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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May 22. 2018

케이크 메이커

같은 빈자리가 서로를 당길 때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 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작은 베이커리를 운영하던 파티쉐 토마스(팀 칼코프)는 사랑하는 오렌(로이 밀러)을 교통사고로 잃고 그의 흔적을 찾아 이스라엘을 찾는다. 그렇게 찾아간 예루살렘의 한 카페에서 자신과 같은 상실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카페 주인 아나트(사라 애들러)를 만난다. 오렌을 찾아 외딴 곳에 찾아온 토마스와 오렌의 빈자리를 타인으로 채워 놓은 아나트, 한 남자를 잃은 둘은 상실이 남긴 중력으로 서서히 젖어든다.      




- 같은 빈자리가 서로를 당길 때

  이스라엘에 도착한 독일인 토마스는 완전한 이방인이다. 처음 보는 땅과 여전히 독일에 대한 엷은 배척의 감정이 남아있는 유대문화 속 토마스는 오렌의 흔적을 느리고 집요하게 쫓는다. 오렌이 놓고 간 스포츠센터의 라커 열쇠부터 시작해 그 속에서 나온 그의 빨간 수영복 그리고 오렌의 일상이었던 카페와 그 속의 아나트까지. 

아나트는 오렌의 죽음을 기점으로 폐허가 된 일상에서 살고 있다. 남편을 잃은 슬픔을 주변에서 다독이고 있지만, 혼자서 운영해 나가는 카페 일과 부모의 일은 쉽지가 않다. 비애에 찬 일상에 닿는 손길 하나 그 손끝의 온기 한 줌이 필요할 때, 토마스가 그녀에 손길을 내민다. 

  카페의 허드렛일을 돕는 걸로 아나트의 일상에 손길을 더한 토마스는 아나트와 오렌의 아들의 생일을 위해 쿠키를 굽는 일을 계기로 아나트에게 달콤한 위로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오렌이 독일에서 토마스를 만날 때, 아들을 위해 종종 사오곤 했던 토마스의 시나몬 쿠키는 아나트에게는 한 편에 자리 잡은 그리운 맛이다. 오렌이 죽으며 단절되었던 맛의 기억이 토마스로 인해 그의 빈자리를 채운다. 그렇게 그녀는 상실의 폐허에서 걸어 나오기 시작한다. 

  아나트가 오렌의 죽음을 추스르면서 정리한 남편의 물건은 토마스에게로 전해진다. 사이즈가 맞는다면 입으라고 무심결에 전달한 오렌의 물건들은 토마스의 방에 하나 둘 씩 채워진다. 아나트의 빈자리가 토마스의 맛으로 채워졌다면, 토마스의 빈자리는 오렌의 물건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외딴 곳에서 홀로 상실을 채우고 있는 그의 공허가 조금 더 컸던 탓일까. 그는 오렌이 가졌던 예루살렘에서의 일상으로까지 몸을 깊숙이 기댄다. 

  영화 속에서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는 토마스가 전하는 독일의 맛으로 아나트의 가족에게 소개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나트의 샤밧 식사 자리에 초대받는다. 이것을 기점으로 아나트와 토마스는 같은 빈자리를 공유하며 성별, 문화, 종교를 넘어 사랑을 나눈다. 둘을 묶어준 오렌이라는 공통된 상실을 맛에 새겨진 기억처럼 표면 아래에 깊숙이 묻어둔 채로. 하지만 서로의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이 잡고 있던 하나의 끈이 뭍 위로 들어나기 시작한다. 뭍 아래에 있었기에 단단했던 둘의 연결은 서로가 사랑했던 사람이 ‘오렌’이라는 그림자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산산이 부서진다. 아나트는 토마스와 오렌에 대한 배신감에 무너지고, 토마스는 오렌의 자리에서 오렌의 역할을 하며 채워나가던 예루살렘에서 도려져 나가며 더 이상 대체할 수 없는 상실에 눈물을 터뜨린다. 

  훗날 아나트는 토마스의 베이커리를 찾아간다. 사랑의 빈자리를 찾아 토마스가 예루살렘으로 떠났던 것처럼 아나트 또한 몸 하나를 끌고 떠난 사람을 보기 위해 베를린으로 왔다. 먼 발치에서 같은 옷을 입고 예루살렘에서의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보내는 토마스를 보며 아나트는 엷은 미소를 띤다. 그 속에는 잠시나마 삶의 한 부분이었던 사람이 무너지지 않고 일상의 관성 속에 몸을 맡겨 살아가는 광경에 대한 안도가 담겨있다. 이제 아나트는 토마스를 배신으로 상처로도 기억하지 않는다. 토마스는 그녀에게 그저 자기와 너무 닮았던 사람, 같은 상실을 나눠진 소중했던 한 사람으로 기억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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