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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Apr 16. 2018

몬태나

결국 삶이라는 짐을 나눠지고 걷는 것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 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892년 뉴멕시코, 땅을 차지하기 위한 인간의 야만이 펼쳐졌던 서부 개척시대도 마무리 될 즈음, 인디언 부족을 청소하며 대위의 자리까지 오른 조셉(크리스찬 베일)은 20년간의 군 생활을 끝낼 마지막 임무를 받는다. 그 임무는 바로 그들과 이를 갈며 싸움을 벌인 인디언 추장(웨스 스투디)과 그의 가족들을 고향인 몬태나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여느 때처럼 국가의 명을 받든 조셉이지만, 20년 동안 쌓인 인디언에 대한 적의는 쉽게 풀리지 않는 채로 몬태나로의 여정이 시작된다. 

 영화 <몬태나>는 서부 개척시대의 막을 거두며 그것이 미국과 인디언에게 남긴 상처와 그것의 근원을 조셉 일행의 여정을 통해 풀어낸다. 날카롭고 무겁게 자리하고 있는 미군과 인디언 사이의 적의를 광활한 자연은 그저 묵묵히 품어낸다.      



- 결국 삶이라는 짐을 나눠지고 걷는 것

 “미국 영혼의 본질은 억세고 고독하며 초연하고 살의에 찼다. 그건 지금까지 그대로 뭉쳐있다.” 영화는 영국 소설가 D.H 로렌스의 말로 문을 연다. 그리고 서부에서도 야만스러움으로 악명 높은 코만치 족이 로잘린(로자먼드 파이크)의 가족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장면을 첫 장면으로 선택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서로를 향한 적의가 가득한 땅이 얼마나 야만스럽게 추락했는지를 보여준다. 더 이상 보편적인 아군과 적군은 없다. 그저 내가 먼저 죽이지 않는다면 살아남지 못하는 척박한 땅만이 남았다. 

 모두가 개척시대를 빠져나오면서 당시의 광기를 수습해나가고 있었지만, 그건 서류에 사인을 하는 서부의 땅 밖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조셉은 여전히 전쟁 속의 군인이었다. 그에게 오랫동안 싸움의 대상이었던 인디언 추장을 고향으로 안전히 호송하라는 것은 그가 이름을 기억하는 수많은 동료들의 죽음을 져버리는 일이었다. 그는 인디언 추장과 그의 가족들의 손을 단단하게 묶는다. 이들의 일방적 관계에 인디언에게 상처받은 로잘린이 들어오며 조셉이 쌓아올린 벽이 서서히 무너진다. 

 코만치 족의 만행으로 가족을 잃은 로잘린은 조셉이 호송 중인 인디언 추장과 가족들을 보고 공포에 질린다. 실의와 두려움에 빠진 그녀에게 추장의 딸이 옷가지를 건네며 척박한 마음에 ‘인간’의 온기를 전한다. 후에 그 온기는 상처를 주었던 타인이었던 인디언과 이름을 주고받으며 관계의 싹이 튼다. 조셉이 인디언들과 함께 서부 개척시대의 가해자로서의 참회의 길을 걷는다면 로잘린은 개척시대 피해자의 회복과 성장의 길을 걷는다. 

 조셉의 개인적 고뇌는 인디언을 잔혹하게 살해한 죄명의 탈영병 찰스(벤 포스터)를 만나면서 깊어진다. 전 동료였던 찰스는 살인자이자 탈영병인 자신과 조셉이 별반 다르지 않다며 조셉에게 선처와 이해를 구한다. 하지만 조셉은 인디언과 한 캠프를 쓰면서도 찰스를 나무에 단단히 묶어놓는다. 찰스에게는 죽여야 하는 사람들만이 남았다면, 조셉에게는 죽임을 당한 자들의 이름이 남았다. 삶을 기억하는 조셉은 조금씩 적의를 내려놓고 인간에 대한 존중을 회복해 나간다. 

 조셉 일행은 끝내 몬태나에 다다른다. 인디언들이 되돌아 가야할 고향이자 조셉이 모든 의무를 풀어 내릴 그곳. 몬태나에는 더 이상의 살의도 적의도 없다. 그저 삶의 과정 속의 무심한 죽음들을 이기고 살아남은 생명을 향한 존중과 경외만이 남았다.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듯이 메말라 있던 조셉은 차오른 마음으로 달리는 기차에 몸을 싣는다. 기차가 향한 곳은 아마도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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