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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Mar 28. 2018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연약한 표피 아래로 차오르는 맑은 감정

  1983년, 이탈리아 북부의 가족 별장에서 보내는 열일곱 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의 여름은 지루함으로 가득 차있다. 나른한 여름의 어느 오후, 교수인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미국에서 온 스물 넷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가 별장에 찾아온다. 그가 찾아온 그 날, 매일 같은 풍경 속을 살던 엘리오의 일상에 작은 진동이 인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열일곱 엘리오의 어깨 위로 쏟아진 한 여름 햇살만큼이나 찬란했던 첫 사랑의 기억을 그려낸다.      




- 연약한 표피 아래로 차오르는 맑은 감정


  그해 여름 손님인 올리버를 위해 엘리오는 매년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방을 내어준다. 하지만 이번에는 화장실 너머 나의 방을 쓰고 있는 그 사람에게 엘리오의 온 마음이 기운다. 엘리오는 여독에 지쳐 잠든 그를 차마 흔들어 깨울 수도 없다. 그는 책을 땅에 떨어뜨려 우연한 사건으로 올리버를 깨운다. 그리고 엘리오를 여름 내내 애타게 할 “나중에” 라는 말 한 마디를 마음에 담는다. 

  엘리오는 자신의 일상에 이는 올리버라는 진동을 섬세하게 느낀다. 그가 자전거를 끌고 정원 안으로 들어오는 발걸음만으로도 어린 마음은 부풀어 오른다. 그리고 그가 주체할 수 없이 차오르는 사랑과 관능을 느낄 때마다 그 옆에는 몸과 귀를 간질이는 파리가 따라 붙는다. 마치 익다 못해 연약한 껍질을 찢고나온 과육을 찾을 때처럼. 올리버를 향한 엘리오의 마음은 언제나 그의 내부를 넘어 소리와 공간으로 넘쳐흐른다. 마음을 숨기기 서툰 그가 장난처럼 주었다가 뺏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손에서 시작되어 공간을 채우고 올리버의 귀에 닿는 음악이다. 어린 바흐가 형에게 바쳤던 것처럼 그도 음악으로 올리버를 간질인다. 

  올리버는 단숨에 엘리오의 사랑을 간파했다. 하지만 엘리오가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올리버의 손을 피했을 때부터 그는 한 걸음 건너에서 엘리오의 곁을 맴돌기로 한다. 말과 말 사이에 함정을 던져두고서. 하지만 엘리오는 그가 벌여둔 말의 함정들을 넘어서 곧장 그에게로 달려든다. 엘리오는 자신과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 서툰 반면 올리버는 자신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반숙 계란을 권하는 엘리오의 어머니의 말에 “하나를 권하기 시작하면 말릴 때까지 먹을 것”이라는 그에게 엘리오와의 사랑은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이었다. “나중에”라는 말로 밀어냈던 그는 온몸으로 달려드는 엘리오를 따라 기꺼이 사랑에 몸을 던진다. 

  그가 건네는 말 한마디, 그에게 던지는 음악 한 조각이 소중한 엘리오에게 그가 내린 침묵은 죽음과도 같다. 그의 침묵을 견디지 못한 엘리오가 남긴 쪽지에 그날 밤 자정에 만나자는 올리버의 답을 받은 순간 둘의 하루는 관능과 초조함으로 가득 찬다. 별장을 찾은 손님들이 돌아갈 무렵 아버지는 엘리오에게 빌린 시간을 돌려준다. 그리고 되찾은 엘리오와 올리버의 밤은 서로의 이름으로 가득 찬다. 자신의 이름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부르는 순간 그는 곧 나의 사랑의 총체가 된다. 죽음 같았던 침묵, 예견된 이별, 그리고 그의 눈동자에 비친 행복한 자신의 모습까지. 

  엘리오는 자신의 사랑의 크기에 위축되어있다. 올리버에 비해서 자신은 초라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은 사랑한다고 내뱉을 용기조차 없다고 얼버무린다. 엘리오의 한편으로는 치욕적이고 한편으로는 정수와도 같은 욕망이 담긴 복숭아를 올리버가 그러쥐자 그는 눈물을 흘리며 무너진다. 자신이 초조하게 올리버를 향해 쏟아내었던 감정들이 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크기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둘의 사랑은 쏟아지는 여름 햇빛 아래 놓인 과실처럼 절정을 향해 익어간다. 

  예견되었던 이별을 앞둔 둘은 ‘베르가모’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둘이 만나는 풍경은 폭포가 쏟아지는 자연이다. 둘이 첫 키스를 한 곳에도 물이 있었다. 산에서 바로 내려온 물이 고이는 엘리오의 공간. 올리버가 그의 방에 자리를 틀었듯 그 비밀스런 공간에서 사랑이 새겨졌다. 그리고 둘이 찾아간 폭포는 물이 쏟아지는 수원지 같은 곳이다. 바위틈에서 터져나오는 듯 쏟아지는 폭포와 서로의 이름이 메아리치는 곳에서 둘은 자유롭게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른다. 

  올리버가 떠나는 날, 엘리오는 기차역에 서 있다. 몸을 싣고 떠다는 자는 뒤돌아 볼 수 없지만, 보내는 자는 그가 남긴 궤적을 따라 끝없이 따라간다. 그리고 멈춰진 자신으로 돌아왔을 때의 깊은 상실감. 엘리오는 그 자리에 무너져 내려 한 걸음도 디디기 힘들다. 그런 그가 어머니의 차를 타고 올리버의 빈자리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쏟아진 첫 사랑이라는 순간을 잃지 말라고 다독인다. 

  영화는 찬란한 찰나들을 그리고 있다. 두 사람의 6주라는 기한이 있는 사랑이 그랬고,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띄운 음악들이 그랬으며, 두 사람 곁에 있는 잘 익은 복숭아가 열린 여름 풍경이 그랬다. 헤드폰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고 그 뒤로 올리버의 목소리가 섞이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여름의 평온함 속에서도 안키세스가 그 풍경 안으로 갓 잡은 붕어를 넣는다. 물에서 나와 죽음으로 가는 위태롭지만 생명으로 번들거리는 찰나. 그 찰나의 여름 풍경 안에서 올리버와 엘리오가 서로를 자신의 이름으로 부르는 일 또한 공기 중으로 흩어져 둘은 계속해서 서로에게 이름을 부른다. 

  필름에 포착되듯 새겨진 엘리오의 첫 사랑은 아름다우면서도 위태롭다. 슬픔을 잘라내려고 품속에서 꺼내는 순간 사랑의 순간까지 빛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아버지의 한 마디는 엘리오의 열일곱 첫 사랑의 기억을 영원으로 봉인한다. 그렇게 엘리오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사랑이 자신을 부르는 그의 이름 한 마디에도 변색되지 않는 그해 여름의 맑은 사랑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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