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즈옹 Mar 26. 2017

신데렐라

원작을 섬세하게 채워넣은 리메이크

 2015년 개봉 당시 겨울왕국 단편 프로즌 피버에 홀려서 봤던 영화였다. 당시에 끼워 팔기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 말쑥하고 세련된 리메이크라는 점에서 만족했던 영화였다. 이번에 미녀와 야수와 함께 묶어서 팟캐스트를 준비하면서 원작과 함께 보았는데, 리메이크작 중에서 굉장히 준수하게 잘빠진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즈니의 리메이크 작업은 추억을 복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들이 옛 작업들이 가지는 구시대적인 부분들, 그리고 동화였기에 러프했던 플롯과 캐릭터들을 현 세대에 맞게 고쳐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신데렐라는 오랜 세월동안 박복한 삶에도 착한 마음을 잃지 않는 아름다운 여주인공이 부유한, 혹은 신분이 높은 남자주인공과의 사랑에 빠짐으로서 신분이 상승한다는 컨셉으로 활용되어왔다. 영화는 이렇게 고착화 되다 못해 딱지가 않은 이야기를 닦아서 분명 아는 이야기, 아는 캐릭터이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을 보여준다. 이런 표현을 사용한 것은 추가된 설정과 플롯이 원작의 범위 안에서 크게 튀지 않고 잘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 섬세하게 채워 넣은 원작

 이미 유명한 원작을 다루는 데 있어서, 영화는 원작이 다루지 않았던 캐릭터들의 빈 부분을 채워 넣는다. 먼저, 주인공 신데렐라의 일관된 선함에 대해서 돌아가신 친모와의 추억, 그리고 어머니의 유언이라는 점에서 그녀가 용기와 착한 마음을 힘든 순간마다 되뇌일 수 있는 역사를 쌓아두었다. 지금의 캐릭터를 있게 한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신데렐라뿐만 아니라 새엄마에게서도 등장하며 새엄마의 이야기가 더 빛을 발했던 것 같다. 그녀가 신데렐라를 시기하는 이유가 언니들과는 다른 아름다운 외모만이 아니라 그녀와 아버지가 추억하는 친모에 대한 질투, 그녀가 공감할 수 없는 둘 사이의 벽 때문이었다는 점도 장면을 통해서 보여준다. 또한 마지막에는 그녀의 입으로 그녀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굴곡진 삶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과거부터 차곡차곡 쌓은 신데렐라와 새 가족들의 이야기는 신데렐라라는 이름의 뜻이 탄생한 사건을 통해서 매듭지어지고, 뒤로는 원작을 따르면서도 구성과 설정이 추가된 스토리들이 펼쳐진다.

 왕자와 신데렐라의 만남 또한, 애니메이션에서 무도회에서의 첫 만남이 아닌, 말 달리는 소녀와 견습생 키트의 만남을 추가해, 둘의 사랑의 근거가 되는 사건을 한번 더 만들었다. 첫 만남부터 사랑에 빠졌다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왕자는 왕자라는 직위가 없을 때, 엘라는 변신 후의 화려한 모습이 없을 때 만났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고, 영화 후반의 메시지와 동일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아버지인 왕이 일방적으로 ‘손자가 보고 싶다’는 이유로 왕자가 없을 때 무도회를 일정을 잡는다. 하지만 실사 영화에서 왕과 왕자는 보다 더 긴밀한 관계이다. 왕국 또한 평화롭지만 약소한 국가라는 설정을 통해서 혼처를 찾는 무도회라는 전통이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설정을 넣었다. 무도회의 명목을 정치적 도구와 전통이라고 잡으니 해피엔딩으로 향해가는 이야기의 길의 풍경이 보다 다채로워졌다. 왕은 왕자를 위한 선택을 하고 싶지만, 병색이 짙어 곧 죽을 자신의 자리에 앉을 왕자가 다스릴 왕국의 미래를 위한 선택(강대국 공주와의 정략결혼)과의 고민을 한다. 왕의 캐릭터가 보다 더 현실적이며 자애로운 부성으로 바뀌었다. 그렇기에 왕이 왕자에게 한 켠 자리를 내어준 것이 ‘왕국의 모든 처녀들을 초대하는 것’이었다. 이는 전의 무도회와는 다르게 왕자가 ‘엘라’를 만나고 싶어 하는 목적이 드러난 설정이다. 엘라 또한 키트에 대한 언급을 가족들 앞에서 하는 등 원작의 큰 흐름에서 벗어나진 않지만, 갑자기 빠진 사랑에 대한 근거를 행동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기간은 짧지만 서로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얕지 않다는 것을 여러 부분에서 변호해주는 것 같아 좋았다.

 영화 내에서 가장 화려한 변신 장면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원작이 놓친 부분을 유머러스하게 채워 넣는다. 요정 대모가 걸어준 ‘얼굴을 못 알아보게 해주는 마법’은 그간 이 동화를 다루는 데 있어서 “무도회에서 대놓고 춤을 추는 데 새 엄마가 못 알아보는 게 말이 돼?” 라는 작은 태클까지 신경 쓴 모습이다.      



- 신데렐라에 대해서

 영화는 신데렐라가 가지고 있는 선함에 대해서 의미적인 깊이를 더했다. 용기와 착한 마음이 그것이다. 선함에 있어서 용기가 따른 다는 것인데, 그 용기는 영화 마지막 부분에 신데렐라가 이야기하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한’ 선함을 택하는 것 또한 포함되는 것 같다. 착하다는 것은 사회적인 선택일 수 있다. 착하다는 평가는 자신이 자신에게 하기 보다는 타인이 하기 때문이다.‘자신을 위한 선함’이라는 점이 강조된 장면은 새 엄마에게 엄마였던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이야기 하는 장면에 이어서 마지막에 새 엄마를 용서하는 장면이었다. 엄마였던 적 없다고 부인했지만 용서라는 말을 남긴 것은, 철저히 자신을 위한 선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으로써 과거를 말끔하게 정리하고 문 밖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되었다고 본다. 이는 또한 새 엄마에 대한 가장 완벽한 복수이기도 했다.

 이렇듯 실사 속 신데렐라는 전의 지고지순하기만 했던 캐릭터가 아니라, 안장 없이 말을 타고 달린다던가, 맨발로 빗속을 거니는 등의 장면들을 통해서 자유분방한 캐릭터를 추가해 고전적 캐릭터의 답답한 부분들을 해소해주었다.      



- 영화 내 다인종 캐릭터들에 대해서

 최근 실사화 된 <미녀와 야수>가 다인종 캐릭터들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지만, 그 시작에는 <신데렐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내부의 설정상의 차이가 있지만, 다인종 캐릭터의 신분들이 <신데렐라>에서 더 높다는 점에서는 다인종 캐릭터의 활용에 있어서 더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왕자가 있는 왕국은 약소국으로 왕자가 엘라에게 빠지기 전에는 정치적 선택으로 강국의 공주들과 결혼해야했다. 전통적으로 열리는 무도회에서 주위 강대국의 공주들을 만나게 되는데, 무도회 장면에서 아시아, 흑인, 라틴계 공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왕자와 신분이 같으며 그 중 정략결혼이 예정된 강국의 공주도 포함되어있다.

왕자의 옆에서 마지막까지 충절을 지키는 근위 대장 또한 흑인 남성분이 맡으셨고, 중간에 유리 구두를 왕국의 처녀들에게 신기는 장면에서도 흑인 귀족집안이 등장한다. 여러 부분에서 다인종 캐릭터들의 지위가 높게 나와 보는 데 있어서 불편함이 없었다.      



- 인상 깊은 장면들

 영화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의상이다. 신데렐라의 파티 드레스도 매우 아름다웠지만 개인적으로 영화 내 모든 인물들을 압도하는 새 엄마 역의 케이트 블란쳇의 의상이 더 인상깊었다. 의상을 비롯해서 인테리어, 소품 등 영화 속의 미술 요소들이 호화롭지만 과함이 없이 세련되게 자기 위치에서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인상 깊었던 장면들을 영화가 진행된 순서에 따라서 이야기 해보면, 처음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신데렐라 둘이서 함께 살아온 것을 “시간이 흘러 고통은 추억으로 바뀌었습니다.” 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상복을 입은 둘이 길을 걸어가면서 시간이 지나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나레이션이 던지는 한 마디와 어렸던 신데렐라의 성장과 그 옆을 함께 걷는 아버지의 모습이 둘이 함께 지나온 세월을 짧지만 여운있게 보여주었다.

황홀한 변신 장면을 지나서 눈길을 끌었던 장면은 유명한 명화인 프라고나르의 ‘그네’를 모티브로 한 장면이었다. 장미 덤불 사이의 그네라는 풍경의 싱크가 잘 맞아 많은 사람들이 알아봤을 것 같다. 왕자의 비밀의 정원에서 그네를 타며 벗겨진 유리구두를 왕자가 신겨주는 장면인데, 원작 명화에서 신발-사랑이라는 메시지를 꺼내 영화에 맞게 잘 녹였다고 생각한다.

 이어서 열두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궁전에서 신데렐라가 도망치는 장면이 진행된다. 황홀한 변신장면만큼 도망치는 장면, 마법이 풀리는 장면도 박진감 넘치게 진행되었다. 신데렐라가 그림으로 가득찬 방을 뛰어갈 때 화면이 같이 기울어지는 장면이나, 마차 추격의 장면이 매우 역동적이었는데 신데렐라의 실사영화에서 예상되는 장면과 감정이 아니었어서 흥미로웠던 장면이었다.      



 신데렐라의 실사영화는 가장 진부한 이야기 중 하나인 신데렐라의 스토리의 빈 부분을 원작의 흐름을 해치치 않는 선에서 풍부하고 섬세하게 채워 넣은 작품인 것 같다. 원작을 따른 훌륭한 변주라는 점에서 다는 실사영화와는 다른 말끔하고 세련된 리메이크라는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모두 원작이 아름답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영화를 보면서 느껴졌던 영화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블랙스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