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란 단어를 들으면 곧바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떡진 머리, 남루한 행색, 멀리서부터 풍기는 악취, 거리 한복판에 마련된 누덕진 잠자리 등.. 하지만 실제 홈리스들 중엔 어딘가의 도움을 받아 보호소나 임시 주택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이렇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문자 그대로의 ‘홈리스’와 어디라도 머물 곳이 있는 홈리스는 이들 사이에서도 구분된다. 우리가 길 한가운데서 물품을 나누고 있으면 여기저기서 홈리스 피플이 모여든다. 각자 본인에게 필요한 물건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 누군가 옆 사람을 가리키며 외친다. ‘얘는 이 물건들 정말 필요해. 얘는 진짜 homeless야!’ 어디든 돌아갈 곳이 있는 이들과는 달리, 매일 하루 24시간을 거리 위에서 지내는 사람들. 밤이 깊어지면 사람들의 시선과 도시의 위협을 피해 잘 곳을 찾는 이들. 이런 사람들을 그들은 ‘real homeless’라 불렀다.
날씨 좋은 어느 날, 휠체어에 앉은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의 행색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홈리스의 모습이었다. 떡져 있는 머리, 어깨에 힘 없이 걸린 낡은 원피스, 휠체어에 바리바리 걸린 짐들, 그리고 보기만도 아플 만큼 부은 코끼리 다리. 조심스럽게 다가갔을 때 그녀의 반응은 냉담했다. 먹을 것이나 물이 필요하냐고 물어도 필요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포기하지 않고 한번 더 물었다. 이번엔 여성용 후디를 꺼내면서였다. 보라색의 후디를 보여주자 반응을 보인다. 맘에 들었는지 곧장 포장을 뜯어 낡은 원피스 위에 후디를 입어보는 여자. 그녀가 작게나마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녀의 이름은 Sparrow(참새). 본명은 아니다. 우리에게 진짜 이름을 알려주는 대신 그녀는 참새 소리를 짹짹 흉내 내며 스스로에게 붙인 닉네임을 일러줬다. 그는 실제로도 참새처럼 작고 귀여운 모습이었다. 길거리 생활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한 번은 쉘터에 들어가게 됐는데 휠체어를 타야 하는 그의 사정에 맞지 않게 엘리베이터 없이 4층을 올라야 하는 곳이었다. 그녀는 어젯밤에도 이 길거리 위에 휠체어를 세워두고 잠을 청했다. 홈리스 피플의 세계에서도 여성들은 안전에 더 취약하다. Sparrow처럼 거동이 불편한 경우는 더더욱이다. 그는 우리가 잔뜩 쥐어준 물건들을 가방에 넣어 본인의 앞 무릎 위에 꼭 올려두었다. 가방을 뒤에 걸어주느냐고 물었지만 그렇게 했다간 또 도둑맞을 것이라며 한사코 거절한다. 참새처럼 작고 여린 몸으로 견디기엔 그에게 이 도시가 너무 험했다. 그녀는 'real homeless'였다.
세상이 얼마나 그녀에게 가혹했던지, 그는 우리와 대화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 '세상에 신은 없다'며 울었다. 신이 있었다면 자기를 이렇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라고. 그는 자신이 8번이나 죽었다고 했다. 어떤 삶을 겪은 건지 몰라도, 혼수상태에 빠졌었단 이야기를 반복하는 걸로 봐선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듯했다. 아픈 게 몸이었든 마음이었든 그녀는 벌써 8번이나 죽었거나, 8번이나 죽고 싶었던 듯 보였다. 그는 자신의 퉁퉁 부은 발도 보여줬다. 휠체어에 있는 발 받침대에 기대 쉬지도 못할 만큼 아픈 발. 흉터 자국이 심하게 남은 채 무겁게 덩어리 진 발. 보기만 해도 찌릿찌릿 그 고통이 전해지는 듯했다. 묵직하게 덩어리 진 발처럼, 그녀의 눈물도 둥글둥글 무겁게 덩어리 져 흘렀다.
샌드위치를 사다 주기로 마음먹었다. 가장 좋아하는 메뉴를 물었더니, 스테이크 앤 치즈라고 했다. 요청대로 아보카도까지 추가하고, 음료는 진저에일로 했다. ‘You have good taste!’ 내 최애 탄산음료인 진저에일을 고르는 것이 반가워 나도 모르게 던진 말에 그녀는 활짝 웃었다. 너도 진저에일을 좋아하냐며, 친구와 겹치는 취향을 찾았을 때 기뻐하는 소녀처럼 그랬다. 그녀에게 10분만 여기에서 기다리면 샌드위치를 사 오겠다고 한 후 허겁지겁 샌드위치 가게로 뛰었다. 둘 다 진저에일을 좋아한다며 호들갑 피웠는데 하필 샌드위치 가게에 그것만 없다. 저런, 귀찮지만 진저에일 사러 편의점에도 들른다. 우리의 동맹을 저버릴 수는 없다.
음식을 품에 안고 달려가니, 여전히 그녀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좀 전까지 없던 뉴욕의 한 아웃리치 팀도 함께였다. 안 그래도 뉴욕시 아웃리치 팀에 그녀에 대해 리포트를 하려던 참에 그들을 만나 반가웠다. 우리가 샌드위치를 사러 간 사이 그녀를 발견한 그들은 자신들과 동행하여 간단한 건강 체크를 받을 것을 권하고 있었다. Sparrow는 동행을 망설이는 듯 보였다. 실제로 홈리스 서비스의 도움을 받아 쉘터 등에 들어가도 안 좋은 경험으로 자발적으로 다시 길에 나오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녀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었을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를 이대로 길에 둘 순 없었다. 샌드위치를 건넸다. ‘네가 말한 아보카도도 추가했고, 진저에일도 사 왔어!’라며. 그녀는 활짝 웃으며 나를 꼭 안았다.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한 후 그는 샌드위치를 바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아웃리치 팀은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괜히 동지애 같은 것도 느껴졌다. 우리는 다 함께 그녀를 설득했다. 이들과 함께 가서 건강 체크를 받고, 발을 치료할 수 있는지 살펴보라고 했다. 아웃리치 팀이 겪는 어려운 점 중 하나는, 홈리스 당사자가 도움을 거절하면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거다. 가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데려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한동안 그녀를 설득하다 우리는 자리를 뜨기로 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한 명을 둘러싸고 이야기하는 걸 많은 이들이 부담스러워하기도 하고, 그녀에게 지나친 압박을 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그녀에게 먼저 가겠다고 인사했다. 좀 전까지 세상에 신은 없다고 울던 그녀는 ‘God bless you.’라며, 떠나는 우리에게 신의 축복을 빌어줬다.
얼마 후, 그날 만난 아웃리치 팀이 소속된 단체의 직원들을 만났다. 이전 글에 등장한 생 루이 아저씨를 찾기 위해서였다. 문득 Sparrow 생각이 났다. 혹시 Sparrow라는 여자를 아는지, 얼마 전 너희 팀이 그녀와 함께 있는 걸 봤는데 그가 결국 병원에 갔는지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인상착의를 설명하자 처음엔 고개를 갸우뚱하던 한 직원이 ‘오, Caitlin 말하는 거야?’했다. 그녀의 진짜 이름은 Caitlin이었던 것이다. 다행히 그녀는 그들과 함께 병원에 갔다고 했다. 이런 소식을 들으니 참 기뻤다. 쌀쌀해지는 날씨에 원피스 한 장만 걸치고 있던 그가 여전히 길에서 잠을 청할까 걱정하던 참이었으니. 이제 그녀가 쉴 곳을 제공받고, 어쩌면 아픈 발도 치료받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겼다. 발이 무거운 그녀가 자신을 Sparrow라 부르던 이유는 참새처럼 훨훨 날아다니고 싶어서였다. 그가 퉁퉁 부은 발을 치료하고 소원대로 훨훨 가벼워지는 모습을 상상했다. 신이 없다고 울던 그녀가 우리에게 신의 축복을 빌어 주었듯, 그녀에게도 신의 축복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