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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un 17. 2018

우리들

어릴 때

  초등학교 4학년 선(최수인)이는 교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외톨이다. 피구 시합을 앞두고 각 팀의 팀장이 아이들을 하나씩 골라가는 동안, 마지막까지 남은 선이의 얼굴에는 기대에서 체념까지의 표정이 차례로 어린다. 그렇게 시작된 피구 시합에서도 밟지 않은 선을 밟았다며 내쫓기기 일쑤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홀로 1학기의 마지막 청소를 하고 있던 선이 앞에 전학생 지아(설혜인)가 나타난다. 2학기부터 한 교실의 친구가 될 둘은 첫 만남부터 하나뿐인 절친한 친구가 된다. 하지만 반짝였던 여름방학이 끝나가고 선이와 지아의 세계가 교실이라는 생태 사이로 빨려들면서 둘의 사이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우리’라는 말은 ‘나’를 포함한 말이다. 내가 그 안에 없다면 그 집단은 ‘그들’이 된다. 영화 안에서 아이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관계 사이에 선을 그리며 우리를 만들고 유대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우리는 ‘타인’을 만들며 자신을 증명하고 ‘그들’을 만들어내며 우리의 관계를 다진다. 결국 ‘우리’라는 말 안에는 내가 있지만 정작 그 관계에서 빠져버린 ‘나’. 영화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 어릴 때     


  초등학교 교사이자 뮤지션인 권나무는 ‘어릴 때’라는 노래에서 어린 시절의 풍경을 그림같이 섬세하게 그려낸다. 

솔직히 말하기가 그 어떤 것들 보다 쉬운 
꿈만 같던 어린 시절에
해바라기가 큰 액자처럼 벽에 걸려 바래 져 가고 
꽃에 미안한 맘이 들기 전에 씨를 뽑기가 
그 어떤 것들 보다 쉬운 꿈만 같던 어린 시절에 

    영화 속 아이들의 세계가 그토록 순수하게 느껴진 것은 맘속에 든 말을 고르기 전에 이미 뻗은 손의 솔직함에 있다. 선과 지아는 멀리서 보면 같은 반 단짝이자 따돌림의 상처에 마음의 촉각을 세우고 있는 아이들이다. 둘은 함께 바다를 그리고 팔찌를 나누어 끼고, 손에 빨간 물을 들이며 어린 우정의 단 꿈을 꾼다. 하지만 둘 사이에도 묘하고 얄팍한 권력이 들어선다. 서로 가지지 못한 것을 질투하는 선과 지아는 그 감정을 숨기는 것이 서툴러 불쑥 서로의 가장 아픈 부분을 찌른다. 그래도 세상에 둘 밖에 없던 때에는, 잠시 서먹해진 사이도 반가움에 새어나온 웃음으로 금방 붙곤 했었다. 숨기지 못하는 솔직함이 아이들을 상처주기도, 다시 이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솔직함은 어른이 되며 가장 먼저 시들어버리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 어른들은 하지 못할 약속들을 한다. ‘올 여름엔 다 같이 바다에 가자’는 선이의 부모님의 말은 뜻밖에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이루어진다. 아픈 할아버지를 미워하며 끝내 찾아가보지 않았던 아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눈물을 흘린다. 우리들은 많은 것을 감추며 웃고 있다. 

  2학기가 시작되고 반에서 잘 나가는 아이 보라(이서연)가 선과 지아 사이에 등장하면서 둘의 우정은 면을 달리한다. 지아가 보라와 어울리며 반 안에서의 선이의 위치를 알게 되며 둘 사이의 공기의 흐름은 바뀌었다. 지아는 자신이 알고 있던 선의 가장 약한 부분들을 보라와 공유하고 공격하며 선 위로 올라섰다. 갑자기 돌아선 지아 때문에 선이는 혼란스럽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전처럼 우정을 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일 뿐이다. 

  우연히 지아가 선과 같이 있게 된 것을 본 보라는 배신한 지아를 선의 위치로 밀어 넣고 선이를 살짝 위로 끌어올린다. 선이가 엄마에게 부탁해 싸온 오이김밥은 지아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동시에 조각난 가족이 생각나는 가장 아픈 음식이기도 하다. 소풍 날 엎어진 오이김밥은 지아를 ‘선이 엄마가 싸준 음식을 버려버린’ 나쁜 아이로 만들어버린다. 그렇게 착한 아이가 된 선이는 자기를 ‘선택해준’ 보라에게서 매니큐어를 받아 지아와 함께 들인 봉숭아 물 위로 덮어버린다. 

  이렇듯 선은 순수한 시선으로 보라와 지아가 보인 사랑과 질투를 받는 가장 무심한 존재다. 아이들이 권력을 여기 저기 휘두르고 선을 긋기 시작하면서 선이의 착함과 순수함은 어른들이 말하는 ‘순수함과는 다른 순진함’이 되었다. 등장하는 아이들이 감춘 가장 약한 부분을 목격한 순수한 아이 ‘선’. 영화는 아이들 간의 권력 관계에서 가장 주요하게 작용하는 비밀을 선이에게 맡긴다. 그리고 선이는 가장 순수하게 작용한다. ‘솔직함’으로. 그게 어떤 사람들 눈에는 주위 사람들을 나쁜 사람 만드는 ‘순진함’이 될지 모르겠지만.   

  

하나씩 알수록 더 먼지가 쌓이고 또 털어 내다 잠시 그때로 돌아가
노래하고 춤을 추고 해가 질 때까지 우리
같이 놀자   


  선이가 친구들의 약한 부분을 알 때마다 일은 더욱 꼬여만 간다. 결국 지아와 선은 서로의 우정을 잃고 둘 다 반 안에서 외따른 아이가 되어버렸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피구 시합. 선 밖에서 각자의 팀에 걸쳐져 있던 선이와 지아. 전에 선이 당했던 것처럼 지아도 ‘금을 밟았다’며 꼬투리를 잡힌다. 그런 지아의 편을 들어준 유일한 사람은 선이었다. 그렇게 선이와 지아는 운동장에 그어진 선 밖에서 서로를 다시 마주한다. 전과 같을 수는 없는 두 사람, 지아의 손에 어려있는 봉숭아물과 팔찌를 보아서였을까, 전날 동생 윤이와의 대화 때문이었을까. 선 밖의 무풍지대에서 선이는 다시 마음에 솔직해지기로 한다. “그럼 언제 놀아?” 라는 동생 윤이의 관계에 대한 맑은 현답과 권나무의 노래 끝에 메아리처럼 깔리는 ‘같이 놀자’라는 가사가 영화와 노래가 끝난 후, 관계에 솔직하지 못한 우리들의 마음에 오랜 파장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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