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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Oct 25. 2017

유리정원

딱딱한 표피 속을 흐르는 순수와 광기라는 연약한 감정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숲 속에서 태어났다. 나무를 베어난 자리에서 그녀는 첫 울음을 터뜨렸다. 벌목꾼인 그녀의 아버지는 딸을 낳으며 목숨을 잃은 아내, 그리고 12살 이후로 성장을 멈춘 딸의 한쪽 다리를 보며 나무가 내린 벌이라고 생각해 벌목 일을 접었지만, 딸은 언제나 나무 곁에 있었다. 재연은 지금까지도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 혈액을 연구하며 나무의 푸른 그늘 안에 있다. 

 그런 그녀의 곁에는 정 교수가 있다. 그는 유일하게 그녀와 걸음을 맞춰준 사람이다. 둘은 나무 등걸에 몸을 기댄 것처럼 정적인 모습으로 마음을 나누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언제나 더디게 걷는 재연을 두고 달아나 버린다. 재연은 그녀의 후배 수희에게 연구 아이템을 도둑맞는 동시에 사랑하는 정 교수마저 빼앗겨버린다. 그렇게 그녀는 상처만을 등에 지고 도시에서유리 정원이 있는 숲으로 들어간다. 

 그녀가 떠나버린 단칸방, 그 곳에 무명작가 지훈이 들어온다. 평소에 무심히 눈에 걸리던 그녀를 보곤 했던 그는, 그녀의 방에 남은 ‘나무에서 태어난 아이’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지훈은 재연을 찾아가 숲 속에 숨어 그녀를 훔쳐보며 소설 <유리정원>을 적어나간다. 

 그녀를 지켜보던 지훈은 그녀가 숨기고 있는 비밀을 알게 되고, 재연 또한 지훈이 자신을 소재로 글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며 소설과 현실을 잇는 둘의 이야기는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 <유리정원>은 나무가 굳은 표피에 연약하고 순수한 생명의 맥박을 감추고 있듯이, 무던히 어쩌면 그보다 더 미약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던 재연을 통해 광기로 오염되어가는 순수함에 대해 이야기 한다.      



- 딱딱한 표피 속을 흐르는 순수와 광기라는 연약한 감정     

 “순수한 건 오염되기 쉽죠.” 영화 포스터에도 적힌 이 대사는 영화 전체를 가로지른다. 재연의 한 쪽 다리는 12살 이후로 자라지 않았다. 바쁘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걸음이 더딘 그녀는 눈에 보이지 않게 해를 향해 천천히 가지를 뻗어나가는 나무의 속도를 살고 있다. 그녀는 죽은 생명을 녹혈구로 살려내는 일을 하고 싶다. 그녀가 살아가는 나무의 시간, 그 생명력의 힘을 믿고 있다. 부러진 나무라도 언제나 빛을 찾아 틈바구니로 고개를 내밀지 않는가. 그렇게 빛을 따라 한 뼘씩 허공을 더듬으며 느리게 나아가는 재연의 여린 가지를 세상은 무참히 꺾어 밟는다. 

 후배 수희에가 아이템을 빼앗긴 후 찾아간 정 교수의 집에서 재연은 문 밖으로 넘어오는 격정적인 사랑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그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발에 맞지 않는 후배의 구두를 신고서 딸깍 딸깍 마당을 걷는다. 정 교수에게 받아왔던 사랑이 ‘연민’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곤 순수의 영역인 유리정원이 있는 숲으로 떠나간다. 하지만 도시에서 입은 순수의 균열은 그녀를 점차 광기로 물들인다. 

 지훈은 어느 순간부터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얼굴과 몸 한 쪽이 굳어가기 시작한다. 몸이 나무처럼 굳어가는 그는 어쩌면 나무를 이용해 생명을 살려내는 재연이 유난히 더 매력적인 대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도 상처받은 채 굳어가고 있는 도시 속 나무 한 그루 같은 사람이었으니. 지훈은 재연의 삶을 도둑질해 소설을 쓴다. 유리정원 밖에서 그리고 일기장을 통해서 그녀를 관찰해나가는 그의 글에는 자신의 상처를 안고 사는 재연의 무던한 삶과는 다른 환상이 있다. 심적, 물리적 거리가 멀수록 혹은 벽이 많을수록 눈앞에 보이는 것에는 많은 상상의 자리가 생긴다. 

 재연은 지훈이 만들어 낸 상상의 자리에 무섭게 빨려든다. 오염된 순수함은 자신의 연구에 대한 중독을 낳았다. 나무 곁에서 더할 것 없이 맑은 영혼의 그녀지만, 상처 난 곳엔 옹이가 지고, 틀어져 버린 가지는 엉뚱한 곳으로 계속해서 뒤틀리며 나아간다. 영화 후반, 지훈의 눈과 재연의 입을 통해서 우리는 재연이 진행해온 섬뜩한 유리정원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온전한 광기에는 순수함이 서려있다. 쉬이 흔들리지 않는 순수한 신념, 그것이 잘못된 과녁을 향해 날아갔을 때, 우리는 그 광기를 붙잡을 수 없다. 유리정원의 진실의 끝에는 어떻게 오염된 순수함이 자멸하는지를 보여준다. 

 나무들은 서로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서로를 피해서 가지를 뻗지만 사람은 서로를 죽이려고 한다. 사람의 숲에서 나무의 삶을 살아온 재연의 말이다. 사람에게 찢기고 밟힌 그녀는 나무가 됨으로써 벌목꾼만 있는 인간의 삶에서 도망쳐 딱딱한 껍질로 그녀의 순수를 감싼다. 그녀는 그렇게 느리고 긴 순수의 시간으로 잠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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