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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즈옹 Apr 06. 2017

히든 피겨스

지금, 우리가 듣고 싶은 이야기


- 지금, 우리가 듣고 싶은

 영화를 한 줄로 줄여보자면 ‘능력 있는’ ‘흑인 여성들이’ ‘차별에’ ‘당당히 맞서는’ ‘성공담’ 정도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문장 안에 있는 단어들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 답을 필요로 하는 단어들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그리고 있는 미국에서는, 다시 인종차별에 관련된 마찰들이 일어나고 있고, 여성 차별에 대한 문제는 특히 한국에서 최근 사이 가장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인재의 성공을 막는 제도‘ 라는 부분에서도 우리가 공감하고 그녀들의 성공으로 해소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이 지점에서 영화 밖 현실의 씁쓸한 뒷맛이 날지도 모른다.

 <히든 피겨스>가 다룬 소재는 어디에 붙여도 공감할 수 있는 소재들이다. 영화는 비록 성공담의 뻔한 해피엔딩을 향하고 있지만, 영화 끝에 배우들의 얼굴 위로 실존인물의 얼굴이 겹쳐질 때, 영화의 메시지가 그 뻔한 해피엔딩을 뚫고서 전해진다.      




- 다층적인 차별의 겹

 주인공들은 흑인 여성들로 인종차별이 있던 시절, 소수 중의 소수자이다. 그렇기에 차별의 겹이 보다 다층적으로 그녀들을 옥죄인다. 개인적으로 차별에 숨 막혔던 장면들은 흑인 내, 여성 내 차별을 당하는 장면들이었다.

 메리는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되고자 한다. 그녀를 막아서는 것은 흑인들은 받지 않는 학교에서 수업을 이수해야만 하는 NASA 내의 규정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남편 또한 그녀를 막아선다. 남편은 남성들의 정치적 투쟁은 숭고하지만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위한 요청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메리는 이 두 겹의 차별을 뚫고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룬 최초의 여성이 되며, 남편도 이에 감동하여 사과를 구한다. 캐서린 또한 존슨 대령의 차별적 발언에 대해 똑부러진 한마디로 존슨 대령의 갇힌 시선을 깨운다. 흑인 내의 남녀 차별은 인종차별이라는 같은 차별 아래 있는 사람들의 동질감, 그리고 사랑을 바탕으로 한 이해로 따뜻한 결말을 맞는다.

 반면, 백인여성이 흑인여성에게 주는 차별은 보다 중층적이며, 결말 또한 씁쓸하다. 이 차별을 주도하는 여성으로 미첼이 등장한다. 미첼이 서있는 자리는 어쩌면 영화의 주인공들의 처지보다도 불안하다. 영화에서 그리는 NASA는 백인 남성이 주축이 되어 끌어나가는 집단이다. 캐서린이 몸담게 되는 부서에 여성비서 하나를 제외하고서 모두 남성이었다는 점이나, 미첼이 근무하는 곳에는 여성 밖에 근무하지 않는 다는 점, 그리고 회의에 참석할 수 없는 기준이 ‘여성’이라는 점에서 여성차별이 만연한 공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첼은 성 차별을 받으며 자란 사람인 동시에, 인종 차별에서는 우위에 있는 사람이다. 직업 또한 관리자로서 규율 안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고, 규율을 수호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또한 세 주인공들은 능력을 바탕으로 백인 여성의 자리를 위협한다. 이런 끼어있는 상황에서 미첼이라는 인물이 흑인, 여성을 다루는 모습은 백인 남성들의 자세보다 더 엄격하고 한편으로는 교활하다.

 미첼과 직접적인 갈등을 이루는 인물은 도로시이다. 도로시는 주임의 일을 하고 있으니 주임의 자리를 요구하지만, 미첼은 그 사안이 불가능한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지 조차 않는다. 자신이 신경 쓸 사안이 아니라는, 이 매정한 처사야 말로 그녀가 도로시와 자신을 가를 수 있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도로시를 중심으로 메리, 캐서린에게도 규율을 필두로 한 차별을 한다. 후에 도로시가 IBM의 관리직 주임을 맡게 되고서는 둘의 관계가 역전되었을 때, 미첼은 “악의는 없었다.”고 손을 내밀지만, 도로시는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겠죠.“ 라며 거절한다. 개인적으로 이 ”악의는 없었다.“는 말이 그녀가 체제 안에서 끼인 존재로서 규율의 수호라는 이름으로 차별을 했었다는 일을 인식하고 했다는 점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도로시가 그녀의 사과를 거절했던 것 같다.

 이렇듯 인종과 성 차별, 두 종류의 차별 아래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흑인 여성들은 충분히 신파적이며 눈물을 예상할 수 있는 소재이다. 하지만 영화는 능력 있고, 당당한 그녀들의 모습과 직관적인 구성들을 통해서 차별을 이겨내는 과정을 빠르고 유쾌하게 그려 낸다.



     


- 반복과 직관적인 스토리가 주는 산뜻함

 영화는 캐서린, 메리, 도로시 세 명의 인물을 동시에 그리고 있다. 각자 다른 당면 과제들을 문제에서 해결을 향해 가는 과정으로 직관적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극의 속도를 올려서 유쾌한 에너지와 동시에 해피엔딩으로 향해 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세 인물들이 각자가 맡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터치하거나 엮이지 않도록 함으로써 캐릭터들의 독립적인 매력과 유대에 있어서의 신파적인 장면들을 없애 산뜻한 성공담이 될 수 있었다.

 직관적인 스토리와 더불어서 반복을 사용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지만, 전과는 다른 현재를 통해서 사건의 시작, 해결을 보여준다. 첫 장면부터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캐서린의 어린 시절에 이어져 현재의 세 인물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자동차’라는 매개로 장면을 연결한다. 수학 신동으로서 미래를 기대하며 자동차를 타고 나아가는 장면과 연결된 장면은 푹 퍼진 차에 앉은 캐서린이다. 차별로 인해서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버린 캐서린의 상태를 보여준다. 이어서 “1961년에 흑인 여성 3명이 경찰을 추격하는” 사건과 장면이 나오면서, 영화 전체를 암시하면서 주요 메시지를 초반부터 강렬하게 보여준다. 영화 후반부에는 캐서린이 매일 내달렸던 800m의 길을 백인 남성이 헉헉 대면서 ‘캐서린을 모시러’가는 장면을 반복하며 흑인 여성의 승리를 동일 장면의 변주를 통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반복을 통한 변주는 세 명의 인물들의 사건을 빠르게 진행하는 데 있어서, 쉽게 따라갈 수 있게 도와주면서 직관적인 제시를 통해서 바로바로 통쾌함을 느낄 수 있게 한다.      




- 차별 너머에 있던 것

 영화 안에는 차별 너머에서 불변의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국가이다. 그녀들이 차별을 깰 수 있었던 것은 NASA에서 일을 하며, 국가가 필요한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차별을 깨는 도구로서의 능력은 참 멋있는 도구이긴 하지만, 차별하는 자들이 차별을 인식하는 데 있어서 능력이 선행했다는 점은 아쉬웠다.

 차별을 존속하게 했던 미국이 옛 국가주의를 복귀시키면서 과거 차별에 대한 이미지 세탁을 이룬 것 같기도 했다. 영화를 통해서 현재 다시 일어나고 있는 인종 간 차별을 떠올릴 때, 그 해결책으로서 제시된 것이 개인의 능력과 국가주의였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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