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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ul 03. 2018

변산

반짝이는 청춘의 잔여물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 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쇼미더머니 6년 개근에 빛나는 래퍼 심뻑. 하지만 언제나 예선에서 탈락하는 그는 다시 서울에서 갖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고시원 단칸방에서 살아가는 청춘 ‘학수’(박정민)로 돌아간다. 그렇게 조명 밖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던 학수에게 변산의 한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온다. 남처럼 살아왔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이다. 가족을 버렸던 건달 아버지에게 쌓인 것이 많은 학수는 절대로 변산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지만, “그럼 니 아부지랑 똑같이 되는거여.”라는 친구의 말에 차를 빌려 변산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 변산에서 그동안 학수가 덮어두었던 흑역사들을 마주하게 된다. 아주 징허게.


     

- 반짝이는 청춘의 잔여물

  서울에서 학수는 자신을 소개할 때, 서울 출신에 부모가 없는 고아라고 소개한다. 그렇게 고향과 가족을 지우고 살았던 그에게 ‘변산’이란 다시는 돌아보고 싶지 않은 과거의 총체이다. 다시 돌아간 고향은 여전히 지긋지긋한 자신의 흑역사들이 가득 쌓여있다.

  학수에게 전화를 건 주인공 ‘선미’(김고은)는 학수를 짝사랑하지만 그에게 차였던 역사가 있고, 보이스 피싱 용의자로 몰린 그를 구해준 원준은 학수의 시를 훔쳐가 신춘문예에 당선된 교생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학수가 짝사랑 한 미경이 동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되어 자리하고, 학수가 괴롭히던 친구 용대는 변산의 걸출한 건달이 되어 다시 만난다. 이렇게 변산이라는 작은 곳에서 다시 만난 그들은 과거사를 두고서 다시 예전처럼 얽히고설킨다.

  학수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그림자이다. 그를 만든 것 말고는 사는 데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절대로 닮고 싶지 않은 그림자이다. 게다가 그가 생각하는 중심인 서울에서 변산으로 밀려나게 한 그리고 벗어나지 못하게 한 존재 또한 그의 아버지다. 하지만 학수는 오랫동안 부정해왔던 고향과 아버지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랩 플로우 사이에 끼어있는 사투리, 닮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처럼 하나 뿐인 가족에게 매정해지는 자신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리고 저열하고 치열하게 자신을 둘러싼 과거에 몸을 뒹굴고 부딪치고 첨벙거린다.

  선미는 학수가 변산이라는 흑역사의 뻘밭에서 뒹구는 모습을 관조한다. 그녀는 학수 곁에서 과거를 짊어지고 나아간다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의 가치를 증명한다. 학생시절 학수는 자신의 고향은 폐항이고, 가난한 고향은 보여줄 것이 노을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수 덕분에 노을 마니아가 된 선미는 학수가 등을 지고 사라진 곳 변산에서 글을 쓰며 과거를 닦아 안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학수가 과거를 에둘러 피하며 반복하고 있을 때, “넌 정면을 안봐.”라며 직언을 던지며 뻘에 틀어박힌 학수의 시선을 노을로 돌린다.

  영화 속에서 노을은 변변치 않은 변산에 가장 빛나는 유산이다. 유일하게 학수와 선미만이 알아본 관계의 뻘 속의 진짜배기 진주. 진주는 조개에 이물질이 들어앉으면서 시작된다. 조개가 이물질을 품고서 시간을 보내야 가치 있는 진주가 나온다. 학수에게 있어서 그의 과거는 조개에 박혀진 이물질과도 같다. 자신이 선택한 것보다 선택하지 않은 것들로 인해 쌓여버린 것들이 더 많은 곳, 그나마 선택한 것들도 상처로 가득한 흑역사만 있는 곳. 그것을 품고 있으면서 박힌 것을 빼내려하는 그에게는 혼란과 방황만이 찾아든다. 그렇지만 온 뻘밭을 뒤지며 방황하고서 맞닥뜨린건 과거의 산물로 태어난 자기 자신이었다. 그렇게 학수는 많은 이들이 앓듯 지나가버리는 청춘의 잔여물을 품어내 복잡다난한 관계들을 덜어내고 그 안의 오롯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영화는 무 자르듯 과거를 잘라내고 미래로 도약하고 싶어 하는 청춘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생은 오디션처럼 관문을 거쳐내는 것이 아니라, 노을처럼 차츰 젖어드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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