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할머니, 다음 달에도 꼭 만나요.

by 해니

매달 같은 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한 달 중 딱 하루, 마지막 주 토요일은 홈리스 피플과 우리 사이 약속의 날. 늘 가는 곳에 정해진 날짜에 다니다 보니 암묵적 루틴 같은 것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중엔 벌써 몇 년째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맞는 사라 할머니가 있다. 항상 그곳에서 한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인 그녀. 사라 할머니와 그의 친구들은 이제 우리의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안다. 많이 만나야 일 년에 열두 번, 길어야 십 분쯤 만나는 사이임에도 할머니는 늘 우리를 반갑게 맞는다.


할머니는 포트오쏘리티 근처 쉘터에서 지낸다. 오래된 호텔 같은 건물을 개조해서 만든 쉘터라는데 이 덥고 추운 뉴욕에서 할머니가 몸 누일 공간이 있다는 건 천만다행인 일이다. 어디든 그렇겠다만, 이 험한 땅에서 백발에 휠체어까지 탄 할머니가 홈리스로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에. 할머니에게 쉘터는 나름의 안정감을 주는 공간인 듯하다. 오랜 시간 동안 만나왔지만 그녀는 늘 본인만의 스타일과 청결함을 유지한다. 그녀를 만날 때마다 피부가 너무 고와 나이트케어 루틴을 묻고 싶을 정도다.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은 롱 스커트 차림. 계절마다 소재는 달리해도 다소곳한 롱 스커트 차림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사라 할머니는 그곳의 터줏대감이다. 포트오쏘리티를 자주 오가거나 그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할머니를 모를 수 없을 것이다. 항상 같은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녀를 중심으로 친구들도 모인다. 새로운 멤버가 생기면 한 달 만에 찾아간 우리에게 소개를 시켜주기도 한다. 함께 있던 친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우리가 오면 친구를 꼭 기다려 달라고 부탁한다. 우리가 시간상 기다리지 못할 땐 친구 몫의 빵과 양말 등을 추가로 챙겨둔다. 친구가 돌아오면 우리 대신 전달해 주기 위함이다. 할머니가 묵는 쉘터에는 90대의 다른 할머니도 있다고 한다. 사라 할머니 말에 따르면 그분은 자기처럼 밖에 나와 길거리에서 도움을 청할 상태도 못된다. 가끔 서브웨이나 타코벨 같은 음식 기프트카드를 나눠주곤 하는데 그런 걸 받을 땐 꼭 90대 할머니 몫까지 받는다. 90대 할머니가 정말 존재하는 걸까 궁금할 때도 있긴 하지만, 친구를 꼼꼼히 챙기는 할머니의 진심을 믿어보기로 한다.


사라 할머니와 우리가 처음부터 이렇게 친밀했던 건 아니다. 한동안 그녀는 우리에게 진짜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때까지 할머니는 우리에게 자신을 마리아라고 소개했다. 마리아인 줄 알았던 할머니가 알고 보니 사라였다는 걸 알게 된 날, 이제는 할머니의 신뢰를 얻은 걸까-하는 묘한 기쁨마저 들었다. 그저 밝고 언뜻 보면 홈리스가 아닌가 싶기도 한 그녀에게도 숨길 수 없는 아픔이 있다. 할머니의 다리는 코끼리처럼 부어있다. 홈리스 피플을 만나다 보면 흔하게 발견할 수 있는 증상 중 하나이기도 한데, 대체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피부감염을 제때 치료하지 못했거나, 오래도록 앉아있거나 서있는 자세로 인해 생긴 순환 장애, 기저 질환을 치료받지 못해 생긴 부종 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딴딴하게 부어있는 할머니의 다리는 할머니가 매일같이 롱 스커트를 고집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부은 다리에 치료나 수술을 받는다는 홈리스 피플도 종종 만나곤 했지만 할머니는 다리 치료를 포기한 듯하다. 홈리스 피플이 지속적인 의료 혜택을 받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휠체어를 탄 백발의 할머니에겐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떠올리면 잔뜩 부은 다리보다 단정한 롱 스커트와 반짝이는 피부가 떠오른다. 한 달 만에 우리를 만날 때마다 변함없이 반겨주는 표정도 함께다. 더운 날도 추운 날도 그 자리에 나와 친구들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할머니. 몇 년이 지났지만 특별히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지 않고 같은 곳에서 우리를 반기는 그녀를 보면 그저 '이번 달도 참 다행이다-' 싶다. 홈리스가 되어 쉘터 신세를 져도, 다리가 코끼리처럼 부어 맞는 신발이 없어져도, 매일 단정하게 스스로를 정돈하고 거리로 나서는 일이 그녀를 여전히 빛나게 한다.


지난달에는 그녀에게 가을맞이 롱 스커트를 선물했다. 할머니의 특별 요청이 있던 스커트다. 그녀가 원했던 다크브라운 색에 코듀로이 소재, 입고 벗기 편하도록 고무줄로 되어있는 치마. 맘에 드는 새 옷을 받아 든 그녀의 얼굴에 반짝 불이 켜졌다. 얼마나 마음에 들었는지, 그 치마가 왜 완벽한지를 여러 번 반복하여 설명해 주었다. 할머니의 어린 소녀 시절이 겹쳐진다. 맘에 드는 새 옷을 받고 좋아하는 어린아이의 들뜬 표정. 그녀가 그 미소를 아직 간직하고 있음에 감사했다. 날이 추워지니 할머니는 우리에게 받은 새 치마로 단장하고 다음 달에도 포트오쏘리티로 나올 테다. 매달 헤어질 때마다 그녀는 다음 달 우리가 오는 날짜를 여러 번 확인한다. 되도록 오랫동안 그녀를 마주치고 싶다. 다음 달에도, 다다음 달에도, 내년에도, 내 후년에도, 별일 없이 익숙한 듯 마주하고 싶다. 여느 때처럼 한 달 동안 어떻게 지냈느냐며 묻고, 날씨가 이렇다 저렇다 함께 불평하면서, 가끔은 할머니의 젊은 시절 뉴욕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녀의 반짝이는 피부와 소녀스러운 취향이 더 오래도록 간직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다음에 만날 날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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