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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Feb 27. 2018

리틀 포레스트

겨울, 다시 겨울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 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서울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혜원(김태리)이 다시 돌아왔다. 하얗게 눈이 덮인 시골의 작은 집. 그녀가 자라고 떠나왔던 그 자리로. 시험에서 떨어지고, 연애는 틀어지고, 미래는 보이지 않는 혜원이 마주한 현실에, 도시라는 풍경은 그녀에게 창백한 형광등 빛 한 줌,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람의 손을 타지 못한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 하나로 공허를 견디라고 등을 떠밀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곳을 떠나왔다. 상처를 가득 안은 채로.  



    


- 겨울, 다시 겨울.

 혜원은 오랫동안 사람이 들지 않아 차갑게 가라앉아 있는 집에 불을 떼며 온기를 불어 넣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식(食)’의 현장. 도시의 소음을 뒤로 한 채 집으로 돌아온 그녀의 몸을 풀어준 것은 자연이 남겨놓은 눈 밑의 보석 같은 겨울 식재료와 뜨끈한 국물요리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는 ‘식(食)’과 ‘노동’이 반복되는 정직하고 간단한 농촌의 진리 속으로 몸을 담근다. 그리고 그 안에서 몸을 풀며 ‘되돌아옴’의 가치를 깨달아간다. 

 돌아온 고향에서 봄, 여름, 가을을 보내는 동안 혜원은 시간이 지나는 들녘과 함께 자라난다. “나도 작물이다.” 라는 말과 함께 손에 잡히지 않았던 시간들을 인식하고 가꾸어나가며 도시에서 잃었던 자신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곁에는 엄마의 ‘맛’이 있다. 매 끼니마다 피할 수 없는 엄마의 기억이 돌아온 그녀의 성장을 이끈다. 

 혜원에게 엄마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었지만, 한 편으로는 서로의 자존심으로 인해 메워지지 않는 틈이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엄마의 레시피로 요리를 하며 계절을 보내면서 혜원은 엄마의 수수께끼 같았던 말과 행동들의 의미를 알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레시피를 만들어 가면서 그녀의 삶에도 숲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해 나간다. 

 다시 돌아 온 겨울, 혜원은 엄마의 말을 떠올린다. 곶감은 가을에 익어갈 무렵부터 꼭꼭 주물러줘야 겨울이 깊었을 때 달콤한 곶감을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혜원은 그 때 그녀가 그저 피하기만 했었던 문제를 마주 하기 위해 다시 도시로 떠난다. 오랜 시간동안 주무름을 견딘 곶감이 달콤했던 것처럼 그녀도 자신의 문제들을 주물러가면서 달콤한 겨울을 준비하고 다시 올 봄을 맞이하기 위해서.

 흔히 더위는 피하는 것이라 말하고 추위는 견디는 것이라 말한다. 혜원이 돌아온 겨울은 도시에서의 ‘견딤’의 연장이었을 것이다. 그저 언제 올지 모르는 봄을 바라보며 참아내야 하는 것. 그것이 혜원이 도시의 삶에서 마주한 겨울이었다. 하지만 봄은 끝내 오지 않았고, 그녀는 도시를 ‘떠나왔다’. 계절을 보내며 그 말이 ‘돌아왔다’로 바뀔 때쯤 그녀는 자라날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혜원이 다시 맞은 겨울은 자연과 그 곳에 기대 사는 인간 모두가 축제 같은 가을로부터 시작되는 긴 ‘기다림’의 시간이었다. 그 기다림 속에는 그 동안 상처 입은 자리에 살을 채워 넣고 땅 위로 솟을 준비를 하는 고요한 성장의 순간이 있다. 시간을 돌아 다시 찾아온 겨울에 혜원은 다시 돌아와 뿌리를 내릴 준비를 하기 위해 도시로 떠난다. 그녀의 걸음은 처음 돌아왔을 때처럼 허망하지 않다. 자신이 뿌리 내릴 작은 숲이 어디 있는지 알기에, 돌아올 곳이 정해져 있는 사람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단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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