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계간지를 읽는다는 것

자음과 모음 2024 겨울 : 63호 서평

by 지지


여느 때보다도 '연말'이라는 느낌이 잘 나지 않는 2024년이다. 당장 내일이 크리스마스이고, 우리집에는 작은 미니트리와 크리스마스 리스가 장식되어있다. 심지어 지금 나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듣고 있다. 하지만 딱히 크리스마스라서 들뜬다! 이런 감정은 들지 않는다. 최근 있었던 시국의 일 때문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해가 지나는 것이 더는 놀라운 일이 아닌 그저 순리에 따른 일임을 느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스스로 문학도임을 표방하면서도, 우습게도 나는 계간지를 잘 읽지 않았다. 두꺼울 뿐 아니라 그 안에 있는 내용들을 내가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막연한 거리감이 있었다. 어떻게든 잰 체하는 주변 문학도들을 따라가고자 잡지도 구독해보는 등의 노력을 해보았지만 계간지만큼은 영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그런 내가 좋은 기회를 얻어 자음과 모음 2024 겨울, 63호의 서평단에 당첨되었다.


서평단을 신청하게 된 이유는 대담하게도 좋아하는 작가가 글을 실었기 때문이었다. 권여선 작가를 비롯하여 이주란 작가, 두 분 모두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이신데 계간지에 과연 어떤 글을 실으셨을까.


근래 대학원 과제를 하며 계간지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소설 파트들 만큼은 한 번씩 읽어볼 기회가 있었던 터라 계간지에서 발표되는 소설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때였다. 그러나 정작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계간지를 읽으며 가장 마음이 갔던 것은 남지은 시인의 시 '곧 거울이 깨질 시간' 이었으며, 소설은 최미래 작가의 '과자집을 지나치며'가 가장 좋았다. 무엇보다 머리글을 읽으며 지금 이 시국에서 동료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어지는 특별기고에서 인문학적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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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도서관에서는 함부로 줄을 긋거나 할 수 없어 스캔하고 메모하며 읽던 두툼한 계간지. 감사하게도 서평단에 당첨되어 이번에는 밑줄을 그으며 읽을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인상깊게 읽으며, 밑줄 그었던 부분들을 아래에 적어본다. (원래는 손글씨로 써서 올리려고 했다. 내년부터는 시집에 대한 독후감도 많이 쓰고 싶은데, 아무래도 시의 경우 그대로 다 옮겨 쓰면 저작권을 너무 침해하는 일처럼 느껴져서... 긁어갈 수라도 없게 손으로 적어보려 한 것인데, 아직 너무 미흡한 관계로 그렇게 되었다. 양해를 부탁드린다.)


계간지에서는 올해! 무려! 10월 10일 아시아 한국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에 대한 글들이 많이 실려있는데, 개 중 인상 깊었던 구절을 무작위로 가져왔다. 전문이 궁금하신 분들은 꼭 자음과 모음 2024 겨울 63호 계간지를 확인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초략) 정확히 말해 한강의 작품에서 애도는 일회적인 수행이 아니라 태도이자 삶이다. 작가는 죽은 이가 더 나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며 그를 떠나보내는 축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다름 아닌 그 죽음에 빚지며 죽음과 함께 지속하고 있다는 것을, 각자가 쥐고 있는 건 자신의 목숨줄만이 아니라 서로를 잇는 질긴 천이라는 사실을 느끼도록 해준다. p.5 (머리글 발췌)

(초략) 이른 바 문단의 권위에 의존했던 순문학의 시장이 작아지고 웹소설과 같은 새로운 문학의 생산과 소비 형태가 폭발적으로 출현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이런 대세의 흐름에 변화를 준 사건이다. p.75 (한국문학이 맞이한 새로운 광야, 이택광의 글에서 발췌)

국제 문학 공동체가 한강의 작품에서 높이 평가한 바는, 최근의 역사와 현대사회 속에서 개인의 고통을 포착하고 애도하며, 이를 교훈적이기보다는 감정의 명료함으로 표현하는 능력이었다. p.80 (한국문학과 윤리, 문학번역과 비평, 이영일의 글에서 발췌)

(초략) 번역가들이야말로 언어 간 문학이동을 이끄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번역가는 일종의 비평가다. p.81 (상동)


그리고 이번 자음과 모음 2024 겨울, 63호에는 제12회 네오픽션상의 수상자 발표가 있었다. 그에 따른 심사평이 기재되어 있었는데, 그것을 읽는 일도 무척 흥미롭고 즐거웠다. 이번 네오픽션상 수상자는 오동궁 작가로 <미식가들>이라는 작품인데, 본지에는 실려 있지 않은 관계로 나중에 찾아서 꼭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심사평조차도 정성스럽고 여러 모로 배울 것이 많아 밑줄을 치며 읽었다. 남의 작품의 심사평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설렌 적이 있었던가.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앞서 언급했듯 시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곧 거울이 깨질 시간>이라는 남지은 시인의 시였는데, 아주 오랫동안 음미하며 읽었다. 그 중 부분을 찍어 올린다. (차마 내 글씨로는, 이 아름다운 시를 해칠 것 같다. 정말 여러 번 쓰고 노력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남지은 시인의 시 <곧 거울이 깨질 시간>은 p.118-119에 실려 있다. 이 짧은 부분만 아니라, 전문을 다 읽었을 때 깊은 여운이 남는 시인 만큼 꼭 전문을 찾아 읽어주셨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다. 제발! 츄라이. 츄라이. 나는 이번 계간지를 계기로, 남지은 시인의 시집 <그림 없는 그림책>을 읽어보고자 한다.


내가 계간지의 작가 이름을 보며 가장 기대했던 권여선 작가님의 소설 <일주>도 재밌게 읽었다. 마지막으로 읽었던 권여선 작가님의 계간지 발표 소설(아뿔싸,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역시도 모녀간의 관계를 다루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 근래 작가님의 관심사가 모녀가 서로에게 가지는 애증이라는 복잡한 감정에 가닿아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최근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도 모녀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던 지라 한국문학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서 모녀에 대한 이야기가 단순히 어머니의 희생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애증의 관계로까지 넓어지고 있구나, 하며 감탄하고 있다.


최미래 작가의 <과자집을 지나쳐>가 가장 좋았던 것은, 아무래도 나와 세대가 가장 비슷하고 그 안에서 다루는 메시지가 확고해서였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도 모녀간의 관계가 나온다. 이 지점이 재미있다. 여성작가들 모두 모녀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소설은 철없고 자기만 알던 엄마가 죽고, 비로소 동생 금매와 잘 살겠구나 안심하는 두리가 화자로 나온다. 그러나 금매는 두리의 예상과 다르게 엇나간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두리는 금매와의 사이를 교정하고 앞으로를 잘 살아보기 위해 두리가 조르는 대로 고양이를 기르기로 결심하고 알아보며 진행된다.


나는 소설의 제목 속 과자집이 참 좋았는데, 아래 문장 때문에 과자집이 더 좋아졌던 것 같다. (그러니까, 소설이 말이다.)


과자 집은 과자로 만든 집. 그럴듯해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 마음 편히 살 수는 없었다. 짓는 사람만 많고 부수는 사람이나 먹어 치우는 사람도 없었다. p. 236 (최미래, <과자집을 지나쳐> 중 발췌)


2024년의 끄트머리에서 계간지를 정독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은 로또에 당첨되는 일에 버금가는 일이었다. 비록 신춘문예라든지, 공모전은 줄줄이 떨어졌을지언정 서평단 기회를 잡았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새롭게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을 다시 얻었고 많은 배움을 얻었다. 계간지라는 이름 답게 두툼하게 나온 이 계간지를 나는 이 계절 동안 오래오래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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