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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Aug 28. 2017

싱글맨

영원으로 닿은 호흡


 16년을 함께한 애인 짐을 사고로 잃은 대학교수 조지. 그의 삶은 티끌하나 없는 완벽한 일상의 표면 밑 수심 깊은 곳으로 가라앉고 있다. 과거의 슬픔에 잠식된 심연 속에서 그는 죽음이란 예견된 미래를 준비한다. 영화 <싱글맨>은 순간을 향한 섬세한 탐미의 시선을 가진 조지의 마지막 하루를 그리며, 그의 심연과 피어오르는 삶의 순간들을 대비시킨다. 섬세한 그를 탐미하듯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의 시선은 배우를 인물로, 인물을 영화로, 영화에서 관객에게로 스미게 한다.      



- 영원으로 닿은 호흡

 조지의 삶은 짐의 사망을 기점으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갑자기 들이닥친 상실이라는 파고를 온몸으로 맞은 그는 결국 헐벗은 채로 무력하게 슬픔 속에 잠겼다. 한 줌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물 아래에서 그는 ‘죽음’으로써 탈출하기를 계획한다. 그렇게 시작된 그가 계획한 마지막 하루는 물속에 잠겼던 그의 목소리, 기억, 감정들을 순간순간 되돌려 놓는다. 

 죽음을 향해 가는 그의 생은 조지의 섬세한 눈을 통해서 ‘순수’를 마주쳤을 때 그것을 면밀하게 읽어낸다. 그 순간들은 숨을 들이 마시듯 색이 번지며 현재를 살아가는 그의 생을 밝힌다. 짐과 함께 했던 과거, 무너진 삶 속에서 유일한 친구로 남은 찰리, 그의 깊은 슬픔을 위로하는 옆집 소녀 그리고 테니스 치는 남자들의 번들거리는 벗은 몸까지. 과거의 사랑부터 현재의 욕정까지 그가 탐미하는 순수의 순간들은 예견된 미래로 향한 그를 현재의 생으로 묶어놓는다. 

 하지만 그 순간들은 인연이 되지 못하고, 그렇게 영원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그를 다시 현재가 없는 과거와 미래로 흩어져버린다. 그는 순수의 순간들을 탐미하는 만큼이나 과거에 젖어있다. 짐과 사랑했던 과거의 순간들은 조지의 ‘현재’에 강렬하게 작용한다. 잊지 못할 그 기억들이 집안 닿는 곳마다 그에게 짐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 그는 사라져버린 찬란한 순간을 쓸쓸히 그리고 천천히 씹어 삼킨다. 그의 과거의 순간들은 짐의 부재로 인해 현재를 침수시키고 미래를 녹슬게 만든다. 

 이런 칠흑 속의 그를 삶으로 꺼낸 사람이 있다. 바로 친구 찰리와 그의 제자 케니이다. 찰리는 조지의 곁에서 늙어가는 일과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삶의 권태를 함께 공유한다. 한 때 연인관계였던 둘은 그 어떤 친구들보다 가깝지만, 그의 짙은 슬픔을 남긴 짐과의 사랑을 이해하는 깊이에서 마찰이 일어난다. 반면, 계획한 삶의 마지막 날 그에게 다가온 케니는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서의 조지를 이해하고 마주치는 시선의 끝, 삶의 고독이라는 내밀한 곳에서 교감한다. 케니와의 대화를 통해서 조지는 모든 것을 가치 있게 만드는 다른 인간과 연결된 순간들을 과거가 아닌 현재, 그가 발 디디고 있는 지금 맞이한다. 케니와 조지 둘이 나체로 밤바다를 헤엄치는 장면은 ‘보이지 않는’ 둘이 말 그대로 헐벗은 상태로 마음과 마음이 순수의 상태로 연결되는 것을 보여준다. 바다를 유일하게 증명하는 달빛이 바다 위를 점점이 비추고 끝없이 반짝이는 바다는 ‘보이지 않는’ 둘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어준다. 젊음을 증명하는 무모함, 그 순수한 욕망이 이끈 곳에서 케니와 조지는 서로 순간이 되고, 인연이 된다. 

 짐이 죽고서 조지의 생의 무덤이 된 조지의 집, 그 곳에 케니가 들어선다. 익사할 것 같은 슬픔의 공간에 케니라는 현재의 순간이 들어서면서 조지는 마침내, 침수된 생의 현장에서 빠져나와 깊게 생의 숨을 들이마신다. 삶에 사람이 들어와 사랑으로 연결되는 그 확실하고 명료한 순간, 조지는 그 날 밤 그의 삶이 그 순간을 기록하며 생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그가 예견했듯이 죽음의 미래는 무분별하지만 공정하게 그를 찾아온다. 그 앞에서 그는 그가 생각했던 완벽하게 아름다운 죽음이 아닌 순간들로 점철된 준비되지 않은 생의 흔적들을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이렇게 짐과 함께했던 과거부터 그가 숨 쉬고 있는 현재까지 그에게 찬란한 순간들을 남겨준 것은, 어쩌면 죽음이 준비한 마지막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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