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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Jun 18. 2018

허스토리

그녀들의 손으로 새긴 역사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 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의 기간 동안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고가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피해 사실에 대한 재판이 벌어졌다. ‘관부 재판’이라고 불리는 이 재판에는 3명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7명의 근로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 그리고 이들 곁에서 몸으로 뛰고 목이 부르트도록 울음 섞인 아픔을 외친 여성 사업가 ‘문정숙’(김희애)이 있다. 일본에게서 ‘일부 승소’라는 값진 승리를 얻어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허스토리>는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인 위안부, 정신대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역사를 새긴 ‘그녀들’의 연대로 엮어낸다.      



- 그녀들의 손으로 새긴 역사

  “내가 잘했다고 왜 말을 못하나!” 부산 지역에서 여성 경제연합회 회장을 맞고 있는 문정숙은 겸손을 차리는 친구에게 이렇게 외친다. 혼자서 번듯한 여행사를 운영해나가고 있는 그녀는 학교를 관두겠다며 속을 썩이는 딸내미 외에는 세상에 거칠 것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부하 직원이 자신 몰래 알선해왔던 ‘기생관광’이 문제가 되면서 그녀의 여행사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는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시작된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백에 그녀는 지방에도 분명히 피해자가 있을 것이라며 영업을 쉬고 있는 여행사 사무실 한 켠에 ‘위안부(정신대)피해 신고센터’를 차린다. 여행자 이미지 쇄신과 동시에 그간 여성 경제연합회에서 지속적으로 해왔던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연장으로 ‘좋은 뜻’으로 시작한 일. 하지만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는 일은 안으로나 밖으로나 쉽지가 않다. 

  밖에서는 계속해서 돌이 날아든다. ‘돈 받으려고 남사스러운 일을 이제야 밝힌다’며 말로 때리고, 손가락질한다. 한편, 안에서는 겨우 모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제대로 가 닿기 위한 정숙의 분투가 이어진다. 몸으로 뛰고, 돈을 대고, 재판을 꾸리는 일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니 나이에 삐끗하면 인생 끝장이야.”라며 딸에게 엄포를 놓은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흉터를 건드리는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화는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을 등에 지고 나아가는 끈끈한 여성들의 연대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연대 사이에는 덜컹거리지만 끈질기게 다가가 피해자 할머니들의 마음에 가 닿는 문정숙이 있다. 피해자들을 향한 정의감으로 가해자들을 향해 분노하기는 쉬운 일이다. 하지만 곁에서 아픈 것을 나눠지고 함께 울어주는 데에는 이해를 위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영화가 오랜 시간을 들여 정숙이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인간을 향한 진정한 공감과 사랑이다. 

  영화 <허스토리>는 위안부와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승소를 위한 6년간의 과정을 줄기로 두고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로 가지를 뻗어 나간다. 위안부로 들어가 살아남기 위해 관리자 역할을 자처했던 피해자, 자신은 근로정신대이지 위안부가 아니라며 선을 그었던 피해자 할머니, 서툴지만 마음을 다해 정숙과 할머니들 곁을 지킨 말단 여직원, 엇나간 줄 알았지만 자신의 인생을 걸어 나가는 정숙의 딸까지. 과거부터 1990년대 그리고 영화를 보는 현재를 잇는 여성들의 연대는 피해자들의 삶으로 현현하게 증명되고 있는 역사를 기반으로 피해자들에게 공감하고 분노하고 눈물 흘리는 우리를 인류애라는 이름으로 묶어낸다. 

  재판정에 선 ‘배정길’할머니(김해숙)는 이렇게 말한다. “사과해라, 그래야 짐승이 아니고 인간이 된다. 기회를 줄게, 인간이 되라.” 살아 있음으로 증명하고 직접 찾아가 사과할 기회를 주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인간됨’을 바라는 관용은 오늘이 어제가 되는 역사 속에서 그 역사를 어깨에 진 채 살아가는 모두에게 인간으로서 가지는 숭고한 도리는 무엇인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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