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의 집주소:뉴욕, 42번가 포트오쏘리티

by 해니

나는 뉴욕에 산다.

뉴욕땅을 처음 밟아본 건 20대 초, 가난한 대학생이 열심히 돈 벌어 미국일주를 왔을 때다.

11일간의 뉴욕 일정 후 공항버스줄에서 바라보는 42번가 포트 오쏘리티역 앞.

화려한 브로드웨이 극장의 불빛과 타임스퀘어 전광판들을 앞에 두고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여길 다시 올 수 있을까? 이만큼 시간과 돈을 들여 해외여행을 또 한다면 미국이 아닌 다른 곳이겠지. 그러니 나에게 뉴욕 풍경은 마지막일지 몰라.' 하며, 그 번쩍스러운 풍경을 꾹꾹 눈에 담았다.

찬공기에 코를 훌쩍거리며 바라보던 그곳은 바쁘고 정신없지만 대체 불가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z565rW1QNtYDt1T88yz5Mn4NzYA.jpeg 2016년 겨울, 42번가 포트오쏘리티 앞.

그리고 지금의 나. 여행자가 아닌 5년 차 뉴요커로 그곳을 지난다. 42번가 포트 오쏘리티역 앞, 아쉬움 절절 남겨두고 갔던 그곳은 더 이상 나에게 반짝거리는 명소도 비현실적인 여행지도 아니다. 화려하게만 보이던 뉴욕의 이면을 알게 된 나에게 그곳은 이제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아프기까지 한, 삶의 현장 그 자체가 되었다.


뉴욕엔 유명한 것들이 많다.

타임스퀘어, 브로드웨이, 피자, 베이글, 자유의 여신상.

지하철 악취, 살인적 물가, 바퀴벌레, 쥐.

그리고 홈리스.


뉴욕시의 홈리스(homeless) 인구는 미국 전체 홈리스의 18-20%. 미국 내 가장 많은 홈리스 인구를 가지고 있다. 뉴욕은 홈리스 쉘터(임시 거주지, 보호시설)가 다양하고 많은 편이지만, 쉘터에 있는 사람들도 돈벌이가 없어 낮에는 거리에 나와있는 경우가 많다. 뉴욕 맨해튼 안에서도 그들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 중 하나는 바로 42번가 포트오쏘리티. 그토록 반짝인다는 타임스퀘어와 브로드웨이 바로 옆으로 위치한 커다란 버스역이다. 화려함의 끝을 보여주는 그곳엔 동시에 삶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는 그들이 있다. 낮이든 밤이든 할 것 없이 이곳에 가면 자고 있는 홈리스, 돈 달라는 홈리스, 약에 취한 홈리스, 혼잣말하는 홈리스 등등 다양한 홈리스 피플을 만날 수 있다.


마지막일 것 같던 여행지, 뉴욕 42번가 포트오쏘리티에서 이제 나는 매달 그들을 만난다.

길 위를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빵과 물, 생필품 등을 나누고 대화도 한다.

홈리스가 무섭지 않냐고 묻는다면, 안 무섭다곤 못한다.

20대 초 뉴욕 여행을 할 때, 한 홈리스 아저씨에게 강제키스를 당할 뻔했다.
지하철을 타려고 계단을 내려와 플랫폼을 내딛는 순간,
옆에서 불쑥 나타난 홈리스 아저씨가 때가 탄 장갑을 낀 손으로 내 얼굴을 부여잡았다.
순식간에 입술로 돌진하는 얼굴을 피하기 위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바닥으로 주저앉은 건 정말 잘한 일이다.
옆으로 피했으면 틀림없이 볼에라도 키스를 당했을 것이다.
내가 너무 크게 소리를 지르니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우리 쪽을 향했고,
아저씨는 도망치며 '난 여자친구한테 키스하려고 했을 뿐이야-'라고 외쳤다.
그날 밤은 잠들기 전까지 심장이 쿵쿵 울렸고,
다음날부턴 멀리 서있는 홈리스만 봐도 흠칫했다.

그러니, 무섭지 않다는 말은 여전히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가기 전 마음은 늘 약간 무겁다. 이전에 그런 일을 겪어봤다고 한들, 예상치 못하게 생기는 사건을 미리 막을 길은 없기 때문이다. 날이 덥거나 추운 날엔 더더욱 그렇다. 오늘은 그냥 쉬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흔적처럼 남아있는 두려움을 나는 그들과의 시간을 통해 조금씩 지워나간다. 말 붙이기가 무섭도록 어딘가 화나 보이는 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 때, 그가 어느새 경계를 풀고 눈물을 보이며 살아온 이야기를 쏟아내는 걸 듣고 있자면 '이 사람은 누군가와 이런 대화를 해본 지 얼마나 된 걸까. 얼마나 오랜 시간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글썽이는 눈으로 말 걸어줘서 고맙다 말하는 그 얼굴을 마주할 때, 내가 가진 작은 두려움의 흔적이 옅어진다. 내 짧은 경험으로 모든 홈리스 피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기엔 상처받고 방치된 마음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알아버렸달까. 길 잃은 강아지가 자신을 보호하려 점점 공격적으로 변해가는 것처럼, 사나운 표정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사랑을 구하고 있는 얼굴들이 이 길 위에 있다.


매달 홈리스 피플을 만나러 가는 일은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고, 가장 가까운 나의 남편과 늘 함께다. 좋아 보이는 일이라고 힘든 순간이 없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 그래도 계속한다. 습관이 되어버리니 익숙함에서 오는 일종의 안정감도 생겼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이라고 계획에도 없던 뉴욕살이를 시작한 지 5년째, 계획 없이 굴러온 인생 치고는 좋은 것들과 좋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거저 받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그 얼굴들이 떠오른다. 내가 의도치 않게 받은 것들과 누군가 의도치 않게 잃게 된 것들을 생각한다. 다가오는 행운도 불행도 달리 막을 길이 없어 인간은 누구나 자기 앞의 생을 산다고.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서, 주어진 삶을 감당하며 사는 동안 팍팍스러움 속에서도 사람들은 같이 살고 함께 슬퍼한다.


홈리스들에게 다가가는 게 무섭지 않냐는 질문을 받을 때, 다 해진 가방에서 구겨져있던 초콜릿 바를 찾아내 쥐어주던 손을 떠올린다. 그들은 무섭지도 위험하지도 않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은 때로 무섭기도 위협적이기도 하지만 자기가 가진 몇 없는 음식을 나누어줄 수도 있는 '사람'이란 걸 말하고 싶다. 세상을 저주하고 인간을 경계하던 로자 아줌마가 모모에게만큼은 전부를 주었던 것처럼, 결국 인간은 누구나 사랑할 존재를 필요로 하니까.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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