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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Sep 18. 2017

메멘토

기억과 기록 사이

 영화 <메멘토>는 아내가 성폭행 당하고 살해당했을 때의 충격으로 단기 기억상실에 걸린 레너드를 중심으로 그가 범인을 찾아 복수하는 과정을 돕는 의문의 조력자 테디와 그와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나탈리 사이에서 벌어지는 짧은 사건을 그린다. 영화는 순행과 역행의 사건을 번갈아가며 보여주며 관객들에게 레너드의 기억상실을 체험하게 한다. 그와 동시에 기억과 기록 사이를 헤매는 레너드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 한 끗 차이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든다.      



- 기억과 기록 사이 

 레너드의 새로운 기억은 10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휘발해 버린다. 그런 그가 순간을 축적하는 방식으로 ‘기록’을 선택한다. 몸에 고통과 함께 체화된 그의 기억은 휘발하는 세상을 붙잡기 위한 절실함이 낳은 흩어지는 삶 속의 진보이다. 하지만 기억이 되어버린 기록은 금세 유실되고 변형된다. 영화의 흑백과 컬러, 순행과 역행의 축적에 익숙해질 무렵 영화에 대한 우리의 기억도 만들어진다. 파편적인 사건들을 엮어가면서 우리는 레너드와 함께 끊임없이 과거와 현재를 믿음이라는 잣대로 저울질한다. 

 그는 계속해서 기억을 유실하고 변형하지만 그 중에서도 변하지 않는 믿음이 존재한다. 그가 반복하는 표면상의 믿음은 아내를 죽인 범인에게 복수를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복수가 서슬 퍼런 웃음만 남기고 사라져 버린 후, 그는 살인의 굴레 속을 살아간다. 

 레너드는 그 심연 속에서 살인의 감정을 긴 시간동안 축적한다. 축적된 살인의 회한은 그가 자신의 과오를 감추기 위해 쌓아올린 ‘새미 젠킨스’라는 견고한 기억, 그리고 그것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탈출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이 조건반사 신호는 그를 ‘자신의 기억을 믿지 말라’라는 믿음을 남기며, 그 결과 그는 그가 외면했던 자신의 과거로 인해 뒤틀려버린 현재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게 ‘기록’이라는 방법으로 이끈다. 

 이렇듯 레너드의 기억과 기록 사이에는 그가 마주 봐야 했던 왜곡된 믿음이 있다. 그는 ‘새미 젠킨스’로 외면하려고 했던 아내의 죽음에 대한 진실, 그리고 그 진실이 자신을 살인의 굴레에 가둔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자신의 내부에서 쌓아올린 이 견고한 믿음은 외부의 지속적인 자극으로 깨어져 나간다. 자신의 기억에 갇힌 그가 분노로 점철된 삶을 온 몸으로 부딪혀 나가며 느린 속도로 만들어 낸 신념은 끝내 줄탁동시의 순간을 만들어 낸다. 

 레너드의 유실되고 변형된 그리고 그것에 대한 강력한 개인적 믿음으로 탄생한 기억은 단기 기억 상실이라는 극적인 상황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기억’의 보편적 속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 현재의 삶에서 레너드가 감지했던 것처럼 ‘굴레를 탈출하라’라는 조건반사 신호를 감지했을 때 그 신호를 믿을지, 그리고 온몸으로 과거의 나를 거부해야하는 과정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마주할 신념이 준비되어 있을지는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나는 나를 마주볼 수 있는가. 영화가 헤매던 기억과 기록 사이에는 내가 믿어오던 것들에 대한 무거운 질문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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