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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May 30. 2018

스탠바이, 웬디

별이 우주를 건너는 방법

  가족과 떨어져 재활센터에서 매일 정해진 룰에 맞춰 살아가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웬디(다코타 패닝)는 TV시리즈 ‘스타트랙’의 열렬한 팬이다. ‘스타트랙’ 시나리오 공모를 위해 하루하루 시간을 내어 427페이지에 달하는 시나리오를 완성한 웬디. 이제 주말이 오기 전에 기한에 맞춰 우편으로 시나리오를 보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언니에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호소하던 중 발작을 일으키며 하루를 날려버리게 되고 우편으로는 도저히 시나리오가 제 시간에 도착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진다. 세워 두었던 계획이 온통 틀어져버린 상황에서 웬디는 다음 날 아침 해가 뜨자마자 LA로 향하는 ‘용감한 걸음’ 뗀다. 



     

- 별이 우주를 건너는 방법

  웬디의 세상은 ‘규칙’들로 가득하다. 자신이 세운 규칙들 그리고 그 이전에 재활센터를 비롯한 타인들이 세워준 규칙들이 웬디의 일상을 줄 세운다. 웬디는 직접 시나리오를 가지고 LA로 향한 그날 아침, ‘마켓 가’를 건너는 것을 시작으로 ‘보호’라는 이름으로 세워 놓은 규칙들을 넘어간다. 그녀 자신의 힘으로. 

  하지만 같은 궤도의 일상을 돌던 웬디에게 있어서 세상은 소용돌이치는 우주와도 같다. 언제 어디서 날카로운 운석이 혹은 그녀를 빨아들일 블랙홀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여정의 시작에서부터 예감했던 일련의 위기가 차례로 닥친다. 돈과 아이팟을 도둑맞고, 동네 슈퍼에서 사기를 당할 뻔한 그녀를 구해준 것은 작지만 강단 있는 할머니였다. 웬디의 여정에는 그녀와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조력자가 되어준다. 더 이상 가족들 사이에 낄 자리가 없어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내는 할머니는 재활센터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는 웬디와 교감하고, ‘스타트랙’의 외계어로 웬디와 소통하며 소소한 웃음을 준 경찰은 같은 TV프로그램을 좋아하는 덕심을 공유한다. 

  한편, 웬디가 사라지자 웬디를 중심으로 한 재활센터와 하나 뿐인 가족인 언니의 일상은 크게 요동친다. 그들은 웬디를 찾기 위해 그녀를 따라 LA를 향한 먼 길에 나섰고, 그 길에서 웬디가 그들에게 있어서 어떤 위치의 사람이었는지 또 그녀가 그들이 정해준 궤도 밖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해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웬디의 일탈로 인해서 웬디를 지탱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관계가 역전되며 그들의 관계는 그들 사이에서도 다시 맞춰진다. 

  웬디를 LA까지 오게 한 것은 ‘스타트랙’에 대한 애정 하나만이 아니다. 그녀를 움직인 진정한 동력은 그녀의 조카 ‘루비’이다. 언니가 찾아올 때마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작고 소중한 조카와 함께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그녀를 궤도 밖 우주 먼 곳으로 이끌었다. 

별이 우주를 건너는 방법은 다를 게 없다. 움직이면 된다. 혼자서 동력을 만들어내던, 돌던 궤도에서 쏘아지던 다른 중력이 잡아당기던 힘이 있다면 그 별은 우주를 가로지를 수 있다. 작은 한 걸음이지만 전진 또 전진하는 웬디는 더딜지라도 충분히 우주를 건너갈 수 있는 작은 빛이다. 그리고 그 빛이 우주를 떠돌지 않게 사랑이라는 중력으로 그녀를 당기는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에 웬디는 끝내 가족이라는 포근한 땅에 기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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