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의 삶을 떠나보내며

성북 청년구술생애사 5권 참여 후기

by 지지

성북구에서 진행하는 해당 프로젝트 '청년 구술 생애사'는 청년기에 자신의 삶을 객관화 하고 재해석 하는 과정을 통해 생애기록을 넘어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골든타임을 만들어 내는 프로젝트이다. 프로젝트의 참여자는 스스로 이야기를 하는 '구술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이야기를 듣고 받아 적는 '서술자'가 될 것인지를 정할 수 있다.


성북구에 살지 않고, 거리도 꽤 있는 내가 이 프로젝트를 알게 된 것은 상담을 받으면서부터이다. 지난 5월, 나는 갑작스럽게 닥친 우울증에 자연재해에 휘말린 나무처럼 삶이 뿌리째 흔들리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상담을 받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선생님께 말씀드리던 중, 선생님께서 '청년 구술 생애사'에 대해 소개해주셨다. "지지 씨의 삶이 기록될 가치가 있어요." 그 말에 용기 입어 신청을 넣었고, 운이 좋게 참여자로 선정되었다.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앞서 구술자와 서술자는 함께 교육을 받고, 이후에 서술자는 서술을 위한 세부적인 교육을 추가적으로 듣고 파트너로 배정된 구술자와 인터뷰하며 원고를 작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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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를 한다는 것은 늘 어려운 것 같다. 끝난 지 얼마 안 된 프로젝트의 회고에도 잠시 머뭇거리게 되고 타자를 멈추게 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 하는 갈피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청년 구술 생애사 프로젝트에 참여해 만난 파트너 서술자는 성민님이었다. 성민님은 연극 극본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계셨다. 처음 모든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뵈었을 때 원체 발성이 좋으신 분이라 생각했었다. 파트너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에 얼떨떨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처음의 이야기이고, 인터뷰를 위해 몇 번의 만남을 가지면서 성민님이 참 생각이 깊고 좋은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서 없이 이어지는 황당한 나의 말들을 잘 경청해주시고, 메모해주시고, 어느 부분에서는 필요한 것을 찾아 날카롭게 질문해주시기도 하였다. 원체 말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말이 길어지는 바람에 인터뷰 시간은 항상 길어졌다. 나중에 뒤돌아서는 아, 성민님께 그런 말씀은 드리지 말걸. 너무 tmi였구나. 하는 후회들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글을 깔끔하게 작성하여 기고해주신 그 정성과 수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남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말하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 어울리기 위해 하는 말을 좋아하는 것이지, 내 자신을 떠벌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어릴 적부터 배워왔다. 때문에 내 이야기는 의식적으로라도 잘 안 하게 된다. (이랬는데 친구들이 지지야. 너 진짜 니 말 많이 하더라, 라고 하면 할 말 없어지는 거다.)


인간은 정말 신기한 점이 있다. 머릿속에 생각으로만 담고 있을 때와 말로 뱉었을 때의 생각은 달라진다. 발화하는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고 되돌아보게 된다. 청년 구술 생애사를 진행하며 나는 정말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믿는다.


연말에 몰아치는 대학원 과제들, 공모전 따위의 것들을 겨우 해치운 오늘에서야 청년 구술 생애사의 책 전체를 완독하는 데 성공했다. 읽으면서 진작에 좀 읽을걸, 하는 후회를 했던 것 같다. 정말 분에 넘치게 많은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서른을 맞는 청년에서부터 이제 곧 마흔을 맞는 청년, 이리저리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큰 용기를 내는 청년 등... 다양한 그들의 이야기에 나는 하나하나 다 깊이 공감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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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에피소드라면 에피소드인데, 나는 내가 인터뷰한 원고의 내용을 이전까지 전달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구술자)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나의 서술자만 내게 내용을 보여주지 않았다고 했다. 혹시라도 들어올 수정요구가 무척 곤란하게 느껴질 것 같아서였다고 북토크 당일! 말해주었는데 나는 그것이 기분 나쁘기는커녕 그냥 웃겼다.


다만 내가 조금 당황한 부분은 다른 부분이었다.


인터뷰를 하면서 서술자인 성민님께만 쓰고있는 중편소설 <미정의 삶>의 원고를 보내드린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인용을 해도 되는지 성민님이 물어보셨고, 나는 흔쾌히 오케이했다. 어디까지나 책의 내용으로 취급된다는 가정하에서 한 대답이었는데 출판도, 공모전 제출도 해보지 못한 나의 소설 <미정의 삶>이 청년 구술 생애사의 부제목으로 달려 있었다. 이를 북토크 콘서트 공지 문자에서 알게 되었다.


나는 설마, 출판하는 책에 참여자의 소설 제목을 아무렴 부제로 박아넣으셨겠나, (북토크 제목으로 쓰인다는 것에 대해서도 일언반구 없었으나 거기까지는 그래도 양해의 영역이라 여긴다.) 생각하며 당황한 내 자신을 달래려고 애써보았다. 그때의 내 기분은 꼭 잘 나가는 드라마 작가에게 공모전에 제출한 드라마 각본을 홀랑 뺏겨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책을 받고 표지를 살피면서 <미정의 삶>이 없어 다행이라 여겼으나, 아뿔싸. 책등에 미정의 삶이 있었다. 이후 올라오는 유튜브에도 <미정의 삶>이 언급되고 있었다.


소설의 제목이 이런 식으로 공개가 되어버렸으니 아쉽게도 공모전에 제출하는 것은 불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어 좌절했던 것도 사실이다. (개오바다) 유튜브 인터뷰에 내가 출간한 적 없는 <미정의 삶>을 출간한 책이라 말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에 대한 정정은 설명 보기를 눌러야만 확인할 수 있다. 얼핏 심사위원들이 볼 때에 '공개한 적 없는 작품을 제출하라 했는데 공개를 했었네?' 라고 오해할 만한 부분이다.


비록 작가지망생이 작성 중이던 원고의 제목이라지만, 내 나름의 애정이 무척 큰 작품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제목이 사용되는 것에 나는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은 것도 사실이기에 따지거나 서로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내 상처는 오롯이 나 혼자 안고 갈 요량이었으나, 브런치에나마 짧게 나의 마음을 말해본다.


그래서 책을 읽는 게 이렇게도 늦어졌는지 모른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내 개인의 아쉬움이 아니라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좋은 프로젝트였는지다. 다시 돌아가 말하자면 나는 구술로서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고, 나의 구술이 서술됨으로 인하여 내 경험을 누군가에게 공유할 수 있게 되는 귀중한 경험을 지니게 되었다. 또 더 나아가 그 서술을 읽고 나를 되돌아보고, 나 말고도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소중하게 경청할 수 있었다.


이번 기수에 참가한 사람들 모두와 긴밀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애정이 넘친다. 앞으로 인생에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이 샛노란 청년 구술 생애사를 펼쳐서 볼 것 같다. 나는 주로 인문학과 소설을 읽는데 그러다 보면 사람이 우울하고 직장인처럼 된다(?) 때문에 환기시켜줄 에세이가 필요한데 그 점에서 아주 딱 맞는 도서다.


그러나 이 책은 비매품이고, 읽고 싶으시다면 성북구 도서관에 가셔야 한다는 사실!

프로젝트는 성북구민 한정이 아니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다음 기수에 참여해보시기를 권해드린다.


인터뷰 영상 : https://youtu.be/-43t8b_H6ug?si=6YgakEh6sxpKibJ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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