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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Nov 22. 2017

빛나는

그곳에, 빛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 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앞을 볼 수 없는 이들을 위해 영화 음성 해설을 만드는 일을 하는 미사코. 이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그녀에게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상상의 세계 속에 그려나가는 일’은 가까운 듯 멀게만 느껴진다. 

 함께 영화 음성 해설을 만드는 시각 장애인 패널 중에는 점점 시각을 잃어가는 나카모리가 있다. 전직 사진작가였던 그는 흐려져 가는 시야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가느다란 빛 한 줄기를 볼 수 있다. 그런 그는 보이는 것을 보이지 않는 세계로 옮기는 미사코에게 짧지만 날카로운 지적들을 던진다. 미사코는 나카모리의 지적이 불편하면서도 패널과의 만남이 끝나면 그가 남긴 묵직한 질문들이 마음에서 쉽게 가시지 않는다. 

 영화 <빛나는>은 빛의 세계를 감정의 터럭까지 놓치지 않고 상상 속의 세계로 옮기는 섬세한 작업을 그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빛으로 나뉜 같지만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미사코와 나카모리의 교감을 빛과 소리의 영상시 속에 담아낸다.     



 


- 그곳에, 빛

 미사코와 나카모리 두 사람은 모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미사코가 영화를 해설하는 일은 그 자체로 빛을 어둠 속에 이식하려는 것과 같다. “영화에 희망이 있었으면 해요.” 그녀는 영화를 통해 ‘희망’이라는 색깔을 전해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색’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그들에게 희망은 색깔이 아닌 세계 그 자체로 느껴지는 것이다. 눈을 감고 길을 걸어보아도 시각 장애인들이 살고 있는 광대한 상상의 세계는 쉽게 닿지 않는다. 

 나카모리는 육체적으로 시각을 잃어가는 과정을 통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있다. 아날로그 카메라로 작업을 하는 사진작가였던 나카모리에게 시각이란 심장과도 다름이 없었다. 눈이 곧 작품이 되고 영혼의 대변이 되는 삶 속에 살았던 그는 눈이 멀어가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다. 빛과 어둠 사이에서 길을 잃은 둘은 황혼의 시간을 찾아가며 서로를 그리고 그들이 선 경계의 불분명함을 이해해 나간다. 

 영화는 쉽게 빛의 풍경을 보여주지 않는다. 빛이 스민 사물, 빛이 스민 얼굴이 그 풍경을 대신한다. 절제된 빛의 세계를 마주했을 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제한된 시야를 간접 경험한다. 그리고 그 사이로 들어오는 밀도 있는 대사와 소리, 감정의 세계로 들어간다. 한 편의 영상시와 같은 장면들 속에서 미사코와 나카모리는 느리지만 정확한 방향으로 황혼을 향해 걷는다. 그리고 둘은 져가는 태양 아래서 모든 빛이 경계를 잃는 순간. 그 붉은 그림자에 묻힌 시간을 공유한다. 

 이 황혼의 시간은 그들이 함께 그리려고 했던 라스트 씬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간적인, 시각적인 포인트이다. 그들이 해설하고 있는 영화 속 늙은 주인공 주조 또한, 잃어가는 것에 깊은 비애와 무상함을 간직한 캐릭터이다. 살고 싶어도 죽을 수도 있고, 죽고 싶어도 살 수 있는 ‘인간’이기에 가지는 불분명함이 황혼의 시간을 만나 완성되는 라스트 씬은 미사코와 나카모리의 불온함과도 맞닿아있다. 잃어가는 과정인 삶의 여정 속에서 나카모리와 미사코는 끝내 쥐고 있던 것을 놓아버림으로써 불온함을 이해한다. 그들은 황혼 속에서 어둠과 빛이 모든 것을 붉은 그림자로 물들이듯, 둘은 불분명해진 경계 속에서 하나가 된다. 그리고 이들이 공유한 하나의 풍경은 끝맺지 않았지만 가장 완벽한 문장으로 라스트 씬을 매듭짓는다. 

 “그곳에, 빛” 이 끝없는 말은 보는 이에게 그리고 듣는 이들에게 깊은 파장을 일으킨다. 그리고 파장이 지나간 자리에는 잃어가는 삶을 살고 있는 모두를 향한 따뜻한 위로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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