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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Sep 24. 2017

레이디 맥베스

그녀, 욕망에 응답하다.

 꽃다운 나이 열일곱. 캐서린은 늙은 지주에게 팔렸다. 그의 아들의 아내라는 ‘자산’의 일부로 종속되었다. 지주와 그의 아들은 캐서린을 꺾어왔다고 생각해 유리병 속에 가두어 놓는다. 그렇게 캐서린은 지주의 집에서 전시품처럼 위치한다. 머리칼을 당겨 묶고, 코르셋을 조여 입은 그녀는 오후 볕에 쏟아지는 ‘졸음’이라는 가장 근본적인 욕망마저도 누릴 수 없다. 남편과의 잠자리는 더 처참하다. 남편은 벽에 붙어 선 그녀의 뒷모습만을 철저히 시각으로만 일방적으로 취한다. 

  그렇게 ‘그’들은 그녀를 금기 속에 가두어 놓지만 캐서린은 뿌리를 가지고 삶의 욕망을 품은 ‘생화’였다. 지주와 아들이 집을 비운 바로 그 날. 캐서린은 땅에 첫 발을 디디며 그녀가 품었던 욕망에 차례로 응답하며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간다.      



- 그녀, 욕망에 응답하다. 

 지주와 아들이 자리를 비운 바로 그날. 캐서린은 선악과를 따먹듯 붉은 열매를 따먹는다. 머리칼을 풀고 집 밖으로 나간 캐서린은 그녀의 첫 번째 욕망인 ‘자유’를 가슴 깊숙이 들이마신다. 이후로 그녀는 하나씩 자신의 욕망에 응답한다. 

 오후의 낮잠에서 시작된 욕망은 빠르게 ‘권력’에 닿는다. 하녀 안나를 범하려는 남자 하인들을 발견하고 말 한마디로 그들을 모두 벽에 돌아 세웠을 때, 그녀는 지주의 권력의 일부를 맛본다. 그와 동시에 권력에 저항한 세바스찬에게 강하게 끌린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육체와 사랑을 욕망하고 성취하며, 그 위에 군림한다. 

 캐서린은 지주의 자산, 그 권력의 땅에 뿌리를 뻗어 단단하게 그녀의 욕망을 그러쥔다. 늙은 지주와 지주의 아들이 차례로 집으로 돌아와 그녀의 그간 행실에 대해서 문책하고 다시 금기의 감옥에 가둘 때, 캐서린은 너무나 명료하게 욕망을 가로막는 그들을 제거해 나간다. 이 과정을 목격한 안나, 세바스찬은 살인 현장을 목도한 일로 인해 너무나 인간적인 범주 안에서 불안과 혼란을 겪는다. 반면 캐서린은 순수하게 욕망만을 추구하며 죄책감과 내적 혼란은 빠르게 흘려보낸다. 그렇게 그녀는 견고하게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독립된 자신의 성을 쌓아 올린다. 

 캐서린을 유일하게 흔들어 놓은 욕망은 ‘생명’을 향한 욕망이다. 그녀가 품고 지켜야 할 생명과 빼앗아야 할 어린 생명 사이에서 그녀는 미세하게 갈등한다. 하지만 어린 생명을 빼앗지 못한다면 자신이 품은 생명, 그것이 증명해주는 세바스찬과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분투했던 모든 것이 사라짐을 직감한 순간 그녀는 다시금 욕망에 초점을 맞춰 깔끔하게 일을 처리한다. 

 하나하나 성취했던 욕망이 절정에 다다른 순간,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세바스찬의 한 마디로 그녀의 성은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그 지점에서 캐서린은 단칼에 사랑을 잘라낸다. 그렇게 모든 구속을 잘라낸 그녀는 저택에 홀로 남게 된다. 함께 식사할 사람이 없다면 고양이라도 앉혀놓고 식사를 했던 캐서린. 매번 욕망 앞에서 명료한 자세를 취했던 그녀도 한 번의 외로움 앞에서는 무력했다. 텅 빈 집에 홀로 남은 그녀의 무표정하고 공허한 응시는 모든 욕망을 지나 ‘권력’이라는 단일하고 끝없는 욕망까지 온전히 성취한 사람의 회한과 고독이 담겨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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