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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ul 27. 2018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사랑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엘라이자’(샐리 호킨스)는 미 항공우주 연구 센터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수어로 밖에 대화할 수 없는 그녀지만 청소부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 이웃집 화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와 돈독한 관계를 이루며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가꾸어 나가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사랑이 찾아온다. 수조에 담겨진 채로. 물과 함께.     



 - 사랑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러시아와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미국 항공우주 연구 센터가 남미에서 잡아온 괴생명체는 자체로 미국의 수확이자 자산이었다. 엘라이자는 괴생명체가 있는 연구실을 청소하며 말하지 못하는 그에게 묘한 끌림을 느끼고 누구에게는 괴물이고 누구에게는 연구대상, 누구에게는 지켜야 하는 자산인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그렇게 둘은 말없이 눈빛과 손으로 교감한다. 

  엘라이자와 그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엘라이자일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언어를 선물한다. 그 언어에는 둘이 나눠 먹는 음식이 있고, 둘의 공간에 퍼지는 음악이 있다. 엘라이자는 그렇게 혼자였던 그에게 감각의 소통이라는 씨앗을 주고 사랑을 정성스레 키워낸다. 그리고 그녀는 해부 당할 위기에 빠진 그를 구출해내며 적극적으로 사랑을 쟁취해낸다. 그렇게 키워낸 사랑은 물의 형태로 곳곳에 산재하며 엘라이자의 마음을 대변한다. 바글바글 끓어오르기도 하고, 별처럼 차창을 채우기도 하면서 대기까지 축축하게 사랑으로 적신다. 파랗게 젖어가는 거리를 사랑을 구해낸 엘라이자는 빨간 구두를 신고 또각또각 당당하게 걸어간다. 

  극 중에서 수어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 공유하는 언어이다. 장애를 가진 엘라이자, 흑인 청소부인 젤다, 성소수자 예술가 자일스 그리고 괴물이라고 불렸던 그가 공유하는 언어가 수어이다. 하나의 언어로 묶인 그들의 연대는 소련도, 미국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다. 그리고 그 연대에는 쉽게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성공의 사다리를 거칠게 올라가는 이들에게는 없는 존재 본연에 대한 사랑이 있다. 

  보안 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자일스가 그리던 두 아이를 위해 젤리 간식을 내오는 완벽한 아내가 있는 행복한 미국 중산층 가정의 전형적인 남자다. 신은 자신(백인 남성)을 더 닮았을 거라고 말하는 그는, 사회적 주도권을 쥔 남성이 가진 폭력을 거침없이 휘두르는 사람이다. 그는 육체적, 언어적, 성적인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청록색 캐딜락을 타고 볼티모어를 벗어나 미래로 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괴생명체를 정체모를 스파이에게 빼앗긴 일로 그는 미래를 향한 사다리에서 추락했다. 엘라이자의 시간이 물과 함께 차오르고 넘쳐흐른다면, 스트릭랜드의 시간은 썩어가는 손에서 나는 악취처럼 말라가고 있다. 



  스트릭랜드는 나라의 자산을 되찾아 놓으라는 상사의 통보에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증명해야 품격 있는 사람으로 인정 받는거죠?” 그가 생각하는 품격이란 내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인정받는 것이다. 사는 지역, 타고 다니는 차, 화장실에서의 과시적이고 쓸데없는 남자의 자신감 같은 것이 그가 생각하는 품격이다. 하지만 품격은 내부에서 솟아나는 것이다. 또한 고고한 것인 동시에 시대와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젤다가 엘라이자와 ‘그녀의 그’를 위해 스트릭랜드의 위협에도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던 것도 품격의 한 모습이고, 자신이 연구하는 생명체가 지능과 감정을 가졌다는 것을 안 후 그를 구해내기 위해 국가적 사명까지 버렸던 러시아 스파이 ‘호프스테틀러 박사’(마이클 스털버그) 도 품격의 또 다른 모습이다. 품격이 져버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존재 간의 사랑이다. 

  영화 속에서 엘라이자의 사랑 ‘그’는 외형만큼이나 초인적인 존재이다. 남미 원주민들이 신처럼 받들었다는 그는 회복의 기적을 선보이기도 하고, 영화의 끝에는 스스로 부활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엘라이자와 자일스가 세 들어 살고 있는 곳이 종교영화를 틀어주는 영화관이었다는 점이나 젤다의 중간 이름이 데릴라라는 점 등 영화는 성경을 빌려 절대적인 사랑의 모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영화의 제목에서도 말하듯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의 모양은 물의 모양이다. 형태 없이 어디든 존재할 수 있는 것. 누구에게나 가능하고 존재한다면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물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사랑의 방향이 늘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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