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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Mar 20. 2018

마더!

태초에 비명이 있었다.

 도시 외곽의 숲 속의 집, 시인과 그의 아내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시인은 다음 시집을 준비하고 있고, 아내는 집을 고치고 단장하며 하루를 보낸다. 어느 날, 둘의 세계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 아내는 우연히 집을 찾았다는 그의 가방에서 남편의 사진을 발견하고 그를 의심하지만, 남편은 자신의 팬이라는 남자에게 호의를 베풀 뿐이다. 남자에 뒤이어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비롯한 계속되는 손님들의 방문과 그들의 무례한 행동에 아내는 혼란스럽다. 이렇듯 영화 <마더!>의 시작은 이렇게 의심의 꼬리를 문 스릴러와 같다. 하지만 영화의 끝으로 달려갈수록 영화는 감춰두었던 속내를 드러낸다.  


    

- 태초에 비명이 있었다. 

 영화가 감추어둔 속내는 남편인 시인이 그의 팬들에게 신성으로 비춰지는 순간 모든 아귀가 맞춰진다. 내내 흐릿했던 초점이 ‘성경의 우화’로 명확하게 맞춰지면서 앞뒤로 이어진 비이성적이고 폭력적이었던 사건들이 아담과 이브부터 예수까지 이어지는 성경의 사건들로 의미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의 인간, ‘마리아’를 보게 된다. 

 시인과 아내에게 있어서 집은 그들이 폐허 속에서 구축한 세계이다. 시인은 집이라는 공간의 주인이자 창조주인 반면, 아내는 그 세계 안에서 실존하며 폐허를 바로 잡아가는 존재이다. 집의 박동을 공유하는 그녀에게 있어서 집은 곧 자기 자신과도 같다. 

 세계를 만든 자와 세계를 지키는 자의 순수하고 평화로운 균형이 흐르던 곳에 ‘인간’이 들어와 평화를 흔든다. 그들은 시인과 아내의 집을 침범하고 동시에 침식시킨다. 어느 누구도 부부에게 있어서 특히 아내에게 있어서 ‘집’이라는 존재가 특별한지 마음을 기울여 묻거나 들어주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끊임없이 갈구한다. 처음에는 시인이 아끼던 보석을, 시인의 시를 종단에는 부부의 아이까지 탐욕스럽게 취한다. 그들은 계속 증명된 무언가를 찾아서 부부에게서 앗아간다. 스스로 존재하는 창조주인 시인에게는 무한한 베풂이 가능할지 모르지만, 인간의 몸으로 신성의 순수함을 지키는 아내에게 세계의 붕괴는 비극 그 자체이다. 

 신성의 순수함에 발을 들이고 있는 그녀는 하나의 욕망하는 인간이다. 아이를 가지고 싶고, 눈물을 흘리고, 안도하고, 소리 지르고 절규한다. 신성의 무한한 사랑과 신성을 향한 인간의 무한한 욕망과 폭력 사이에서 외면당한 아내와 그녀의 집은 결국 그녀의 손에 의해 처참한 결말을 맞는다. 담뱃불과 라이터, 주방에서의 화재, 지하실의 스토브 등 내내 집안에 흐르던 화마의 예고는 사람들에게 아이를 잃고 폭력에 지친 아내가 석유통에 불을 붙이면서 폭발한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던 것은 집에 처음 찾아온 손님 ‘남자’의 라이터였다. 인간이 가져온 균열의 불씨로 모든 걸 태우는 순간, 그 끝과 시작에는 다시 그녀가 있었다. 

 폐허 속에서 신이 마더를 꺼내 올린다. 그리고 그녀에게서 ‘사랑’을 꺼낸다. 하나의 인간에서 꺼내든 순수한 사랑이 다시 순환의 동력이 된다. 이렇게 태초의 순환이 시작되는 그 곳에는 한 인간이 마주한 처절한 혼돈과 비명, 모든 걸 태운 희열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감싼 사랑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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