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한강, <흰>

by 지지

▶ 줄거리


<흰>의 표지를 보면, 한강 소설이라 적혀 있다. 그러나 막상 내용을 살펴보면 언뜻 산문이나 에세이 같이 느껴진다. 중간 중간에는 차미혜 작가의 ‘흰색’을 연상시키는 사진도 첨부되어 있어 독자들에게 생각할 간극을 준다.


화자는 낯선 땅 바르샤바로 여행을 간다. 바르샤바는 1944년 유럽에서 유일하게 나치에게 저항하여 9월 한 달 동안 독일군을 극적으로 몰아내고 시민자치를 이뤘던 도시다. 이로 인해 히틀러는 보복성 공습을 감행했고, 바르샤바는 무차별 폭격으로 인해 도시의 95%가 폐허가 되고 만다. 항공기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하얀 폐허처럼 보이던 그곳에서 화자는 자신이 쓰기로 결심한 ‘흰 것들’에 대해서 다시 성찰하는 시간을 가진다.

화자에게는 태어난 지 두 시간만에 죽은 손위 언니가 있다. 언니가 만약 살아 있었다면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삶은 그녀의 삶을 대신 하는 것이라 말한다.


▶ 감상


우선 처음 읽었을 때에는 아리송했다. 작품에서 확실하게 화자의 여행지가 바르샤바라 말한 것도 아니었으며, 이것을 자전적인 에세이로 보아야 하는지, 혹은 시로 읽어야 하는지 (소설이라고 하기엔 여태까지 내가 알던 형식의 소설이 아니었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다. 표지를 여러 번 뒤적여보았다. 이 책의 출간 당시에는 내가 기대한 소설 형식이 아니어서 읽는 것을 포기하고 잠시 덮었던 기억도 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음미하며 읽어보니 알겠다. 이것은 애도의 소설이다.


화자에게는 두 시간만에 죽은 손위 언니가 있다. 그 언니에게 어린 엄마는 배냇옷을 입히고 죽지 말라고 말하고 젖을 물린다. 그러나 아이는 죽었다. 화자는 이 죽음을 오래 생각한다. 자신이 그녀를 대신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실제로 인터뷰에서도 “80년대 당시에 마치 우리 가족 대신 누가 다쳤을 것 같은 죄의식이 있었어요. 누군가 죽은 자리에 내가 살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내가 (어쩌다 우연히) 살고 있는 이 삶은 실은 아주 연약하고 부서지기 쉽고 낯설다는 느낌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어요.”라고 밝힌 바 있다.


바르샤바의 폭격 후 남은 벽의 잔해에 사람들은 꽃을 놓고 초를 놓는다. 이것은 단순한 애도만이 아닌, 국가권력,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진 죽음, 그 가해에 저항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화자는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이 대목에서 나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를 떠올렸다. 오늘날 인터넷상을 보면,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그날 일어선 광주 시민들은 제대로 애도 받지 못했을 뿐더러, 철저히 왜곡되고 비난받는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다. 바르샤바의 시민들이 나치에 반해 항거한 것을 애도하고 기억하며 자긍심으로 삼는 것과 몹시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이제 당신에게 내가 흰 것을 줄게. p.50 은 여러 의미로 해석된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릴 수 있는가? 요즘 시국에 가장 많이 나왔던 질문이다. 한강은 소설로 이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 인상 깊었던 구절


그 사람에 대해 처음 생각한 것은 그날이었다. 이 도시와 같은 운명을 가진 어떤 사람. 한차례 죽었거나 파괴되었던 사람. 그을린 잔해들 위에 끈덕지게 스스로를 복원한 사람. 그래서 아직 새것인 사람. 어떤 기둥, 어떤 늙은 석벽들의 아랫부분이 살아남아, 그 위에 덧쌓은 선명한 새것과 연결된 이상한 무늬를 가지게 된 사람. p.31


그러려면 상처가 없는 발이어야겠지. 사진을 들여다보다 그녀는 생각했다. 곱게 아문 두 발이라야 거기 얹을 수 있다, 그 소금 산에. 아무리 희게 빛나도 그늘이 서늘한. p.68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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