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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Sep 07. 2017

버거운 삶도 한 줄의 시가 되어

 간병인 일을 하며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 종욱을 키우며 살아가는 미자. 그녀는 하늘거리는 꽃무늬 옷에 화려한 모자까지, 외딴 촌 동네에서는 보기 드문 치장하기를 좋아하는 멋쟁이 할머니다. 다소 엉뚱한 면도, 하늘거리는 치맛자락 같이 섬세한 면도 있는 미자는 동네 문화원에서 ‘시’를 만난다. 

 그 날 이후로 그녀는 일상을 알고 싶어서,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기’ 시작한다. 일상 속에서 아름다움을 캐내기 위해 순수한 눈으로 시를 향해 한 걸음을 뗀 그녀에게 투신자살을 한 종욱과 동갑내기 마을 소녀의 죽음이 ‘현실’로서 아름다움을 찾는 그녀의 일상을 조금씩 침범해온다.      



- 버거운 삶도 한 줄의 시가 되어

 미자는 주위의 일상을 섬세하게 느끼는 인물이다. 여중생의 죽음과 그 상실로 주저앉은 어머니의 참척의 슬픔은 길을 지나는 짧은 순간에도 그녀에게 선명하게 각인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중생의 죽음에 자신의 손자를 비롯한 여섯 명의 소년의 성폭행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미자는 여중생 ‘박희진’의 처참했던 삶과 그녀가 떠난 자리를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럽게 온 감각을 기울여 더듬어 나간다. 

 미자는 “시상은 어떻게 얻어요?” “시상은 어디서 오나요?”라는 질문을 하며 언제나 시상을 갈구한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과정에서 불현 듯 다가온다는 대답들뿐이다. 이렇듯 아름다움을 절실하게 찾는 그녀에게 삶은 소녀 ‘박희진’의 죽음은 삶의 추악한 현실들을 그녀 앞에 가지고 온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 봐도 기쁨이었던 손자는 같은 공간에 있는 것조차 불쾌한 성폭력 가해자가 되어 있었고, 자신은 합의금으로 죽음을 덮으려는 부모들의 모임에 가해자의 보호자라는 명목으로 함께 의견을 도모하고 있었다. 이때 그녀를 둘러싼 남성들은 추악한 현실로 그녀를 오염시키는 동시에, 소녀의 죽음을 온 감각으로 느끼며 공감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묵살한다. 

 또한 치매라는 무거운 진실이 그녀를 덮친다. 피할 수 없는 치매라는 그림자 앞에서 미자는 다시 한 번 무너져 내린다. ‘죽기 전에 한 번’ 이라는 간병하는 불구의 남성의 일방적이며 무례한 욕정에 처참한 마음으로 봉사한 이유는, 그녀가 죽음이라는 그림자에 빠르게 젖어들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순수했던 그녀는 죽음이 흔들어 일으킨 흙탕 속에서 더러워지고 길을 잃는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시’라는 한 줄기 빛은 놓치지 않는다. 그녀는 시를 통해서 현실에서 도피하려 했지만 일련의 사건들을 겪어 나가며, 시는 처절할 정도로 섬세한 공감과 이해를 통해서 현실을 씹어 삼켜 온 몸으로 느껴 한 줄, 한 소절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지막 미자가 죽은 희진의 목소리로 어둡고 깊은 곳에서 부드럽게 소녀의 슬픔을 어루만질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맞닥뜨린 죽음이라는 현실에서부터의 공감과 ‘박희진’의 죽음을 돈으로서 덮으려는 추악한 현실을 온몸으로 맞고 슬퍼하고 아파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더러운 현실의 흙탕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갈구했던 미자는 자신을 매개로 정의롭고 순수한 한 인간으로서 살아나가기 버거운 ‘현실’이라는 이름의 삶을 한 줄의 ‘시’로 정화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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