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선량한 당신께 필요한 책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by 지지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읽은 책이다. 처음 읽었을 때에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의 많은 경험들을 반추해볼 수 있었다. 언젠가 다시 꼭 읽어봐야지, 읽고 좋았던 구절, 공감 갔던 구절들을 밑줄 그어보아야지 하며 지난 시간이 벌써 오 년이 되었다. 그러던 중, 이 책이 30만 부나 팔렸으며, 이를 기념하며 리뷰이벤트를 진행한다는 것을 본 후에야 이 서평을 쓸 결심을 하게 되었다. 시의적절하다고도 생각했다.


작년 나는 내 몸 상태에 대해 굉장히 비관적이었다. 나의 장애와 질병이 내 앞길을 막고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많았다. 차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바닥에 드러누워 근거 없는 생떼를 쓰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왜 매번, "나만" 따지고 들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 피로하다고 느꼈다. 일 년에 한 번씩은 국민 신문고를 두들기고, 말이 안 통하는 담당자와 싸운다. 다부지게 이겨내야지, 저항해야지. 했는데 작년에는 차별을 당하고 돌아온 날 서럽게 울었다. 한 5초 정도. 너무 길게 울면 피곤해지니까. 나는 눈물 닦고 신문고 두들겨야 하니까.


신문고를 두들긴 이유는 간단했다. 나에게 계단으로 오라고 해서. 그게 이유다.


작년의 나는 한창 PT를 받으며 건강관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내가 다니는 스포츠센터는 구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드물게도 배리어프리 건물이었다. 잦은 투쟁으로 지쳐 있던 내게 그곳은 꼭 천국처럼 보였다. 수도꼭지의 점자, 휠체어는 물론 보행약자가 진입할 수 있는 경사로 출입구, 보행약자를 위한 샤워실의 의자, 사물함까지. 그러나 문제는 늦은 시간 내가 퇴근하고 보행약자 출입구로 들어가려고 할 때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발생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지하1층으로 이어지는 보행약자 출입구는 시간을 제한하여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배리어프리를 지향하는 이 건물은, 1층의 횡으로 되어있어 경사가 심한 계단 출입 직전 안내판에 보행약자는 지하1층의 경사로를 이용하라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지하1층의 보행약자 출입구는 막혀 있다. 그렇다고 스포츠 센터가 문을 닫은 것은 아니다. 나는 이것이 명백한 차별이라 생각했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카운터에 들러 직원에게 조심스럽게 출입시간을 제한하는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계단을 이용할 수 없는 보행약자들을 위해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출입구의 시간을 조정해주면 좋겠다고 건의했다.


여성 직원과 이야기할 때에는 그분이 경청도 잘해주시고, 윗선에 잘 전달하겠다 말씀해주셨다. 그러나 갑자기 책임자로 보이는 50대 남성 직원이 나타나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건물 보안상의 이유로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더더욱 납득할 수 없었다. 건물 보안상의 이유로 직원이 부재하여 단 하나의 출입구만 열 수 있다면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출입구를 개방해야 마땅할 것이다. 계단을 이용할 수 있는 몸 건강한 비장애인, 비질병인만 이용할 수 있는 출입구를 개방하는 것이 아니라. 이에 대해 내가 따지고 들자 그는 이유도 들으려 하지 않고 내게 연이어 말했다.


계단으로 오세요!

계단으로 오시라고요!


나는 나도 그러고 싶다고요!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안절부절 지켜보던 여성 직원분이 조심스럽게 내 다리에 대해 말했다. 계단을 이용하실 수 없으세요. 그 직후 이어진 남성 직원의 행동은 나를 처참하게 만들었다. 그는 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경멸스럽다는 듯. 나는 겉보기에 아주 멀쩡해보였으니까. 티 나지 않는 장애인이었으니까. 그는 내가 돌아선 뒤에도 나에게 들으라는 듯, 아까는 무안해서 생각해보겠다고 했지만 역시 건물 보안상의 아주 중요한 이유로 보행약자 출입구는 열어줄 수 없다고 여성 직원에게 소리쳤다.


그날 나는 운동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건물이 나를, 세상이 나를 거부하는 느낌이 들었다. 버스 창가에 앉아 노래가사처럼 서러운 마음이 복받쳐 올라와 눈물을 삼켰다. 나는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을 알아서 내가 싫었다. 국민 신문고에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쓸 것이고, 보행약자 출입구의 시간을 조정할 때까지 싸울 것을 알아서 내가 너무 미웠다. 매번 이렇게 투쟁해야 하는 내가 너무 싫었다. 버스마저도 하필이면 저상버스가 아니라서 계단을 내려올 때 성급히 문을 닫으려는 버스기사에게 내리고 있다고 소리쳐야 했다.


집에 도착해서 엘레베이터를 탔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집에 들어와 현관문을 닫자마자 서럽게 울었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2주만에 받은 답변은 직원에게 서비스 교육을 다시 시킬 것이며, 건물 보안상의 이유로 보행약자 출입구의 출입시간을 조정하는 것은 어려우니 양해를 부탁드리며 "주차장"으로 내려오시라는 답변이었다. 그러면서도 지자체 공무원은 자랑스럽게 해당 스포츠센터가 배리어프리 건물임을 강조하며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뭘?)


이에 나는 이 문제는 서비스의 문제가 아니며 명백히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하고 있는 행위임을 다시 말하며 직원에게 필요한 것은 장애인식개선교육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람인 내가 엄연히 보행약자 출입구가 있음에도 차가 드나드는 주차장을 이용하는 게 맞는 것이냐고, 그것이 지자체의 입장이냐고 묻자 그제서야 지자체에서는 보행약자 출입구 시간을 조정하고 직원에게 장애인식교육을 대면으로 진행할 것을 약속했다.


써놓고 읽기만 하면 시원하게 잘 해결된 일처럼 느껴지지만 나는 이 투쟁을 하는 내내 나 하나만 조용히 있으면 될 일을 키운다고 느꼈다. 내 편이 없었다. 이전에 지하철에서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시원하게 욕을 얻어먹었을 때도 노인에게 장애인도 노약자석을 이용할 수 있다 말하는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국민신문고를 두들기고 있는 그 상황에서도 모니터 앞에 앉은 것은 나뿐이었다. 외롭고, 슬펐다. 그렇게 슬픈 와중에 세계 장애인의 날 혜화역에서 경찰이 전장연을 무참히 끌어내는 뉴스를 눈을 뜨자마자 읽었다.


나이가 들면 인간은 누구나 병들고 노쇠해진다. 장애를 가진 나도 마찬가지고, 여기서 더 나빠질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슬프고 괴로웠다. 무엇보다 외로웠다. 응원이 필요했다. 내가 잘했다는 말 한마디 참 절실했다. 성북구에서 진행하는 <청년 생애 구술사> 프로젝트를 통해 어느 정도 위로 받으며 나는 내 자신을 끌어올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올해 1월, 질병으로 휴직했던 직장에 복직하게 되면서 또다시 나는 내 장애와 질병으로 인해 벽과 마주했다. 복직 전 나는 인사담당자에게 현재 몸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으나,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못해 복직을 해야 하는 상황임을 알렸다. 그러면서 "부탁"했다. 이전처럼 일할 수는 없으니 내가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있는 부서에 배치해줄 수 없느냐는 부탁이었다. 그러자 담당자는 차라리 더 쉬라고 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바쁘고 힘든 시기에 장애인을 향한 배려를 바라다니,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티가 나지 않는 장애인이었고,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는 비장애인 시켜도 되는 모든 일들을 잘만 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오리가 강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아득바득 발버둥치며 수영하는 것처럼 나는 비장애인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힘겹다고 느꼈다. 나는 그냥 나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복직과 동시에 인사담당자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은 내가 장애인이니 우대해달라는 것이 아닌, 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자리를 달라는 뜻이었다.


지금 나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로 발령을 기다리고 있다. 처음에는 구조조정 당해서 복도에 쫓겨난 책상에 앉은 사람과 같은 심정을 느꼈으나, 이제는 그런 기분은 느끼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전진할 것이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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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가는 구절이 너무 많아 얼마나 많이 인덱스를 붙였는지 모른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장면을 하나 꼽자면, (장면이라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모두를 위한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챕터에서 나온 장애인 화장실이다.


사실, 작가님께서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처음 생긴 장애인 화장실에는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이다. 나는 다리 때문에 쪼그려앉지 못하는데 학교가 오래되어 좌변기들밖에 없었다. 그 탓에 나는 화장실을 가지 않았고, 종종 실수를 할 때도 있었다. 그러던 중 장애인 화장실이 생겼다. 깨끗한 양변기와 세면기, 열림 버튼과 닫힘 버튼이 있는 장애인 화장실. 그러나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를 제외하고는.


어린 아이들의 순수한 호기심은 악의가 된다.


누굴까?


누가 장애인 화장실을 쓸까?


떠드는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여러 명이 웅성거리며 화장실 안에 있는 나를 궁금해하고 있었다. 급기야 목소리들은 열어봐! 네가 가서 열어봐! 하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나는 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지 마. 하지 마. 사람 있어. 열지 마. 그러나 문은 열렸다.


'벨튀'(벨 누르고 튀기)처럼, 활짝 열린 문을 등지고 아이들은 민들레 홀씨처럼 퍼졌다. 나는 열린 문의 화장실 안에서 훌쩍거리면서 울었다. 엄마에게 이를 얘기하니 선생님은 나에게 화장실에 갈 때마다 친구를 붙여주셨다. 정말이지 "쪽팔렸다" 그래서 나는 화장실을 가지 않았다. 최대한 참고 또 참았다. 차라리 가야 한다면 좌변기를 억지로라도 사용했다. 장애인 화장실은 그 후로도 계속 쓰지 않았다.


작년에 나는 다시 장애인 화장실을 찾았다. 그곳에서 내가 제일 먼저 확인한 것은 안에서 닫은 문이 밖에서도 열리지 않는지였다.




현재 나는 부서에 배치되지 않고 대기발령 상태이다. 인사담당자는 몇몇 부서에 나를 넣어줄 것을 요청(?)했으나 모두가 난색을 표해 자리가 없다 했다. 나는 인사담당자에게 난색을 표한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몸을 많이 쓰는 부서라서, 전산을 다뤄야 하는 부서라서 등등이라고 말했다. 그 등등에는 필시 체력이 약하고 장애가 있는 직원은 부담스럽다는 말이 들어가 있지 않았을까?


하루는 동료 직원분과 만났는데 인사에서 갑자기 장애인 직원을 받으라고 해서 과장님이 거절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그 장애인 직원이 내가 아닐지에 대해 물었고, 동료 직원분은 "지지 님은 다르죠" "지지 님은 아닐 거예요" "지지 님이었다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를 배려해주는 너무나 상냥한 그 말에 나는 웃었다. 나는 그 말이 선의에서 비롯되었음을 분명히 알고 있었지만 마음으로는 상처받고 있었다.


직장을 구하기 전에도 그랬다. "지지 씨는 다르잖아요!" "지지 씨는 잘할 거예요" 라는 응원을 많이 받았다. 실제 근무 중인 장애인들이 얼마나 일을 못하고, 그들 때문에 보는 피해가 무지막심하다는 말과 동시에 들은 말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얼마나 다를까? 나는 그 장애인들과 뭐가 다를까?


직장에 들어와 일한 2년 내내 엉뚱한 세상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두가 자신 자체로 디즈니의 등장인물인데 나만 인형탈을 쓰고 있다. 그래야만 이곳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탈을 벗고 내 자신으로 살겠다고 선언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두렵다. 두렵지만 나는 이제 지긋지긋한 비장애인 코스프레를 그만하기로 했다. 그래서 탈을 벗었다. 기꺼이 대기발령을 받아들였다.


제발 조직과 평화롭게 지내라던 아버지는 이제 딸의 성정을 알고 등을 밀어주신다. 네가 잘못한 것 없어. 이 응원을 듣기 위해 아버지와도 반목하던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나의 투쟁은 별것 아닌 마음에서부터 시작했다.


2014년, 이분척추증 힐링캠프를 통해 나와 다른 이분척추증 환우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내 병에 대해서도 난 잘 모르고 있었다. 나보다 어린 그 아이들을 보며 나는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다다. 내게 상처를 준 당신이, 이 사회가, 그 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조용히 자리를 피하고 입을 다물던 나는 벌떡 일어서서 고함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이십 대에는 정말 치열하게 마구 싸웠고, 이제 막 삼십 대가 된 최근까지도 싸우고 또 싸웠다. 싸움이 지겹고 힘들고 누구도 내게 연대해주지 않는다고 느꼈다. 세상은 갈수록 내 장애처럼 악화되기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으며 힘을 얻었다. 위의 사진처럼 인덱스를 덕지덕지 붙인, 내 마음 같은 이 책이 무려 30만 부나 팔렸다고 한다. 전장연이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본 시민들이 달려가서 그들과 연대하는 뉴스를 보았다.


언제나 불의는 커보이고 정의는 약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희망은 늘 있다. 이 책이 나는 그 증거 중 하나라고 느낀다.

작가님, 30만 부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책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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