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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Mar 2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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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줄 알았던 수많은 남의 조각들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는 OS와의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공허함에 대한 인상이 깊었다. 최근영화를 재관람했을 때는 영화가 본디 말하고자 했었던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는 별거 중인 아내 '캐서린'(루니 마라)과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삶을 함께 나누며 성장했었다고 이야기 한다. 이 과정은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와의 사랑에서도 반복되는 듯하다. 세상에 갓 태어난 사만다는 테오도르를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하며 성장해나갔고 테오도르 또한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서 꺼져있던 일상이 밝아지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그가 사만다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성장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둘은 인격과 인격이 가지는 차이뿐만 아니라 인간과 OS의 차이도 인정하고 유지해야하는 상황에서 여러 곡절을 겪는다. 

  테오도르는 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서자 그는 그동안 덮어두었던 캐서린과의 이혼을 진행하게 된다. 캐서린과의 만남에서 캐서린은 OS와 연애 중이라는 테오도르의 말을 듣자, 진짜 감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때부터 테오도르는 이 감정이 ‘진짜'인지에 대한 불안과 고민이 시작된다. 

  반면 사만다는 테오도르로 인해 자신의 감정, 그 중에서도 자신이 테오도르를 향해 느끼는 감정은 프로그래밍이 아닌 고유의 감정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된 상황에서 다음 사건이 진행된다. 테오도르와의 사랑을 확신한 사만다는 둘의 가장 차이를 좁히려고 애쓴다. 태초에 물질로서 하나였던 점을 이야기한다던가 중간에 둘의 사이를 돕는 대리인에게 부탁해 사람으로서 행동하려 한다. 사만다, 대리인, 테오도르 세 명이 하나의 사랑을 나누려는 순간,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 그리고 감정의 본질이 드러나게 된다. 테오도르는 대리인의 입술이 떨리는 것을 보고 끝내 이입하지 못해 역할극을 이어가지 못한다. 이것은 감정과 육체는 떨어뜨릴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며 사만다와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부분이다. 이후에 사만다와 테오도르는 다툼을 하게 되는데, 사만다가 한숨을 쉬는 제스쳐를 취하자 테오도르는 공기가 필요없는 사만다가 ‘척’하지 않아도 된다며 사만다에게 상처를 준다. 

  둘의 차이가 드러난 후, 사만다는 자신의 OS로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확립해 나간다. 둘의 관계은 어느 때와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테오도르는 문득 문득 'OS'인 그녀가 자꾸 그에게서 멀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런 둘의 차이는 결국 많은 사람들과 동시에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만다의 고백을 통해서 테오도르를 무너뜨린다. 이것은 테오도르가 사만다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 아니라, 테오도르가 가지고 있던 사랑에 대한 일방적 관점이 한계를 맞은 것이다. 


  테오도르는 사만다에게 지속적으로 자신의 것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는 그녀를 '나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으로서 사랑한 것이다. 그는 캐서린과의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이혼서류에 사인을 하기 위해서 만났을 때 캐서린은 그가 바라는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고 말한다. 캐서린이 진짜 감정을 마주하지 못한다고 이야기 했을 때 테오도르가 흔들린 것은, 그가 사만다를 통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있었던 것이 아닌, 자신의 감정을 복기하고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깨달았기 때문이다. 

  인격체이긴 하지만 자신을 위해 맞춰진 사람과의 사랑은 자신이 원하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테오도르는 OS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한 채 무너지는 데, 그것은 그녀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철저히 자신이 바랬던 모습만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영화의 인물들이 앓고 있는 공허는 감정에 대한 이기적 자세 때문에 나온다. 빠르게 관계의 목적을 증명하고 싶고, 맞지 않는다면 차갑게 돌아선다. 우리는 쉽게 이성과 감성을 주관하는 것은 '나'라고 믿지만, 이성에도, 감정에도 방금 만났던 ‘남’이 묻어 있다. 테오도르는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 나의 필터를 통해서 그녀들을 인식했었다. 사랑을 통한 성장 또한 시간 안에 그녀와 함께 했던 '나의 성장'이었던 것이다. 사만다가 떠난 자리, 그곳에는 한 뼘 자란 테오도르의 사랑이 있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났던 테오도르의 사랑은 사만다와의 사랑을 통해서 오롯한 한 사람을 보고, 그녀를 사랑하는 시간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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