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좋은 토요일이다.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사람들도 가벼워진 옷차림과 발걸음으로 거리를 걸었다.
우리는 여느 때처럼 다 같이 모여 물품을 준비한 후, 42번가 포트 오쏘리티로 향했다.
날이 좋을 땐 역시 실내보다 바깥에서 더 많은 홈리스 피플을 만난다.
길에서 만나 대화하게 되는 그들도 날씨가 궂을 때보다는 활기차 보인다.
코너 쪽에 앉아계시던 한 홈리스분과 대화를 나누던 중,
멋진 중절모를 쓴 키다리 아저씨가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 '내가 받을 수 있는 것이 있나요?'
- '그럼요!'
나는 가방에 있는 음식과 물품들을 있는 대로 꺼내며 말을 건넨다.
우리가 준비한 것들 중엔 그에게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있었다.
아저씨는 그중 본인에게 필요한 것들만 받아 배낭에 넣었다.
홈리스 피플을 처음 만나기 시작했을 때 의외라고 느꼈던 것 중 하나.
공짜라고 다 받아가지는 않는다는 것.
우리가 가져온 빵이 본인 취향이 아니면 다른 맛이 없냐고 물어보기도 하고,
끝내 맘에 드는 맛이 없으면 있는 빵도 굳이 가져가지 않는다.
옷도 마찬가지. 취향을 탄다.
가끔 헷갈려서 같은 물건을 두 개 드릴 땐 이미 받았다며 돌려주기도 한다.
뭐가 됐든 받을 수 있는 건 다 가져갈 거라고 생각한 나의 편협한 오해 1이었던 것이다.
아저씨는 길거리에서 생활한 지 2주가 넘었다고 했다.
홈리스 피플을 만나다 보면 거리에서 지낸 지 5, 6년이 되어가는 사람도 있지만
이렇게 거리 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도 종종 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터미널 버스를 타고 집이 있는 지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여러 도시를 떠돌다 보니 돈이 떨어졌고, 오늘에서야 그 버스를 탈만한 돈을 다 마련했다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오늘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물론 대화를 나누다 보면 간혹 현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고,
분명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몇 달 뒤 같은 거리에서 또 마주치는 사람들도 있다.
그치만 그의 눈이 너무 진실된 바람에 그 말을 온전히 믿기로 했다.
더 재밌는 사실도 알아냈다.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하고 본인의 유튜브 채널도 있다더니, 찾아보니 정말 있었다.
몇 년 전 피아노 치는 영상을 여러 개 업로드한 채널이었고,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꽤 실력자였다.
이런 연주자가 정말 재능 있는 연주자라며 댓글을 단 사람도 있었다.
언젠가 천재 연주자로 유명해지는 날 아는척하려고, 구독도 눌렀다.
본인의 연주 영상을 보여주는 그의 표정이 진중했다.
중절모 쓴 연주자의 피아노 소리에 날 좋은 바람까지 살랑대다니.
예상치 못한 낭만의 순간이다.
헤어지기 전 아저씨는 '내가 줄 수 있는 게 있을까요?' 물었다.
괜찮다고 했지만 그는 이미 배낭을 뒤적거리고 있었다.
다 해진 배낭 안쪽에서 노란색 기다란 초콜릿바가 튀어나왔다.
비록 가운데가 부러졌지만 멀쩡한 새 거였다.
맛있게 생겼다고 생각하면서도 예의상 거절했는데, 그는 끝까지 초콜릿바를 건넸다.
결국 내 손에 쥐어진 그것. 내 작은 파우치에 소중히 넣어 집에 가져왔다.
주러 갔다가 되려 받은 순간.
초콜릿바는 파우치 속에서 금방 녹아버렸대도 그가 전한 마음은 녹지 않고 남아있다.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진지하게 들어준 사람들에게 전한 작은 고마움.
마트 계산대 앞에 진열된 노란색 초콜릿바를 볼 때마다 그가 떠오른다.
아저씨는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계실까. 예정대로 집에 돌아가서 다시 피아노를 치실까.
구독한 유튜브 채널에 새 영상이 올라오길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