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생 루이 — 잃어버린 여권을 찾아서 1

by 해니

우리의 주 활동지 중 하나인 펜 스테이션. 출발지점인 포트 오쏘리티역에서 8th Ave를 따라 쭉 내려오다 보면 34번가부터 시작하는 역 입구가 나온다. 하루에 수백 대씩 다양한 목적지를 둔 기차가 출발하는 거대한 스테이션. 지하철 라인도 여러 개라 유동인구가 많다. 최근 펜스테이션이 새 단장을 하며 지저분했던 외관과 주변 길거리가 정돈됐다. 홈리스들이 궂은 날씨를 피해 종종 몸을 피하던 역 내부 한편도 깔끔하게 새 옷을 입고 새로운 상점들을 맞아들였다. 깨끗해진 만큼 단속이 심해진 탓일까, 홈리스 피플을 종종 볼 수 있던 그곳에서 이제는 예전만큼 그들을 많이 만나볼 수 없게 됐다. 개인 일정으로 펜 스테이션을 지날 때마다 쾌적하고 좋아졌다-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하곤 했다.


날이 더운 어느 날 처음 만난 생 루이 아저씨. 생 루이 씨는 33번가 펜스테이션 입구 앞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말끔한 워크 재킷을 입고 큰 배낭을 몇 개 지닌 그를 한눈에 홈리스로 알아보긴 힘들었다. 긴가민가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가 음식을 권하고 나서야 그가 홈리스 상태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아주 기본적인 대화는 가능했지만 그마저도 우리가 서로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대신 그는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를 잘했다. 홈리스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여유롭고 밝은 표정에 태도까지 젠틀했던 그는 ‘길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너희 같은 사람들 덕에 매일 배를 채우고 필요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며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다음 달 정확히 같은 장소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는 그를 다시 만났다. 멀리서 우리를 알아보자마자 그는 반가운 얼굴을 보였다. 'Hey, my friends!' 하면서 벌떡 일어나 한 명 한 명과 포옹으로 인사를 나눴다. 한 달이나 지났는데 그의 모습이 지난달과 전혀 다르지 않아 놀랐다. 어디서 밥을 먹고 씻고 생활하고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그는 지난달과 똑같이 정돈된 모습이었다. 홈리스 피플들에게 흔히 나는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 날은 좀 더 깊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왔다고 했다. 이름은 생 루이. 프랑스식 발음의 이름을 알아듣기 어려워 한참을 헤맸다. 미국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몰라도, 얼마 전 경찰에 여권과 휴대전화를 모두 빼앗겼다고 했다. 필요한 모든 것을 잃은 상태라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하지도 못하는 상황인 듯 보였다. 생 루이 씨 같은 경우가 홈리스 피플 중에서도 가장 구제의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다. 미국 태생이 아니며 외국 신분증마저 모두 잃어버린 상태. 자신을 증명할 ID가 하나도 없으니 미국 출생자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홈리스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외국인을 도와주는 단체를 만나도 그 절차가 훨씬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고국땅이 아닌 곳에서 잃어버린 ID를 다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단계만 해도 보통 수개월이 걸린다.


사정을 알게 되니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다음 달에 이곳에 오면 또 웃고 있는 그를 만나겠지만, 그가 처한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게 뻔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시도한 일은 NYC311에 리포트하기. 지난 글에서 작성했던 것처럼 NYC311에 신고하면 수시간 이내로 아웃리치팀이 해당 홈리스를 찾으러 간다. 그리고 리포트를 한 사람에게도 이메일로 간단한 경과를 보내준다. 하지만 몇 시간 후 내가 받은 답신은, ‘The person has refused services.’ 당사자가 서비스를 거절했다는 이야기다. 분명 헤어지기 전 도와줄 사람들이 몇 시간 이내로 올 수 있다고 말해뒀던 터라 이런 답신을 받을 줄은 몰랐다. 그 사이에 생 루이 씨가 자리를 이동했거나 기타 이유로 그를 찾지 못했지만 에둘러 이런 답변이 온 건지, 그를 찾았지만 정말로 도움을 거절한 건지 알 길이 없다. 도와줄 사람이 올 거라고 얘기했을 때 그의 얼굴이 기뻐 보였던 것과는 상반된 결과였다. 무슨 일인지 알고 싶었지만 이후 그곳에 가보아도 그를 찾지 못했다.


걱정되는 마음에 뉴욕시 아웃리치 단체 중 한 곳에 무작정 이메일을 보냈다.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온 한 홈리스를 만났는데, 신분증도 휴대전화도 없는 상태라 몇 달째 길에서 지내고 있다. 외국인에 ID도 없는데 이런 사람도 혹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묻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예상보다 빨리 답신을 받았다. 'ID가 없는 외국인의 경우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그 사람의 인상착의와 주로 지내는 곳을 알려주면 아웃리치팀이 그를 찾아 나서겠다'는 내용이었다. 확실한 방법을 찾은 것 같아 기뻤다. 나처럼 그저 발룬티어가 아닌 전문 단체를 통하면 그가 훨씬 더 빠르고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최대한 자세하게 생 루이 씨의 인상착의와 그가 머무는 장소를 설명했다. 직전 NYC311 리포트 경험상, 낯선 사람들이 왔을 때 그가 혹시나 서비스를 거절할까 싶어 가능하다면 내가 동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생 루이 씨는 영어보다 스페인어를 잘하니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더 수월할 거란 이야기까지 덧붙였다. 그들은 흔쾌히 동행을 수락했고 바로 그다음 주 목요일, 그들과 함께 생 루이 씨를 찾으러 나가기로 플랜을 세웠다.


목요일이 오기 전 주말, 그가 늘 있는 장소에 미리 찾아갔다. 아웃리치팀을 데리고 오기 전에 그와 먼저 약속을 해두고 싶었다. 오늘은 다행히도 그가 예상했던 자리에 앉아 있었다. 영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혹시 놓치는 상황이 생길까 번역기까지 써가며 말했다. ‘목요일에 내가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당신을 찾으러 올 거예요. 그 사람들이 당신이 여권을 다시 만들고 가족들과 통화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예요. 그러니까 꼭 목요일에 이 자리에 있어야 해요. 다른 데 가면 안 돼요!’ 몇 번이고 당부했다. 그는 ‘당신이 나를 위해 일해주는군요! 신이 당신을 나에게 보냈어요.’하며 기뻐했고, 나는 헤어지는 순간까지 Thursday를 몇 번이고 강조했다. 모든 게 준비되었다. 이제 목요일에 아웃리치 팀과 함께 그를 만나 그를 팀 사무실에 데려다 주기만 하면 1차 해결이다. 시간이 걸려도 생 루이 씨는 여권을 다시 만들 수 있을 것이고 가족들과도 다시 연락하고, 어쩌면 가족들에게로 혹은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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