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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Aug 21. 2017

시간을 달리는 소녀

지금, 너에게

 치아키, 코스케와 함께 평범한 하루하루를 보냈던 마코토. 그 평범했던 어느 날, 마코토는 과학실에서 정체불명의 사람에 놀라 넘어지는 우연한 사건을 통해서 시간을 넘나드는 ‘타임리프’ 능력을 손에 넣게 되는데요. 그녀는 이 능력으로 잦았던 실수들을 돌이키며 지각도 하지 않고, 성적도 올리는 등 완벽한 하루하루들을 보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불쑥 언제나 친구인 줄만 알았던 치아키가 고백을 해오면서 마코토의 완벽했던 일상에 균열이 일어납니다. 그녀는 치아키의 고백을 없던 일로 만들면서 다시금 그들의 관계를 일상으로 돌려놓지만, 고백을 들었던 마코토는 치아키를 전과 같은 시선으로 보기 힘들어졌는데요. 또 이 때부터 돌려놓은 시간들이 가져오는 나비효과들이 하나 둘 씩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다시금 뒤틀리는 일상의 균형 속에서 마코토는 다시 완벽했던 일상을 되찾으려 열심히 시간을 달립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여름’이라는 분방하게 하늘로 치솟고, 하늘에서 땅으로 따갑게 내리꽂는 계절에 생각나는 영화인데요. 기로에 선 청춘이 어떻게 온몸으로 부딪혀가며 머물고 싶었던 청춘의 한 지점을 떠나보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영화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푸르른 여름, 생명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그 뜨거운 지점에 선 청춘들의 이야기는 언제 봐도 찬란한 것 같습니다.      



- 지금, 너에게

 영화 속에서 마코토는 말 그대로 시간을 ‘달려’ ‘뛰어’ 넘습니다. 주문이나 눈을 질끈 감는 식의 타임리프와는 다르게 ‘달리기’와 ‘뛰기’는 시간을 넘나드는 자에게 최대한의 육체적 활동을 요구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다른 판타지보다 정직하게 타임리프라는 대가를 쟁취해내는 것 같습니다. ‘달려가 뛰는’ 일은 명확한 목적지가 있는 행동이며, 그 곳까지 최대한으로 공간을 해쳐나가는 것이니까요.

 마코토는 기로에 서있습니다. 문과인지 이과인지를 고르는 기로, 미래에 대한 기로로서의 청춘, 그리고 치아키와의 관계에 대한 기로. 처음에 그녀는 이 기로들 사이에서 멈춰있고 싶어 합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일도 ‘전과 같은’ 일상을 위해서 사용하죠. 하지만 ‘달려서 뛰는’ 타임리프를 이용하면서 그녀는 점점 마음이 이끄는 지향점을 찾아가며 성장하게 됩니다. 

 그녀를 가장 흔들어 놓았던 사건은 치아키의 고백과 그와의 이별입니다. 치아키의 고백으로 세 친구의 평온했던 관계가 뒤틀리게 되는데요. ‘코스케가 여자친구가 생기면’ 으로 시작되는 치아키의 고백은, 더 이상 세 친구가 ‘친구로서’ 마주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마코토는 다시 일상의 균형을 찾기 위해서 시간을 몇 번씩 돌려 고백을 없던 일로 만들려 하지만, 같은 시간과 자리에서 치아키는 언제나 그녀에게 고백을 해옵니다. 둘이 함께하는 하나의 시간에 고정된 애틋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고 생각한 마코토는 끝내 치아키와 다른 길을 가며 고백을 없던 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일 이후로, 타임리프의 대가들이 하나 둘 씩 따라옵니다. 자신을 비켜간 화들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 붙는 현장을 본 마코토는 타임리프의 대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데요. 또한 치아키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은 몇 번을 들었던 고백에 대한 기억이 치아키를 마주하기 힘들게 합니다. 영화 후반, 마코토의 타임리프의 제한된 횟수는 줄어들어가고 영화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으로 까지 치닫게 되는데요. 그 비극을 치아키가 시간을 되돌려놓고 일상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서 마지막 ‘타임 리프’의 반전과 함께 마코토와 치아키의 이별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정지된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는 보지 못할 치아키가 점점 군중 속으로 사라져 목소리만 들려올 때, 마코토는 ‘내 사람’이 사람들에 의해서 사라져 가는 것에 불안해하는데요. 이 장면에서 마코토는 아마 그녀가 지웠던 치아키의 고백, 삭제시킨 그 고백의 감정을 군중 속을 해매며 ‘내 사람’을 찾으며 애틋한 감정의 무게를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다시 주어진 한 번의 기회. 마코토는 마음이 시키는 방향대로 치아키를 향해 마지막으로 시간을 달립니다. 영화는 마코토가 치아키에게 달려가는 장면을 길게 잡아냅니다. 오른쪽 끝에서 시작해 왼쪽 끝까지 헉헉 숨을 꼴깍이며 달려나가는 마코토는 이제 시간이 아닌 ‘지금, 너에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건물가들을 달려나가다가 순간 펼쳐진 파란 하늘과 뭉게구름은 치아키에게 달려가는 그녀의 푸르른 마음을 보여주는데요. 뭉근하고 느리게 쌓아 올라가는 구름은, 여름의 푸르고 설레는 한편으로는 그 느린 웅장함에 뭉클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코스케를 좋아하는 카호의 마음, 마코토의 성장을 대변해 표현해줍니다. 

 달려간 그 끝에서 치아키를 만나 고백을 받았던 그 장소와 시간에 서있는 마코토와 치아키. 같은 날이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고백이 아닌 긴 시간의 흐름을 둔 이별을 할 때라는 것인데요. 치아키를 화면 밖으로 밀어두고 엉엉 눈물을 흘리는 마코토에게 치아키는 “미래에서 기다릴게”라는 말을 남깁니다. 계속해서 늘어나는 시간 속에서 꺼지지 않는 마음을 표현한 그의 애절한 한 마디는 보는 사람들에게 작은 탄식을 흘리게 합니다. 이어서 마코토는 “달려서 갈게”라는 말로 그를 보내는데요. 앞으로만 가는 시간 속에서 둘은 영원히 만날 수 없겠지만, 시간을 온 힘으로 달려가다 보면 만날 수 있다는 걸, 닿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말입니다. 인연은 붉은 실로 묶여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영화 시작 부분 초가 분이 되고 분이 시간이 되는 그 긴 시간의 끈은 마치 인연의 붉은 끈과 같은데요. 시간을 헤매던 둘이 만남을 확실한 것은 바로 ‘시간’이라는 붉은 실의 아득하지만 연결된 느낌, 사랑이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런 아득한 인연을 겪었던 인물이 또 있습니다. 바로 마지 이모인데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문화재복원사인 그녀는 마코토와 비슷한 일을 겪은 것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조언도 해줍니다. 묘한 평행이론을 이룬 두 사람의 모습에서도 시간이라는 붉은 실로 묶인 삶을 보여줍니다.  

 이후로 마코토는 더 이상 우유부단한 철딱서니가 아닙니다. 타임리프를 온몸으로 뛰며 막연하게 간직하고만 싶었던 청춘의 방향을 찾았습니다. 비밀이긴 하지만 미래에 하고 싶은 일도 정해졌고, 무엇보다 같은 하늘 아래 있는 잊지 못할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해 달려갈 것입니다. 이는 쨍한 여름 하늘과 하늘을 가득 채우며 부풀어 오르는 구름, 마지막으로 어딘가를 향해 힘껏 공을 던지는 그녀의 모습에서 마코토의 미래를 향한  힘찬 도약의 맑은 에너지를 보여주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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