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의 신발을 신어보세요

by 해니

뉴욕에서 홈리스를 만나러 다닌다고 하면 다수의 사람들은 대단하단 반응이다. 무섭고 위험하지 않냐는 말도 수도 없이 들었다. 당연하다. 길거리를 지나며 마주치는 홈리스 중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이들이 많은 게 사실이니까. 그럴 때 우리의 대답은 한결같다. 대부분의 경우는 막상 다가가보면 위협적이지 않고, 정말 위험할 것 같을 땐 알아서 잘 피한다고. 하지만 확률상 모두가 우리를 웰컴 하진 않고 더러 당황스러운 일이 생기는 게 이 일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은 우리가 겪어 본 크고 작은 실패들을 공유해보려 한다. 매번 따뜻한 내용만 담기엔 또 그 현실이 마냥 아름답기만 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뉴욕의 홈리스들은 취향이 확고하고 은근히 까다롭다. 도와주러 왔다고 내가 뭐라도 된 듯 착각하면 큰 오산이다. 우리가 나눠주는 음식이나 물품을 맘에 안 든다고 하거나 보지도 않고 거절하는 경우는 흔하다.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하면 인상을 찌푸리며 가라고 소리치거나 면전에 대고 비웃기도 한다. 그저 빵과 물이 필요하냐고 물었을 뿐인데 엄청 큰 음료컵을 내던지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뺀 적도 있다. 궤변가들에게 붙잡혀 2-30분을 길거리에서 앞뒤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 경우도 가끔 있다. 대뜸 볼뽀뽀나 어깨동무 등 갑작스러운 스킨십을 하려는 사람들도 있다. 좋은 마음으로 다가갔다가 이런 일이 생기면 마음이 쪼그라들고 표정이 굳어버리기도 한다. 여하튼 이런저런 이유로 더 이상 대화를 못하고 금방 물러나는 모먼트들은 매번 있다. 몇 년째 그들을 만나왔지만 익숙지 못한 상황을 마주하면 대처가 난감하고, 우리를 부담스럽게 느끼는 듯한 사람들을 보면 더 다가가야 할지 물러서야 할지 망설여지기도 한다.


선을 넘는 게 필요할까 선을 넘지 않는 게 중요할까. 이 부분에 대해서도 판단이 다르다. 어떤 이에겐 선을 넘지 않고 바운더리를 지켜주는 게, 또 다른 이에겐 아슬아슬한 선을 넘어 한 발짝 다가서는 게 더 필요한 방법일 수도. 늘 그 사이를 넘나 들며 고민하지만 어디에도 정답은 없는 듯하다. 본능의 영역인 것도 같다. 생각해 보면 사람 만나는 일이 원래부터 그렇기도 했다. 세상 어떤 인간관계라고 내 바람만큼 쉬웠던 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 우리도 봉사자로서 그들과 매번 부딪히며, 어떤 태도로 각기 다른 개인들을 대해야 하는지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다.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가 있어 공유해볼까 한다. 직접 겪은 이야기는 아니고 내가 이 팀에 들어오기 전에 생긴 에피소드다. 제임스라는 아저씨가 있었다. 아저씨와 할아버지의 중간 정도 되었던 그는 우리 팀을 늘 반겨주는 캐릭터.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해 주고, 작은 나눔에도 고마움을 표시하는 분이었다. 그의 생일을 알게 된 팀원들이 생일 당일 서프라이즈로 찾아가 생일케이크를 선물했고, 그는 너무 기뻐하고 고마워했다. 그 이후 관계가 더욱 좋아져 그를 더 챙기고 싶었던 팀원들은 연말 파티를 열어 제임스를 초대했다. 그런데 이 파티가 화근이었다. 따뜻한 공간에서 맛있는 음식과 선물을 준비해 제임스를 맞이한 팀원들. 처음엔 그도 준비된 음식을 먹으며 잘 있는 듯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본인에게만 쏠린 관심이 부담스러워인지, 중간에 오갔던 대화가 불편했던 건지,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고 이내 크게 소리치고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그에게도 팀원들에게도 상처로 남은 밤이었다.


영어에 'put yourself in someone's shoes'라는 표현이 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뜻. 이 표현을 직역하자면 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보라는 재밌는 뜻이다. 보통의 우리는 편하고 깨끗한, 각자의 취향을 담은 신발을 신는다. 때에 맞춰 다른 신발을 꺼내 신기도 한다. 홈리스들의 신발은 어떨까. 그들의 신발은 대부분 해지고 때가 타 언제 어디서 구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발이 퉁퉁 부어 아예 신발이란 것을 신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파티 날, 우리는 진짜 제임스의 신발을 신어봤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살을 에는 추위의 겨울 길거리를 헤매다 들어온, 공기는 훈훈하게 데워져 있고 노란빛의 따뜻한 조명이 퍼져있는 공간. 맛있게 차려진 음식들과 선물, 그리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 밤이 늦으면 모두는 따뜻한 자기만의 방으로 돌아가겠지만 나만은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뉴욕의 가혹한 추위를 끝내 막아주지 못하는 해진 신발을 신고 다시 현실로 걸어가야 한다면. 어느 날 갑자기 마련된 그 잠깐의 시간이 과연 그가 필요로 하던 고마운 시간이었을까. 나라면, 우리라면 그 시간을 마냥 웃으며 고맙게 받을 수 있었을까.


수많은 홈리스 피플을 만나며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필요보다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것과 그들이 받아 마땅한 것들에만 집중해 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바닐라맛 패스츄리를 싫어하고 사과맛 패스츄리만 받아가는 사람을 만난 후 참 쉽게도 ‘배고플 텐데 맛이 그렇게 중요한가.’ 생각해 버렸다. 바로 앞에 있는 피자집을 두고 치킨이 먹고 싶다는 사람을 만나 ‘치킨 사러 가기 귀찮은데 그냥 피자 먹지.’ 속으로 투덜댄 적도 있다. 도움이 꼭 필요해 보이는데 굳은 표정으로 끝까지 도움을 거절하는 사람을 만나면 ‘뭐가 그렇게 문제야.’하며 비틀린 마음이 올라올 때도 있었다.


다시 한번 그들의 신을 신어 본다. 내가 오늘 만난 그 사람이라면?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다가와 모두 밍밍한 맛의 패스츄리만 쥐어주고 떠난다면. 밥을 사다 주겠다는 사람들은 흔치 않아 이 기회에 먹고 싶었던 치킨을 꼭 먹고 싶은 거라면. 소중한 물건들을 잘 보관해 둔 가방을 도둑맞아 오늘은 누구와도 대화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라면? 도움 받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와 같이 그들도 아침과 저녁의 먹고 싶은 음식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의 기분이 다른 그저 사람일 뿐이니까. 매번 예상치 못한 반응의 사람들을 만나고 도대체 '어떻게'가 맞는 건지 스스로 의심과 확신을 넘나들지만, 이런 경험들을 통해 차곡차곡 적립된 '봉사자로서 갖춰야 할 명백한 마음가짐'은 생겼다. ‘도와준다’는 대의 아래 상대방이 내 모든 의도를 고맙게 받아들일 것이라 전제하지 말 것. 개인의 취향과 선택을 존중할 것.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고, 내가 그보다 조금이라도 잘 알고 잘났다는 말도 안 되는 착각을 경계할 것. 더 주고 싶은 마음에 늘 마음이 앞서지만 그전에 꼭 그들의 신발을 신어볼 것(받는 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것)!

keyword
이전 06화잊혀져 가는 이름을 불러주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