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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Apr 22. 2018

컨택트

시작으로의 도착

 영화 속 외계는 경외와 탐구의 장소 이전에 폭력과 시각 스펙터클의 장으로 제시된다. 기괴하고 공포스럽지만 여전히 이성이 쌓아올린 상상력 안에 존재하는 논리적인 외형을 가진 외계인들은 인간과 ‘폭력’을 매개로 단순한 대화를 나눈다. 승자와 패자, 그리고 자본과 폭력을 쏟아내 지켜낸 평화가 둘의 대화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관객들은 손쉽게 그들이 만들어낸 폭력을 즐기고 돌아선다. 외계는 영화가 그려온 수많은 폭력의 역사 끝에 놓여있다. 그 근본에는 우리가 타자(他者)를 대하는 공포와 몰이해, 분노와 욕심 등 표면적이며 비이성적인 인식들이 녹아있다. 영화 끝 지구의 평화를 지켜 낸 이성과 지혜의 산물인 인간으로서의 자긍심과는 거리가 멀다. 반면, 영화 <컨택트>는 전 세계 12개 지역에 찾아온 외계인 햅타포트와 지적 접촉을 시작한다. 감정과 예술, 문화가 혼합된 인류의 발명품, ‘언어’를 통해서.      



- 시작으로의 도착     


 <컨택트> 속 외계와의 첫 접촉은 여느 다른 영화와 다르지 않다. 외계는 등장 자체로 전 지구적인 혼돈을 가져온다. 하지만 존재함으로써 존재하는 그들은 불편하고 기괴하며 신비와 의문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인류에게 말을 걸었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답을 원했다.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는 인류가 답을 찾기 위한 여정에 함께 한다. 

 루이스는 ‘과정’ 안에 있는 사람이다. ‘전쟁’을 뜻하는 산스크리트 어를 번역하는 데 있어서 루이스는 ‘다툼’이 아닌 ‘더 많은 암소를 원한다.’라고 답한다. 단어 몇 개가 붙었을 뿐인데 그곳에는 역사와 감정, 열망이 섞여있다.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러너)가 인간이 만들어 낸 숫자라는 세계를 외계어를 이해하는 도구로 삼은 반면 루이스는 그들의 언어가 축조한 세계 안으로 온 몸을 던진다. 루이스는 나를 싸고 있는 모든 껍질을 내려놓고 존재 대 존재로 똑바로 마주하는 일부터 천천히 대화의 걸음을 뗀다. 

 햅타포트가 시각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을 알아내자, 우주 비행체 쉘이 내려앉은 국가 12곳에서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미국의 정치, 문화적으로 반대편에 선 나라, 중국은 마작 패를 통해서 대화를 시도한다. 모든 대화가 승과 패로 귀결되는 접근 방식에 대해 루이스와 미국 몬태나 기지 사람들은 우려와 위기감을 드러낸다. 웨버 대령은 “망치를 쥐어주면 모든 것이 못으로 보이겠죠.”라는 말을 루이스와 함께 마무리 짓는데, 이는 그가 루이스와 햅타포트의 만남을 보며 언어와 타자를 대하는 방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는 일전에 루이스가 외계인들에게 말을 가르친다는 시도에 대해 설득시켜 달라고 청한 적이 있다. 루이스는 ‘캥거루’라는 단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며, 명확하지 않은 소통이 가져온 결과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에 웨버 대령은 그 이야기의 끝은 “더 진화한 종족에게 몰살” 당했다며 사안의 긴박함에 초점을 맞춘다. 실은 ‘더 진화한 종족’이란 없었다. 그저 더 무례하고 더 폭력적인 종족만이 있었을 뿐. 웨버 대령과 우리는, 무기는 그 자체보다 그것을 쥔 사람에 따라 결을 달리한다는 걸 루이스와 햅타포트의 지성적 교감을 통해 깨닫는다. 

 헵타포트의 언어는 가로와 세로로 일방향적 사고를 하는 인류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그것은 원형의 형태에도 드러나지만, 문자가 쓰여지며 존재하는 방식에서 차원의 틀을 넘어선다. 입자로 구성된 유동하는 원형의 언어는 ‘공간’ 안에서 일시적으로 존재했다 흩어진다. 이는 인류가 문자를 새겨온 2차원 평면에 시간의 축을 긋는 일이다. 그들이 긋는 원을 따라 공간과 시간을 가로지르면 인류는 시간을 평면 위 직선이 아닌 공간 속의 순환으로 인식한다. 루이스는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며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진 시간 평면을 유동하는 고리로 인식하기 시작한다. 

 “무기를 준다.” 햅타포트가 남긴 한 마디가 인류에게 다시 한 번 큰 혼돈을 가지고 온다. 중국을 시작으로 국가 간 대화가 끊기고 공격 태세로 들어간다. 심지어 몬태나 쉘에서도 햅타포트를 향한 폭발 사건이 일어나며 미국 또한 철수를 시작으로 한 대대적인 물리적 총 공세의 기운이 피어오른다. 그간의 표면적 소통이 무너진 그때, 루이스에게 딸과 관련한 기억들이 점점 더 자주 떠오르며 햅타포트와의 대화에 혼돈을 해소할 열쇠가 있을 것이라 직감한다. ‘논 제로섬 게임’, 12개국이 모두 공유하고 협력해야 햅타포트가 준 언어라는 시간을 여는 무기를 얻을 수 있다. 이 거대하고 국가적인 움직임이 필요한 때, 영화는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다. 

 루이스에게 있어 딸과의 기억은 온화하면서도 강렬한 사랑의 기억이다. 미래에서 현재로 침범해오는 기억은 그녀에게 햅타포트와 대화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동시에 사랑의 기억은 현재를 조율하며 미래로 이끈다. 루이스는 중국의 섕 장군에게 전화를 건다. 국가의 틀을 벗은 개인과 개인의 만남이다. 그 긴박하고 짧은 대화에서 루이스가 건넨 말은 섕 장군 아내의 유언이었다. 사랑의 기억은 개인을 움직이고 그 개인은 집단을 바꾼다. 집단은 상징으로 표현된다. 기호, 문양, 색깔. 국기가 그렇다. 입체적 사연을 가진 개인들은 쉽게 평면적 집단이 된다. 그리고 그 집단은 불안과 공포 앞에서 무지하고 무례하며 욕심 많고 폭력적이다. 그 안에서 영화가 인간 개인에 서린 사랑의 기억을 꺼내 든 것은 직선으로 된 역사를 흘러오며 잊었던 인류의 본질을 짚어낸 일이다. 

 외계가 지구에 도래함으로써 시작된 이야기는 끝에 다시 시작점에 선다. 루이스는 이안과의 사랑을 선택하며, 다가올 딸과의 만남과 이별의 과정에 들어선다. 영화는 시작에서 시작으로 향하는 여정이었고, 루이스와 함께 우리는 다시 그 시작으로 도착했다. 순환하는 원형의 이야기 끝에 남은 건 ‘삶’이라는 과정 안에 있는 인류가 공유하는 겸허하고 겸손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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