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무대의상은 체크셔츠

by 해니

홈리스 피플을 만나러 가기 전 우리가 항상 들르는 곳은 Jack's 99 cent Store.

생활 용품, 옷가지들을 저렴하게 파는 곳이다.

이곳의 물가는 영원히 올라가는 뉴욕의 물가와 다르게 아직 대부분의 것을 10불 언더로 구할 수 있다.

자주 구매하는 남성용 반팔티는 세 장에 7불, 양말은 세 켤레에 4불.

옷이 대체로 저렴한 여름엔 좀 더 넉넉한 수량을 구매할 수도 있다.


여름이 다가오는 시기,

Jack's 99 cent Store에도 산뜻한 반소매 셔츠들이 들어왔다.

시원한 소재에 패턴도 봐줄 만한 것들이 줄줄이 걸려있어 기분이 좋다.

맘에 드는 셔츠를 다양하게 골라 카트에 담는다. 가격은 5.99불. 합리적이다.

그중 가장 내 맘에 들었던 건 하양과 초록이 섞인 체크 셔츠.

산뜻한 여름옷이 그들에게도 기분 전환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잘 고른 야심작들을 가방에 담고 42번가 포트 오쏘리티로 향했다.


역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한 아저씨를 만났다.

성큼 다가온 그는 오늘 신상들이 들어온 걸 어찌 알고 곧장 물었다.

- 깨끗한 옷이 있나요?

그렇게 내 최애였던 초록의 멋진 셔츠는 그에게로 갔다.


- 오늘 하루는 어떤가요?

- 괜찮아요. 조금 있다가 Gospel 공연을 하러 갑니다.

그는 조금 후 길거리 Gospel 공연을 하러 간다고 했다.

몇 마디 짧은 대화와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바쁜 듯 사라진 아저씨.

그의 손에 꼭 들려있는 셔츠가 여름내 예쁘게 입히기를 바라며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 그를 끝까지 봤다.


좋은 날씨에 그리 힘들지 않게 그날의 일정을 끝냈다.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한인타운에서 점심을 한 후 디저트까지 먹어줄 계획으로 길거리 와플집에 들렀다.

와플을 기다리는데 저 쪽에서 버스킹 소리가 들린다. 자세히 들어보니 가스펠 버스킹이다.


한인타운 근처 Macy's 앞에서는 종종 가스펠 버스킹을 하는 분들을 볼 수 있다.

'오늘도 나오셨나 보다- 근데 내 와플 언제나 오지?' 하는 순간,

시선 끝에 익숙한 것이 걸린다. 두둥-

하양과 초록이 예쁘게 섞인 체크 셔츠. 아까 역에서 만난 아저씨에게 드렸던 셔츠다.

엥? 하며 눈을 씻어보니 그가 그곳에 있다.

말끔한 셔츠차림이 된 아저씨가 버스킹 무리에 섞여서 가스펠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31fB2DmOXsnDDfHmbmTRE95zJaU.heic 눈에 띄는 체크셔츠

아까 간다고 했던 가스펠 공연이 이거였구나..!

멋진 무대의상이 된 체크셔츠를 입고 열심히 가스펠을 부르는 아저씨를 보니 마음이 좋았다.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아 와플을 먹으며 그들의 버스킹을 가만히 들었다.

바람이 선선하게 살랑거리고 그의 체크셔츠도 자락자락 바람에 흔들렸다.

공연이 끝나자 아저씨는 모자까지 벗으며 정중히 관객들에게 인사한다.


그날의 체크셔츠는 그와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5.99불어치의 가치를 다하고 버려지는 천 조각, 적어도 그 이상의 의미는 있었을 거라 믿는다.

우리가 Jacks 스토어에서 사는 물건들을 최상의 퀄리티라고 할 순 없겠다.

정해진 예산 내에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위한 타협점이다.

그러나 때로는 우리에게 타협이었던 것들이 대체불가한 가치를 만들기도 한다.

여전히, 어떤 가치는 돈으로 셀 수 없다.


멋진 공연을 보고 집으로 향하는 길, 걸음마다 음표가 떠다니는 기분이다.

앞으로 언제 어디서 또 그를 마주하게 될지 몰라도,

여름 내 체크셔츠가 아저씨에게 좋은 무대 의상이 되어 주길 바랐다.

멋진 옷들을 더 많이 사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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