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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May 16. 2018

트립 투 스페인

굽이굽이 황금기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 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만큼 말로 주무르기 쉬운 것은 없다. 어쩌면 개인에게 유일하게 주어진 남을 침해하지 않는 자유는 “내 인생은 이 모양이야.” 라고 자조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기, 자신들의 인생을 ‘황금기’라고 일컫는 듀오가 있다. 이탈리아와 영국을 거쳐, 이번에는 스페인으로 향하는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 황금기를 달리는 두 중년의 이야기가 담긴 영화 <트립 투 스페인>이다.     



 


- 굽이굽이 황금기

  스티브는 스페인의 레스토랑 리뷰 시리즈를 제안 받고 롭에게 전화를 건다. 두 아이의 늦깎이 아빠인 롭은 육아 스트레스를 뒤로 한 채 스티브와 함께 스페인 행 배에 몸을 싣는다. 아슬아슬하게 배에 오르는 모험을 즐기는 스티브와 그와는 정반대 성향인 롭은 여행 내내 티키타카 수다를 주고받는다. 찰진 유명인 성대모사와 그들 앞에 펼쳐진 코스 요리처럼 쉼 없이 서로의 대화의 틈바구니로 쏘는 유머들은 영화를 보는 동안 시시콜콜한 재미를 남긴다. 

  산탄데르, 그라나다, 말라가로 이어지는 여정의 대부분은 식탁 앞에서 두 남자가 떠드는 풍자와 유머의 현장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정신없이 떠들던 둘이 떨어져 있는 시간, 화면이 서로를 넘나들면서 중년의 황금기를 살고 있는 두 남자의 진짜 이야기가 스며나온다. 

  롭은 고정되어 있던 가정의 일상에서 떠나온 것에 대한 해방감으로 여행을 시작했지만, 여행이 마무리될 무렵에는 늦깎이 아빠로 살아가는 일에 대해 고민한다. 다시 되돌아갈 곳에 대한 그리움과 엷은 안도가 그를 잡고 있다. 반면, 스티브는 여행을 기점으로 순항하던 인생에 암초들을 만나게 된다. 

  스티브는 굵직한 수상경력이 있는 각본가로 활동 중이다. 그는 롭 그리고 비슷한 나이 대의 대부분의 일상에 비하면 금전적으로나 신분적으로 자유롭게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던 그의 일상이 스페인의 굽이굽이를 넘어가는 동안 묘하게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먼저 그의 직장에서 그와 오래 함께 일하던 동료가 그에게 한 마디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직장을 옮겨버린다. 스티브는 영문도 모르겠고 어쩐지 섭섭한 마음이 남지만, 그의 각본이 영화화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채로 여행을 계속해 나간다. 하지만 그의 각본에 인정받는 신인 작가가 공동작업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그는 자존심을 세우며 항변한다. 

  여행의 시작에서 스티브는 현재에 존재하고 현재를 황금기로 만들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어느 순간부터 그는 과거의 이야기를 하나 둘 꺼내 올린다. 자신의 각본가로서의 이력부터 스페인과 얽힌 옛 이야기까지. 롭은 일상은 고정되어 있지만 미래지향적인 사람이라면, 스티브는 자유롭지만 과거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과거의 향수가 녹아있고 현재의 자유가 보장한 스페인 여행에서 스티브는 “우리가 딱 인생의 황금기야”라고 외쳤고, 인생은 “과연 그럴까?”라며 그의 인생을 뒤흔들 사건을 선물한다. 

  스티브의 몇 되지 않는 관계들을 흔드는 사건을 남긴 스페인 여행의 끝에, 그는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서 있다. 그 곳에서 만난 어처구니없지만 그를 향해 달려오는 운명, 그는 그것에 몸을 싣게 될 것이라는 걸 안다. 그렇게 스티브도 롭도, 관객도 자조적이던, 만족에서 나오던 자신의 인생에 자신이 매다는 한 마디도 과연 내 몫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그저 우리는 굽어 돌아가는 인생에 순간을 겨우 인식하며 ‘좋네 마네’ 하면서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여행 끝에 선 스티브처럼 인생이 내 것 같지 않을 때, 그저 굽이치는 현재에 몸을 담가보면 어떨까. 혹시나 모를 일이다. 그 곳에 인생이 준비한 또 다른 황금기가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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