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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Oct 02. 2017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

구심점을 잃고 나서야 찬란하게 빛나는 청춘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수업이 끝난 금요일 오후, 한 고등학교 교정에 ‘키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둔다는 소식이 퍼지며 교내는 술렁이기 시작한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인기인이었던 그의 부재는 그를 구심점으로 돌아가고 있던 ‘우정’이란 이름의 관계들을 조금씩 조금씩 흔들리게 만든다. 한편, 키리시마와는 가장 먼, 아웃사이더들의 동아리 ‘영화부’가 자신들만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학교 곳곳을 움직이면서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는 중심을 잃은 청춘들의 찬란한 방황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 구심점을 잃고 나서야 찬란하게 빛나는 청춘

 키리시마는 배구부를 그만두고서 학교에도 나오지 않는다. 그 소식을 전달받지 못한 그의 여자친구 리사는 그녀에게 키리시마의 소식을 묻는 친구들 앞에서 한 마디도 제대로 된 답변을 해줄 수 없어 답답하고 초조하다. 그렇게 그녀는 일방적으로 키리시마와의 관계에 대한 종언을 다른 사람들의 입으로 전달받는다. 매일 같이 계속되는 키리시마에 행적에 대한 질문과 루머들 사이에서 리사의 마음은 점점 메말라 간다. 

그런 그녀를 옆에서 보살피는 3명의 친구가 있다. 사나, 카스미, 미카. 이들 넷은 키리시마의 부재에 대해 각기 다른 국면을 맞이하면서 과시적이었던 그들의 관계를 확인한다. 사나는 리사 옆에서 최선을 다해 그녀를 보좌한다. 교내 1인자 아래의 2인자로 키리시마 다음으로 잘 생기고 유명한 히로키를 남자친구로 둔 그녀는 우정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에 솔직하지만 그만큼 맹목적이고 종속적이다. 

 반면, 미카는 키리시마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분투하는 배구부의 후스케를 ‘부족한 키리시마의 대체물’로 대하는 주변 친구들을 보며 그들과 쌓은 우정을 재고한다. 그녀가 후스케에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에는, 미카가 죽은 그녀의 언니를 대신하기 위해서 표면 아래에서 분투하고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미카와 사나 사이의 카스미는 우정이라는 표면적인 관계를 직시하고 관조하는 인물이다. 적어도 그녀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비밀 연애를 하고 주변 인물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는’ 그녀는 친구들의 ‘속을 알 수 없다’고 피곤한 듯 이야기 하지만, 항상 키리시마와 그의 주변 인물들의 소식 곁에 조용히 위치하며 ‘우정’이라는 관계를 민감하게 재고 있다. 

 키리시마가 사라진 후, 히로키를 중심으로 한 남자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방과후에 농구를 한다. 배구부인 키리시마를 기다리기 위해 시작했던 농구는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키리시마가 나오지 않은 지 며칠이 지나자 그들은 농구를 시작했던 이유에 대해 떠올린다. 정작 농구를 좋아하는 친구는 한 명 뿐이었던 것을 알게 된 그들은 키리시마가 아닌, 우정이라는 관계가 만든 관성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질문을 어렴풋하게 가지게 된다. 

히로키는 그 질문에 누구보다 깊게 고민 중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야구부를 그만둔 히로키는 야구부를 그만 두었음에도 여전히 무거운 야구 가방을 매고 다닌다. 그의 야구에 대한 미련을 알았을까. 고3 야구부 선배는 계속해서 그에게 야구부 소식을 전한다. 하지만 히로키는 어쩐지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만 감지할 뿐, 키리시마가 없는 학교에서 그가 만든 관성 속에서 살아간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아야가 있다. 기악부인 그녀는 히로키를 짝사랑하며 먼발치에서 그에게 색소폰 소리를 빌려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평소처럼 옥상에서 농구하고 있는 히로키를 보며 연습을 하고 있던 그녀에게 불쑥 영화부의 마에다가 그녀의 일상으로 들어온다. 

 교내에서 아웃사이더로 분류된 영화부는 지금 영화부 역사상 가장 큰 반향을 꿈꾼다. 항상 선생님이 써주었던 시나리오로 작업을 해왔던 그들은 마에다의 ‘좀비’ 시나리오에 맞춰 자신들의 영화를 선생님 눈을 피해 물밑에서 열심히 작업 중이다. 그런 그들이 촬영을 하는 곳마다 우연히 아야와 겹치게 된다. 영화를 찍어야 하는 마에다와 짝사랑하는 그를 바라볼 수 있는 바로 그 자리를 지키고 싶은 아야는 처음부터 완강하게 대립한다. 하지만 마에다가 카즈미의 호의를 오해해 품었던 사랑의 감정이 그녀의 비밀연애를 목격한 후 처참하게 무너지면서, 마에다는 아야의 절실한 마음을 읽어낸다. 

 영화는 이렇게 키리시마를 둘러싼 표면적인 우정이 갈라지는 과정을 각 인물들의 다양한 시점으로 그려내는 동시에, 아웃사이더인 마에다와 영화부의 촬영이라는 접점으로 엮어낸다. 점진적으로 퍼져나가는 우정의 허울을 벗어가는 성장통은 마에다가 찍는 시나리오인 학교를 둘러싼 좀비 바이러스와도 묘하게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자신의 아픈 짝사랑을 한 곡, 한 숨의 소리로 풀어가는 아야와 기악부의 음악을 배경으로 아이들은 학교 옥상에서 목격되었다던 키리시마를 만나기 위해 달린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키리시마가 아닌 영화를 찍고 있던 마에다와 영화부를 만나게 되고, 그 둘 사이에서 한 차례 소동이 일어난다. 

 감정은 날카로웠지만, 다소 싱겁게 소동이 끝난 후 히로키는 마에다에게 말을 건넨다. 미래에 대해서.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지 그리고 성공한 영화감독으로의 삶을 꿈꾸는지에 대해 마에다의 카메라에 눈을 대고 묻는다. 그의 질문에 대해 마에다는 영화감독이 되는 일은 무리라며 단정 짓는다. 단호한 그의 태도에 히로키는 되묻는다. 그렇다면 ‘굳이’, 그리고 ‘왜’ 영화를 찍는 것이냐고. 마에다는 대답한다. 우리들이 좋아하는 영화와 지금 우리가 찍고 있는 영화가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것이 좋다고. 

 ‘장래’라는 껍데기를 벗은 순수한 그의 꿈에 대한 자세 앞에서 히로키는 눈물을 보이며 무너져 내린다. 고등학교 2학년, 장래희망 조사서를 받은 그들이 가장 듣고 싶고, 하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만들어온 자신들의 생태계 속에서 살아온 학생들은 ‘장래’ 앞에서 모든 관성을 멈추고 자신과 미래에 대한 답을 요구받는다. 아이들은 우정이라는 관계가 1년 안으로 격변을 맞이할 운명 앞에서 우정에 헌신하거나 그저 몸을 맞기며 그 답을 보류한다. 어쩌면 그들에게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은 ‘키리시마’는 그들의 ‘학창시절’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의 부재는 ‘우정’으로 대신했던 자신들의 정체성에서 진짜 자신의 목소리를 찾는 과정으로 이끈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의 관성을 벗어내고 다른 삶으로 이행하는 과정은 단연 인생의 한 시점만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삶 어느 순간에나 마주할 수 있는 순수한 자신의 목소리에 반응하는 순간은 언제나 찬란하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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