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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Apr 15. 2018

소년이 상실을 마주할 때

<몬스터 콜>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삶의 곳곳에는 상실이 산재해 있다.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매일 같이 잠에 들면서 우리는 살아온 하루를 뒤로 한 채 내일로 나아간다. 하지만 삶에 면면의 모든 상실이 이렇게 가벼운 생채기처럼 지나가지 않는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잃는 상실은 세상을 도려낸 것처럼 혼란스럽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오스카는 9.11테러로 하루아침에 아빠를 잃었다. 그는 갑작스럽고 비이성적인 테러라는 사건으로 인한 아버지의 죽음을 이해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아빠와 하나의 탐험 주제를 놓고 논리와 이야기를 붙여가며 시간을 보내곤 했던 똑똑한 소년이었던 오스카는 아빠가 남긴 마지막 탐험으로 빠져든다. 그렇게 ‘사라진 뉴욕의 6번째 자치구’를 찾는 여정이 시작된다. 

 <몬스터 콜>의 주인공 코너는 말기 암을 앓고 있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예정된 시간이 다가올수록 코너는 점점 더 불안정해져 간다. 그러던 어느 날 12시 7분, 매일 밤 악몽 속에서 보던 나무가 괴물이 되어 그를 찾아와 세 가지 이야기를 전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 끝에는 코너가 네 번째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이며 몬스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상실을 맞이한 두 소년 모두 ‘이야기’로 도피한다. 이야기의 긴 여정 안에는 상실로 부서진 마음을 다독이는 과정이 숨어있다. 오스카의 ‘사라진 뉴욕의 6번째 자치구’를 찾는 일은 아빠가 남긴 마지막 유산처럼 작용한다. 아빠의 마지막을 온전히 가지고 싶은 소년, 그리고 갑작스러웠던 상실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고픈 아이의 마음이 공포증 많은 소년 오스카를 뉴욕의 거리로 이끈다. 오스카가 공포를 느끼는 대중교통, 엘리베이터, 다리 등은 도시의 상징인 동시에 테러의 대상이 되곤 하는 곳이다. 그런 동시에 그 곳은 무분별하게 채워진 타인들로 가득한 곳인데, 이는 곧 오스카의 공포는 도시 속의 타인들에게 향해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스카는 타인들이 가득한 도시의 소음에서 안정을 찾기 위해 개인이 만들어 낸 소음으로 귀를 막는다. 

 오스카가 목적이 있는 탐험을 시작했다면 몬스터가 코너에게 전하는 이야기들은 모두 모호함 속에 있다. 선과 악을 명확하게 분별해 낼 수 없는 기묘한 동화들 속에서 코너는 절대 선에 대한 의문을 맞는다. 몬스터가 들려주는 모호한 동화들과 손 쓸 수 없이 죽음으로 향해가는 엄마 앞에서 코너의 상황은 더욱 더 혼란 속에 빠져든다. 몬스터는 코너를 계속해서 네 번째 이야기를 하도록 몰아세운다. 하지만 코너는 결코 네 번째 이야기는 할 수가 없다. 그것은 코너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수많은 것들을 인정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코너는 지쳐있었다. 엄마의 오랜 투병으로 죽음의 그림자를 성장의 시간 속에서 안고 살아온 코너는 가끔 어차피 예정되어있다면, 엄마와의 이별이 보다 빨리 오기를 바라기도 했다. 코너는 그런 잔인한 생각을 한 자신에게 스스로 벌을 준다. 오스카에게 있어서 상실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단절이었다면 코너에게 있어서 상실은 지속된 슬픔과 우울로 점철된 분노, 울분, 죄책감 등의 감정이 복잡하게 설켜있다. 


 두 소년 모두 상실이라는 결과 앞에서 이야기의 무용함을 깨닫는다. 오스카가 내내 찾았던 ‘블랙’이라는 인물과 아빠가 남긴 열쇠는 ‘6번째 자치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고, 모든 병을 치료해준다는 몬스터의 나뭇가지로 만든 약도, 그의 이야기도 코너에게 다가오는 엄마의 죽음이라는 그림자를 치워주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 끝이 성장으로 기록될 수 있었던 것은 두 소년이 몸을 부딪쳐 상실이라는 아픔을 뚫고 지나왔기 때문이다. 오스카는 그 끝에서 상실을 나눠지고 있는 뉴욕의 이웃들을 만났고, 코너는 선과 악의 절대성을 벗어난 본인의 진실된 모습을 직시할 용기와 엄마의 죽음이라는 마지막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두 소년 모두 이야기를 벗어젖히고 상실을 인정하고 마주한다. 

 소년들이 이야기 속에서 상실의 상처를 핥는 시간에는 내내 상실된 존재들의 잔영이 있다. 오스카는 탐험의 시작이 아빠였다면, 코너의 이야기의 끝은 엄마이다. 멀어지는 존재들의 유산이 사랑하는 사람을 성장으로 이끈다. 삶은 잃어가는 과정이며 어떻게 보면 상실은 삶의 연료와도 같다. 우리는 모든 걸 안고 살아갈 수는 없다. 언젠가는 하나씩 내려놓고 걸어가야 하는 때가 온다. 우리는 두고 온 것들을 이야기로 더듬고 쓰다듬으면서 오래토록 간직해 나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떠나보낸 것이 아니라 영원히 마음에 남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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