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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un 10. 2018

아직 끝나지 않았다

폭력을 감지하는 시선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 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가 더 거짓말쟁이 일까요?"

 

  영화는 첫 장면에서 사무실의 빈 의자를 비춘다. 그리고 컷에 컷을 더하듯 사무실에 인물이 드나들며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의문을 하나씩 더한다. 관객들은 곧 카메라가 바라보고 있는 현장이 이혼한 ‘미리암’(레아 드루케)과 ‘앙투안’(드니 메노셰)의 재판 심리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둘은 어린 아들 ‘줄리앙’(토마 지오리아)의 양육권을 두고서 공방을 벌인다. 

  줄리앙과 누나 ‘조세핀’(마틸드 오느뵈)는 아빠를 ‘그 사람’이라고 부르며 만남을 거부하고 있지만 앙투안에게 당했다는 폭행을 증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양측 변호인의 우아하지만 서로의 약한 부분을 물고 늘어지는 너저분한 변호를 들으며 판사는 질문을 던진다. “누가 더 거짓말쟁이일까요?” 영화는 남이 되기 위한 마지막 단계에 선 한 가족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한다.  


    

- 폭력을 감지하는 시선

  ‘누가 더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라는 의문으로 시작한 영화는 말이 없다. 미리암과 앙투안의 관계 그리고 아이들이 아빠를 ‘그 사람’이라고 부르는 깨져버린 가족의 진실을 영화 속의 적막과 인물 간의 빈 공간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빈 공간에서 그들은 시선으로 대화한다. 

  판사는 앙투안의 손을 들어주었다. 줄리안은 그렇게 주말을 번갈아가며 아빠와 보내게 되었다. 아빠는 계속해서 줄리앙에게 묻는다. 누가 자신을 그 사람이라고 부르는지, 요즘 사는 곳은 어디인지, 엄마는 왜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는지. 아빠로서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되는 일상적인 것들. 하지만 줄리앙은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거짓말을 한다. 줄리앙은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의 연약한 완충지대로 아빠의 추궁과 엄마의 도피 사이에서 지속적이고 집요하게 압력을 받는다. 좁은 차 안, 먼 두 사람의 거리를 영화는 화면 끝에 아빠에게 대답하며 불안해하는 줄리앙의 표정을 걸어두어 보여준다. 카메라가 집중하고 있는 아이의 얼굴 뒤로는 배경에 섞인 아빠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어긋날 대로 어긋나버린 가족의 모습을 관찰하는 듯한 말 없는 카메라의 시선은 영화가 흐르며 점점 명확해진다. “엄마 때리지 말아요.” 줄리앙이 뱉은 한마디 말에서 진실의 추는 기운다. 이제 관객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력을 감지하는 엄마와 아이들의 눈빛을 정확하게 읽어 낼 수 있게 된다. 조세핀의 생일 파티 날, 전화를 받은 미리암이 줄리앙을 찾는다. 그리고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조세핀의 시선은 초조하게 엄마를 쫓는다. 앙투안이 파티를 찾아온 것이다. 등장만으로 일상을 공포로 흔드는 ‘그 사람’. ‘그 사람’을 알아 본 순간부터 카메라가 잡아낸 미리암과 아이들의 시선은 온통 호소로 가득하다. 

  파티가 끝나고 잠을 청한 미리암과 줄리앙을 앙투안이 찾아온다. 소리 지르며 문을 두드리는 앙투안에 공포에 질린 두 사람은 그래왔던 것처럼 숨을 죽여 숨는다. 하지만 앙투안이 문을 부술 듯이 두드려대자 줄리앙과 미리암을 온몸으로 문을 막아선다. 문을 사이에 두고 들어오려는 사람과 막으려는 사람들의 긴장이 최고에 달한 순간, 앙투안이 문을 향해 총을 발사한다. 그리고 몸을 숨겨 떨고 있는 모자(母子)를 구해낸 것은 제일 먼저 신고를 한 이웃 할머니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었다. ‘그 사람’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폭력을 표면적으로 지워냈더라도 가족이라는 흔적 안에서 멈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일상 속에서 폭력은 교묘하게 얼굴을 바꾸기도 하고, 무엇보다 티 나지 않게 부지불식간에 내리쳤다 사라진다. 그리고 남는 것은 당한 가족들 사이에 서린 공포다. 

  영화는 가시지 않는 폭력의 그림자를 가족에서 가장 멀지만 공신력 있는 판사 사무실 안 서류에 적힌 ‘그 사람’에서부터 시작해 가장 가깝지만 문을 열어 보기 전까지는 알아차리기 힘든 이웃의 소음까지 심적, 물적 거리를 좁혀가면서 그려낸다. 그리고 이웃집 할머니의 시선으로 문을 닫으며 끝을 맺는다. 그렇게 영화는 다시 묻는다. 당신의 눈은 어디부터 폭력을 감지해냈는지. 총을 맞아 처참하게 구멍이 난 문은 미리암과 아이들의 피난처에 메울 수 없는 빈자리를 내었다. 거기엔 오래토록 찬바람이 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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