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내일도 온 힘을 다해 초능력 발동 중

카밀라 팡,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by 지지


감상


이 책은 자폐 스펙트럼 중 하나인 아스퍼거 장애와 ADHD 증후군을 지닌 과학자 카밀라 팡이 쓴 책으로, 자신이 어떻게 사람과 연결되었는지, 또 어떻게 하면 당신도 그들(비장애인/비질병인)과 어울릴 수 있는지에 대해 과학이론을 빗대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나는 사실 이 책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복잡한 과학이론과 사람의 행동양식을 연관 지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내가 하지 못한 생각이었기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만큼 이 사람이 얼마나 사람을 이해하고 싶었고 연결되고 싶었는지 알 수 있었다. 책을 읽는 초반에서부터 자신을 외계인처럼 느꼈다는 이야기에 공감이 가서 마음이 짠했다. 나 역시도 내가 잘못된 행성에 떨어진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모두가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는데 나만 툭 튀어나온 돌처럼 지하철을 탈 때마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심지어는 밥 먹기 위해 식당을 가는 것조차 계단과 같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가 싫었다. 그런 나를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쓰고 읽고 싸우는 중 이 책을 만났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작가는 “자신의 다름을 악마화하지 말라”고 한다. “자신이 그랬듯 타고난 초능력으로 다름을 수용”하라고. 나의 초능력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 글 쓰는 일인 것 같다. 나는 글을 쓸 때 내 내면을 더 면밀히 들여다보게 되고, 또 쓰고 난 후에는 그 여운에 푹 젖어 다른 일에는 개의치 않게 된다. 비록 내 글쓰기가 등단을 하거나 어디에 실릴 만큼 대단한 글은 못된다고 할지라도 나에게 있어 내 글은 나와 세상을 연결시켜주는 나의 초능력 중 하나이다. (다른 초능력은... 글쎄. 무언가 있지 않을까?)


이 책은 나에게 비장애인/비질병인과 동화되기 위해 그들과 같아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작가는 나의 존재 그대로 그들과 맞닿을 수 있다고 격려한다. 그건 정말 힘든 일이고, 반드시 한 번은 실패할 게 뻔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에게 필요한 과정이라고 말한다.


나는 여전히 세상이 어렵고 인간관계에서도 자주 삐끗하고 넘어진다. 그건 나의 장애/질병 때문이기도 하고, 때로는 아니기도 하지만 어쨌든 장애/질병은 내 정체성과 떼어낼 수 없기에. 나는 상처가 아플 때면 남들과 다른 나를 미워했다. 그러나 이제 '선배'에게서 한 수 배워간다. "삶이 나아지는 과정은 느리고 점진적이라는 인간의 필연성을" 받아들이고, 이 느려터진 내 삶의 에스컬레이터에 느긋하게 내 몸을 맡긴다.


나는 확신한다. 나의 초능력으로 세상과 연결될 수 있다고. 그 믿음으로, 오늘도 내일도 온 힘을 다해서 초능력 발동 중.


인상 깊었던 구절


지구에서 산 지 5년째 되던 해에, 나는 엉뚱한 행성에 착륙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정거장을 지나친 게 틀림없었다. - 10p


과학은 균일성은 도움이 되지 않으며, 협력과 성공에 꼭 필요한 것은 다양성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p.75


그렇다면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마음의 프리즘을 개발하고 연마할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프리즘처럼 행동하고, 더 투명해지는 방법을 배우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을 약점처럼 부끄럽게 생각하는 대신, 솔직하게 공개해야 한다. 가족과 친구에게 우리의 가장 뿌리 깊은 공포를 주저 없이 말하고, 공포를 드러내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사적인 친구든 지갖ㅇ 동료든 마찬가지다. 프리즘과 같은 사고방식을 개발하려면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에 대해 투명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공포를 억누르려는 충동에서 벗어나 새로운 렌즈를 통해 공포를 바라볼 준비를 할 수 있다. 이 방식은 양방향 과정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하는데, 당신이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안전하다고 느껴야 하기 때문이다. p.123


평생 두려움과 불안에 맞서 싸우면서 나는 결국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불안은 내게 가장 큰 골칫거리가 아니라 실제로는 가장 주용한 감정이었다. p.124


두려움은 우리의 일부이며 두려움을 차단하려 할수록 우리 자신의 일부 역시 차단하게 된다. 두려움에 더 잘 대응할수록 나는 두려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두려움이 없다면 얼마나 애석할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p.126


두려움을 단순히 우리의 삶에서 몰아내기보다는 통제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두려움이 필요하며, 두려움은 영감을 얻고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의 일부가 될 수 있다. 겁에 질렸을 때, 우리는 삶에서 가치있는 것이 무엇인지 되새기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 대상을 보호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떠올린다. p.128


음악 비유를 확장하자면, 우리의 삶은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는 것과 살짝 닮았다. 우리는 모두 자기 악기를 연주하면서 주변에서 함께 화음을 이룰 상대를 찾고 싶어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만의 음을 연주하면서 종종 불협화음을 낸다. 모두의 연주를 하나로 이끌어줄 지휘자가 없으므로, 나와 화음을 이룰 상대가 있는지, 내가 아무리 애쓰더라도 항상 충돌하게 마련인 사람은 아닌지 잘 들어야 한다. 특히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것은 공명이다. 공진주파수가 일치하는 사람과 작업환경, 사는 곳은 당연히 우리를 북돋은다. 대부분의 사람이 평생을 바쳐 고염ㅇ을 찾아다니고, 본질적인 평화와 성취감, 행복을 안겨줄 친구, 반려자, 직업, 가정을 찾아다닌다. 이 탐색은 반드시 자신의 파장을 이해하고 타인의 파장에 공감하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삶의 추 위에서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리듬과 그에 맞춰 내가 춤추도록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 p.152-153


그러나 미래를 불안하게 여기는 것, 혹은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 될 수도 있다. 양자물리학과 머신러닝은 불확실성, 그리고 경로를 기꺼이 바꾸려는 마음이 골칫거리이기보다는 자신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삶의 진보를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효율적으로 운동량과 위치를 동시에 측정할 수 없는 우리의 선천적인 무능의 단순한 측면이다. 기꺼이 경로를 바꾸는 일에는 머신러닝이 가장 뛰어나지만,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안다”라는 속담을 잊지 말자. p.205


과학자라면 누구나 오류나 나쁜 결과는 없으며 오직 더 나은 학습을 위한 데이터만 있다고 말할 것이다. p.273


나는 실험을 통해, 살아오면서 축적한 기억과 정신적 전제 조건을 그냥 버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좋든 싫든 이것들은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었고, 감정을 주었으며, 우리에게 닻이 되어주는 본질 혹은 인격을 부여한다. 이런 편견은 때로 적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저 나일 뿐이며, 나 자신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다. p.284


예의범절을 배우는 것이 그저 사회에서의 당혹감을 피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다른 사람이나 문화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고, 연대감을 확고히 하고 상호주의를 구축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차이는 아주 작은 데서 만들어진다. 내 일이 아니더라도 거리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 보호자가 아니더라도 휠체어가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주는 것이 그렇다. 당장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 아주 작은 행동이 우리를 개인주의자가 아닌 사회적 동물로 만든다. p.307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그저 착한 척하는 게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는 가장 효율적인 경로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게 바로 예의범절이 정말 중요한 이유다. p.307


과학과 삶의 위대한 공통점은 둘 다 같은 부분에서 좌절감을 안겨주며, 인내하는 사람에게는 보상을 준다는 점이다. p.315


다른 사람처럼 나도 나 자신의 실패한 실험의 결과물이며 나는 그 점이 자랑스럽다.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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