이라는 공간은 보통 ‘여행’을 의미하는 공간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 여행도 설렘과 불안이 공존한다. 그것은 모두 ‘떠남’에서 온다. 여행자는 고향에서는 ‘떠난 자’이며, 여행지에서는 ‘떠날 자’이다. 영화는 떠나고, 떠날 사람으로서의 두 주인공이 머무는 곳을 호텔로 잡았다. 호텔은 언제나 새것 같다. 닳거나 손 때 남은 곳은 없다.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매일 같은 풍경이 반복되는 그 곳에서 떠날 사람, 이방인으로 머무는 해리스와 샬럿은 마음 둘 데 없이 공허하다. 

 일본어를 할 줄 모르는 그들은 소통이 단절된 채 도쿄라는 도시를 유영하듯 돌아다닌다. 그나마 통역사와 함께하는 해리스는 통역사의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통역은 원래의 의미보다 단절되고 변형되어서 그를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언어의 차이로 인한 소통의 혼선 그리고 호텔 방에 혼자 머무는 외로움은 그의 삶에 있는 공허를 서서히 뭍으로 떠오르게 한다. 

 통역이 필요한 것은 일본에 있는 이방인으로서의 며칠뿐만이 아니다. 두 사람의 공허한 인생에 있어서도 통역이 필요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결혼 했지만, 곁에 없는 배우자와 가족. 그들과의 소통에 있어서 샬럿과 해리스는 언제나 후련하지 않다. 대화는 이어지고 있지만 본질이 없는, 감정이 없거나 스쳐가는 그들의 대화는 샬럿의 인생은 고립으로, 해리스의 인생은 권태로 적신다. 

 서로 인생의 다른 지점에서 공허를 느끼는 둘은, 인생의 이방인으로서의 공허라는 교집합으로 함께 어울린다. 남편 존이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날, 샬럿은 해리스에게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갈 것을 권한다. 그날 밤, 다소 과한 존의 밀리터리 티셔츠를 보고 샬럿은 “진짜 중년의 위기네요.”라고 말한다. 존은 그 말을 듣고 옷을 뒤집어 입는다. 옷을 뒤집어 입고 샬럿과 어울리면서 그의 권태도 조금씩 씻겨나가는 듯하다. 하지만 그가 부르는 노래 속에는 인생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다. 그날 밤, “사랑해”라는 말이 시차에 묻힌 것처럼 그는 여전히 권태 속에 있다. 

 호텔에서 혼자 지내다 발을 찧었던 샬럿은 지나가는 말로 존에게 아직도 발이 아프다고 이야기하며 장난스럽게 상처를 보여준다. 하지만 존은 상처가 심해 검게 멍든 발을 치료해야 한다며 둘은 함께 병원을 찾는다. 아프다는 이야기도, 병원을 함께 가줄 남편도 곁에 없었던 그녀는 그녀와 똑같이 일본어는 하나도 하지 못하는 존에게 의해서 보살핌을 받는다. 이렇듯 존과 샬럿은 도쿄의 이방인으로서 그리고 삶의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공허를 함께 나눈다. 

 둘은 그날 밤 해리스의 방에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사는 게 힘들다는 샬럿은 존에게 나이 들면 나아지냐고 묻는다. 그에 해리스는 자신에 대해 잘 알수록 주변 상황에 덜 흔들리게 된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도 여전히 인생에 어렵다. 그녀의 고민에 쉽게 답을 내려주던 해리스도 결혼 생활에 대해서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많은 것이 변한다고 말하는 해리스는 그가 느끼는 결혼 생활의 공허함을 이야기 하다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말을 끝맺는다. 인생의 먼저 살아가 다른 지점에 서 있는 해리스가 이제 결혼 2년차에 앞을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해하는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저 특별하지 않는 자신의 삶을 그대로 읊어주는 것 정도이다. 하지만, 존이 샬럿 곁에 있음으로서 권태를 잠시 씻어 냈듯, 샬럿도 존이 그녀의 발을 토닥이며 “희망을 가지라”는 말에 불안을 잠시 내려놓는다. 

 이런 둘 사이에도 잠깐의 혼선이 있다. 해리스가 곁에 쉽게 다른 이로 외로움을 채웠다는 배신감 때문이었을까. 샬럿은 해리스가 바의 가수와 동침한 사실을 알자 ‘대화가 잘 통했겠다’며 둘을 비꼰다. 하지만 잘못 울린 화재 경보에 밖으로 나온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인 서로를 발견한 둘은 자신의 외로움을 이해할 유일한 사람을 찾은 듯 다시 웃으며 대화를 이어간다.

 해리스가 떠나는 마지막 날, 그는 가는 길을 멈추고 다시 도쿄의 거리를 공허하게 유영하는 샬럿을 발견하고 따라가 그녀를 품에 꼭 안아준다. 그리고 그녀에게 먼저 떠나가는 공허가 귓속말로 관객도 모르게 작은 소리로 둘만의 대화를 나눈다. 샬럿의 귀에만 들리는 해리스의 말을 통해서 둘은 인생의 혼자 선 이방인이 아니라 잠시나마 ‘둘’로서 존재하며 거리를 가득채운 이방인의 대화들에서 멀어진다. 둘은 다시 안녕이라는 말로 이별한다.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는 공허와 공허가 맞닿는 순간에 바뀌는 ‘둘’이 가지는 공기가 특별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서로 보내고 있는 다른 인생의 지점에 서있는 둘이 공유하는 같은 농도의 권태와 외로움은 그것을 알아본 사람들이 잠시 스치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사랑과 위로를 건낸다는 걸 이야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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