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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an 28. 2018

고스트 스토리

머무른 자리

 C(케이시 에플렉)과 M(루니 마라)는 교외의 작고 낡은 집에서 산다. 둘 외에 누군가 있는 것 같은 스산한 느낌이 종종 들곤 하지만, 그들은 조용하고 단란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앞에서 벌어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인해 C가 세상을 떠난다. 그를 잃은 충격에 말없이 영안실의 C를 한참 바라보다 자리를 뜨는 M. 시간이 멈춘 듯한 차가운 영안실, 하얀 천으로 덮여있던 C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영화 <고스트 스토리>는 천에 구멍을 뚫은 고스트의 단순하지만 기묘한 모습인 ‘고스트’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홀로 남은 M이 있는 집으로 향하는 ‘고스트’. 그는 그곳에서 시간을 견뎌내며 자신이 머물렀던 자리를 바라본다.      



- 삶이 머무른 자리 

 죽은 자는 말이 없다. C가 고스트가 되고 나서부터 영화도 급격히 말을 잃는다. 고스트는 M을 찾아가 그저 홀로 남은 그녀를 바라볼 뿐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고스트와 함께 삶이 머물렀던 자리를 본다. C가 없는 M의 삶은 슬픔과 공허로 가득 차있다. 고스트가 처음 마주하는 M의 모습은 오랫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그녀가 처음으로 파이를 먹는 모습이다. 영화는 5분가량 되는 긴 시간을 그녀가 눈물을 흘리며 허겁지겁 속을 채우는 모습을 담는다. 그리고 멀리서 M을 미동 없이 바라보는 고스트. 이 둘의 모습은 식(食)과 사(死)의 대립이자 이는 곧 생과 사에 대한 자각이다. 

 5분의 짧은 시간에도 M은 무거운 슬픔과 눈치 없고 지독한 배고픔 사이에서 괴로워한다. 이끌리듯 음식을 입에 넣다가도, 눈물이 흐르고 끝내 그 음식을 담지 못하고 게워낸다. 시시각각 그녀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고 행동한다. 살아 있기에 죽을 것 같은 슬픔과 살아가려는 육체와 사투할 수 있다. 하지만 고스트는 그저 시간 안에 존재할 뿐이다. 영화는 계속해서 삶이 머물렀던 자리가 시간에 따라 아물어가고 흘러가는 모습을 담아낸다. 

 결국 M은 C와 함께 했던 집을 떠난다. 삶은 그렇게 고스트의 곁에서 흘러가버린다. 그렇지만 고스트는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단 하나의 사실 그 변하지 않는 기억 때문에. 



 

- 기억이 머무는 자리 

 영화 초반 M은 C에게 말한다. “떠나는 곳에 쪽지를 남겨두지만,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다.”고. 그리고 M이 떠나는 날, M은 벽 속에 쪽지를 넣어둔다. 고스트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쪽지를 열어보기 위한 고스트의 긴 기다림이 시작된다. M이 떠날 무렵부터 고스트의 시간은 빠르게 편집되듯 흐른다. 영원을 사는 존재들의 시간을 대변하듯 영화는 오직 변하지 않는 그를 중심으로 빠르게 흘러간다. 

 영화 중반 고스트는 다른 집에 머물러있는 고스트를 창을 통해 만나게 된다. 오랜만에 대사를 만나는 순간이다. 옆집의 고스트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기억이 나질 않네요.” 라고 말한다. 죽음의 상태로 시간을 버티고 선 그들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의 명제이다. “누군가를 기다림” 혹은 “쪽지를 열어볼 것.” 영원의 시간 속에서 모든 기억이 흩어진 그들은 삶에서 남은 단 하나의 강렬한 기억만으로 버티고 서 있다. 고스트에게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흔적이었을 것이다. 



- 인연이 머무른 자리

 고스트는 M이 남긴 쪽지를 열어보기 위해 집에 사는 사람이 바뀌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그 자리를 지킨다. 이제 고스트를 이끄는 기억은 점점 더 무형의 것으로 바뀌어져 간다. 그가 M에게 들려줬던 음악과 같이. 

두 번째로 집이 바뀌었던 때, 그곳에서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 예언자는 그곳에서 세상은 긴 순환을 반복하고 있으며, 세상이 무너지고 재건의 고통 속에서도 그들이 희망을 꿈꿀 수 있었던 것은 어느 누군가 기억하고 있을 베토벤의 교향곡 때문이라고 말한다. 고스트와 C도 음악으로 서로에게 팔을 뻗는다 하지만, 이생에서는 둘은 결코 닿을 수가 없다. 

 집이 헐리고 빌딩이 들어선 근 미래. 고스트는 옥상에서 몸을 던진다. 화면은 서부 개척시대로 넘어간다. 그가 과거로 간 것인지, 어쩌면 예언자가 말한 반복되는 미래로 이어진 긴 순환의 고리에 몸을 던진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고스트는 그곳에서 떠날 자리에 쪽지를 숨겨놓는 한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긴 기다림. 그 끝에 C와 M이 처음 집을 방문하던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집을 떠나려는 M과 집에 머무르려는 C의 이야기가 있다. 

 영화 내내 생의 영역에 서 있는 M은 그녀가 먼 과거에서부터 해왔던 것처럼 고였던 곳에서 흘러 나가려고 한다. 반면 C는 고인 곳에 자신들의 틀을 만들어 정착하려 한다. 계속해서 움직여야 하는 M과 머무르고 싶어 하는 C는 서로 엇갈린다. 끝내 C가 M의 말을 듣는 순간 고스트는 낙담한다. 그것이 자신의 생전에 했던 마지막 말이었기 때문이다.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씨앗으로 피어난 이야기는 고스트가 자신의 그림자를 보는 순간까지 이어진다. 긴 윤회의 끝에서 고스트는 끝내 M이 숨겨놓은 메모를 확인한 후 사라져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죽음과 그것보다 공허한 거대한 시간을 한 곳에 서서 기다린 고스트의 이야기는 한 순간의 소멸로 허무하게 끝을 맺는다. 하지만 그가 시간과 공간을 지탱하면서 기다려온 일은 C와 M 이라는 두 세계가 흘러 닿아 잠시 만났던 그 찰나를 거대한 시간을 이겨낸 인연으로 완성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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