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즈옹 Jun 25. 2018

여중생 A

떨어지긴 해도, 죽게 두진 않을거야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 시사회를 통해 관람한 후기입니다. 또한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중생 ‘미래’(김환희)는 그저 평범해지고 싶다. 학교에서는 지독하게 왕따를 당하고 있고, 집으로 돌아오면 괴물 같은 아빠의 가정폭력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미래가 발을 디딜 곳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모니터 속 게임세계 ‘원더링 월드’와 그녀가 써내려가는 소설 속에 자리를 튼다. 

  평소처럼 게임세계에 접속한 미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소식을 듣는다. ‘원더링 월드’의 서비스가 종료된다는 사실이다. 씁쓸한 마음으로 길드원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무렵, 미래에게 잘 나가는 친구 ‘백합’(정다빈)이 소설을 매개로 불쑥 친구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미래는 자신이 통제하고 있던 세계 안에서 ‘현실’이라는 세계로 이동한다.  


    

- 떨어지긴 해도, 죽게 두진 않을거야

  미래는 자신의 손으로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등에 지고 자신이 직조할 수 있는 가상으로 도망친 아이다. 게임 속 세계 ‘원더링 월드’가 그랬고, 그녀가 쓰고 있는 소설도 그녀가 바라는 현실의 반영이다. 그런데, 게임 속 세계가 서비스 종료라는 외풍에 무너지고, 그녀와 소설의 관계에도 백합이라는 외부인이 들어오면서 미래는 자신을 투영한 ‘안’의 세계에서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게 된다. 

  숨어들었던 안식처가 무너져 밖으로 나온 미래에게 세상은 여전히 가혹하고 외로운 곳이다. 그래서 그녀는 유일하게 믿을만한 관계였던 게임 속 ‘희나(재희)’를 찾아간다. 현실에서도 인형 탈로 자신을 가렸던 희나가 탈을 벗고 미래를 마주한 순간, 둘은 진정으로 현실을 떠나기 위한 여정에 오른다. 자살을 전제한 버킷리스트와 그것을 실현해 나가는 미래와 ‘재희’(김준면)의 여정은 슬프기만 하진 않다. 미래가 바랬던 10대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아기자기한 감정과 사건들이 스며있어 전형적인 청소년 드라마 느낌으로 가볍게 둘의 이야기가 흐른다. 이는 영화 초반 미래의 추락장면으로 무겁게 주목시켰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재희와의 유대가 미래에게도 영화에게도 분위기를 달리하는 전환점이 된다. 

  미래와 백합을 둘러싼 순환하는 왕따의 고리의 이야기도 어디서 많이 본 흐름에 있지만, 미래가 가장 의지했던 재희가 속죄하는 가해자였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미래는 양면이 존재하는 세계를 인식한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움켜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도 차츰 인식해 나간다. 상처가 아물 듯 성장은 어긋난 관계들을 다시 엮기도 한다. 

  미래는 자신의 소설 속 아기 새에게 A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름이 없어 울고 있는 아기 새에게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속할 곳이 없었던 인물에게 관계를 지어주는 일이다. 그렇게 자신을 A라고 불러줄 사람이 있다면, 아기 새는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 미래는 추락하는 아기 새 이야기의 결말을 묻는 백합에게 이렇게 말한다. “떨어지긴 해도, 죽게 놔두진 않을거야.” 미래가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인식하는 것을 보여주는 이 대사는 지금 추락하고 있는 자신이지만, 그 상처들에 나를 방치해두지 않겠다는 작은 의지이다. 그리고 그 의지의 시작에는 자신을 A라고 불러줄 한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이 사람들로 엮여나가는 과정에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서로 보여주며 서로를 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어쩌면 현재를 ‘살아남아’미래로 가는 일이란 그렇게나 보편적이면서도 힘들 일이지 않았을까.  영화 <여중생A>는 그런 우리들에게 ‘슬플 땐 울어도 괜찮아’라는 진솔하면서 담담한 위로를 던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허스토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